호주 정부의 ‘담배와의 전쟁’과 ISD

호주 정부는 2006년부터 담배 규제 정책을 도입, 호주 내에서 유통되는 담뱃갑에 직설적인 경고 문구와 흡연의 폐해를 한눈에 보여 줄 수 있는 사진들을 총천연색으로 함께 삽입하도록 입법화했다. 또한 최근에는 ‘담배포장법(Tobacco Plain Packaging Act 2011)’을 통과시켜 2012년 12월부터 호주 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담배 제품의 담뱃갑을 무늬 없는 짙은 갈색 포장지에 동일한 크기와 모양으로 통일하고 규격 서체로 담배 제조회사의 이름과 제품명만 표기하여 담배 제조회사의 로고와 그 어떤 광고 문구도 넣지 못하도록 담뱃갑 포장을 의무화했다.
[호주] 강력한 담배 규제책,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도)에 막히나
담배 규제 정책의 일환으로 이러한 법이 도입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호주가 처음인데, 강력한 담배 규제책을 검토 중이거나 도입하려는 많은 나라들이 호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편 막강한 자금력과 정치력을 가진 다국적 담배 회사들이 연이어 호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호주 내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진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 임페리얼 토바코, 재팬 토바코 및 필립 모리스는 담뱃갑에 회사의 상표나 고유한 색깔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호주 정부가 정당한 보상 없이 기업의 고유 자산인 지식재산권을 취득하는 행위로서 호주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호주 하이 코트(High Court:헌법, 국제협약 등에 관한 원심 법원 및 주 법의 상고심 법원)에 각각 소를 제기했다.

이 회사들은 담배포장법에 따른 담뱃갑의 유통이 호주의 흡연 인구 감소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무엇보다 기업의 귀중한 고유 자산인 지식재산권을 국가가 침해하는 행위는 저지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호주 국내법에 근거한 소송 제기에 앞서 말보로와 알파인 등의 유명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필립 모리스는 필립 모리스 호주(Philip Morris Australia)를 소유하고 있는 홍콩에 소재하는 필립 모리스 아시아(Philip Morris Asia)를 통해 담배포장법은 호주가 1993년 홍콩과 맺은 양자 투자 협정에 위반된다며 호주 정부에 국제중재 통지서를 전달한 바 있다.

2004년 발효된 미국-호주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에는 호주 정부의 반대로 투자자-국가소송제도조항(이하, ISD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필립 모리스는 홍콩 자회사를 통해 홍콩-호주 간에 19여 년 전에 비준된 양자 투자 협정의 ISD 조항을 언급하며 호주 정부에 의해 필립 모리스의 지식재산권이 몰수당했으며 투자에 비합리적인 방해 등을 당했다는 것을 근거로 중재 신청을 낸 것이다.

국민의 건강 증진을 목표로 호주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공공정책이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주장하며 법정 공방도 불사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과의 법적인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필립 모리스의 호주 정부에 대한 중재 신청은 ISD 조항이 국가의 공공정책 도입 및 그러한 정책의 순탄한 실행에 적지 않은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호주 정부는 2011년 4월 공식 성명서를 통해 추후 호주 정부가 개발도상국들과 체결할 무역협정에서는 ISD 조항을 포함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어 2011년 5월 이후 잠정적으로 중단돼 있는 한국과 호주 간 FTA 체결을 위한 협상 재개 시 양국 정부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임주영 법무법인 지평지성 호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