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이자 보수당인 새누리당(한나라당)이 재벌 개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당 이름을 바꾸기 전 먼저 개정한 정강 정책에 세 번째로 ‘경제 민주화’를 써넣은 뒤 행보다. MB 정권에서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부활시킬 수 없으니 공정거래법을 바꿔 나가겠다는 방향이다.
행보도 확실하다. 새누리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 9일 대기업 독식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보도 자료를 배포했는데, 제목이 “경제 민주화를 위해 대기업의 고질적 관행을 확실히 잡겠다”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당시 한나라당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보도 자료 제목이다. 이날 발표된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 방안은 공정거래법을 강화하고 법 적용을 엄정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보수’ 새누리당, 구체적 방안 발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와 관련해선 내부 거래에 대해 기업 정기 조사를 강화하고 필요할 땐 공정거래위원회가 정기 직권조사를 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49조를 개정한다는 것이다. 정기 조사 대상 기업과 관련해 이주영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은 “우선 자산 순위 30대 집단이나 친족의 지분율이 20% 이상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부당 내부 거래를 판단하는 기준도 크게 강화된다. 공정거래법 제23조 1항 7호에 적혀 있는 ‘현저히 유리한 조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고치기로 했다. 다른 기업보다 계열사에 조금만 유리하게 거래돼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관여할 장치가 생기게 된다.
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거래를 많이 하는 계열사들엔 공정위가 직권조사를 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11조 2항을 개정하기로 했다. 해당 업종으로 시스템 통합(SI)·광고·건설·물류 등을 지목했다. SI 업체는 삼성·LG, 광고는 삼성·현대자동차·LG·SK·롯데 등, 건설과 물류는 대부분의 그룹이 해당된다. 중소기업 영역으로 대기업의 진출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회사를 만들거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허용 기준을 시장점유율 1% 미만일 때로 낮췄다.
하도급 부당 단가 인하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중대한 담합 행위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거래 금액의 최대 3배까지 물어내야 하며 집단소송제는 대표 소비자 한사람에게만 패해도 다른 피해자에게도 똑같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집단소송제는 우리나라엔 지금까지 증권 분야에서만 허용됐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도 큰 이견이 없는 사항이어서 4·11 총선이 끝나면 이 같은 정책들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민주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출총제를 부활하고 기존 순환 출자도 금지하는 한편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최소 25%(비상장사는 50%)로 높이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고의성을 판단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진입한 대기업의 담당자나 책임자는 징역형에 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대기업과 재벌을 공격하면서 실정을 덮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2월 9일 전국 성인 남녀 3741명을 대상으로 재벌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한 결과 22.8%만 긍정적이라고 답해 작년 8월(29.3%)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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