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를 진행 중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쓴 ‘투자자에게 보내는 서한’이 흥미롭다.

앳된 표정이 가시지 않은 28세의 젊은 CEO는 주주 가치 대신 ‘해커 정신’을 앞세운다. 8년 전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탄생한 페이스북은 이제 세계 인구의 10%가 넘는 8억4500만 명의 삶을 지배한다. 공식적인 자리에도 거리낌 없이 청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나는 이 하버드 중퇴생이 284억 달러를 손에 쥔 벼락부자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Facebook founder Mark Zuckerberg puts a coat on before walking to a rehearsal at the California Museum for the Annual California Hall of Fame induction ceremony in Sacramento California, December 14, 2010. Zuckerberg, founder and chief executive of The Facebook social networking site that has more than half a billion users, was named Time magazine's 2010 Person of the Year on December 15. Time defines the Person of the Year as the person who, for better or for worse, does the most to influence the events of the year. Photo taken December 14, 2010. REUTERS/Hector Amezcua/Pool  (UNITED STATES - Tags: IMAGES OF THE DAY PROFILE MEDIA)/2010-12-16 05:21:12/
Facebook founder Mark Zuckerberg puts a coat on before walking to a rehearsal at the California Museum for the Annual California Hall of Fame induction ceremony in Sacramento California, December 14, 2010. Zuckerberg, founder and chief executive of The Facebook social networking site that has more than half a billion users, was named Time magazine's 2010 Person of the Year on December 15. Time defines the Person of the Year as the person who, for better or for worse, does the most to influence the events of the year. Photo taken December 14, 2010. REUTERS/Hector Amezcua/Pool (UNITED STATES - Tags: IMAGES OF THE DAY PROFILE MEDIA)/2010-12-16 05:21:12/
‘나는 세계를 좀 더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자신의 페이지(www.facebokk.com/zuck)에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2010년부터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으며 작년에는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고백도 있다. 저커버그는 지난 8년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페이스북 성공 신화의 중심인물이다.

최근 기업공개(IPO)를 위해 제출한 문서에서 페이스북이 사실상 ‘저커버그의 왕국’이란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저커버그는 지분 28.4%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그 뒤를 이어 2005년 페이스북에 투자한 엑셀파트너스의 제임스 브레이어가 11.4%의 지분을 가졌으며 기숙사 룸메이트로 2004년 페이스북을 공동 창업한 더스틴 모스코비츠가 7.6%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 상장이 예정대로 마무리되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저커버그는 지분 평가액(284억 달러)만으로 단숨에 세계 부자 순위 9위에 올라선다. 정보기술(IT) 분야만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590억 달러)와 오라클 창업자 랠리 엘리슨(330억 달러)의 뒤를 잇는다.
 U.S. President Barack Obama attends a town-hall meeting at Facebook headquarters with CEO Mark Zuckerberg in Palo Alto, April 20, 2011.  REUTERS/Jim Young  (UNITED STATES - Tags: POLITICS)/2011-04-21 07:06:25/
U.S. President Barack Obama attends a town-hall meeting at Facebook headquarters with CEO Mark Zuckerberg in Palo Alto, April 20, 2011. REUTERS/Jim Young (UNITED STATES - Tags: POLITICS)/2011-04-21 07:06:25/
제2의 스티브 잡스 되나

IPO 후에도 저커버그의 강력한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자신의 보유 지분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30.6% 지분에 대해 의결권 위임 계약을 맺어 놓았기 때문이다. 저커버그가 주주총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지분이 무려 57.1%에 달하는 것이다. 물론 IPO로 이러한 지분구조는 달라진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차등 의결권이라는 안전장치를 미리 마련해 놓았다. 일반 투자자들은 1주 1표인 A주만 살 수 있다. 반면 저커버그와 회사 임직원들은 1주 10표를 행사할 수 있는 B주를 보유한다. 주식시장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조처다.

저커버그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지난해 사망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잡스는 21세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다.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3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페이스북을 처음 선보였을 때 저커버그의 나이는 이보다 한 살 어린 20세였다. IPO는 잡스가 조금 앞섰다. 그는 1980년 애플 주식 상장으로 25세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잡스가 위대한 기업가로 기억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인생행로 때문이다. 그는 30세가 되던 1985년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다. 우여곡절 끝에 40대가 돼서야 애플에 복귀했고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IT 역사를 바꿔 놓았다. 28세에 믿기 힘든 성공을 거머쥔 저커버그 앞에 앞으로 얼마나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실패와 좌절만이 잡스와 같은 위대한 기업인을 길러 낸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의 짧지만 매력적인 성공담은 2004년 하버드대 기숙사 커크랜드하우스 H33호실에 모인 괴짜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커버그는 유태인으로 1984년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심리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족이 사는 집은 동네에서 제일 크긴 했지만 검소했다. 저커버그는 어릴 적 성인식을 ‘스타워즈’ 테마로 꾸밀 정도로 첨단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사용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분석한 다음 좋아할 만한 다른 음악을 추천해 주는 ‘시냅스’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마이크로소프트 등 여러 회사의 관심을 끌었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후 컴퓨터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는 엄청난 시간을 컴퓨터 프로그램 코딩에 쏟아부었다. 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기숙사 거실 컴퓨터 화면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여러 개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벌이던 저커버그는 어느 날 가입자를 초청해 각자 취미와 음악 취향, 개인 정보 등의 ‘프로필’을 작성해 친구들과 연결하면서 자신의 인맥을 만들 수 있는 ‘더페이스북’ 서비스를 만들어 냈다.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든 ‘페이스매시’, 당시 한창 뜨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프렌드스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쉽게 말해 하버드대생을 위한 온라인 인명록에 가까웠다. 하버드생들은 온라인 버전의 학생 편람을 갖고 싶어 했다.
 This photo taken December 14, 2010 shows a map on a page from the Facebook social network site. A Facebook intern interested in seeing how political borders affect friendships around the globe has created a map of the world by sampling data from the social network's 500 million user base. The map displays friendships as lights on a deep blue background. The eastern half of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shine the brightest, while China, Russia and central Africa, where Facebook has little presence, are mainly dark."I was interested in seeing how geography and political borders affected where people lived relative to their friends," said Paul Butler, an intern on Facebook's data infrastructure engineering team. AFP PHOTO/Karen BLEIER
/2010-12-14 23:14:58/
This photo taken December 14, 2010 shows a map on a page from the Facebook social network site. A Facebook intern interested in seeing how political borders affect friendships around the globe has created a map of the world by sampling data from the social network's 500 million user base. The map displays friendships as lights on a deep blue background. The eastern half of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shine the brightest, while China, Russia and central Africa, where Facebook has little presence, are mainly dark."I was interested in seeing how geography and political borders affected where people lived relative to their friends," said Paul Butler, an intern on Facebook's data infrastructure engineering team. AFP PHOTO/Karen BLEIER /2010-12-14 23:14:58/
저커버그에게는 여러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였지만 새로운 서비스에 쏟아지는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이트를 연 지 1주일 만에 하버드대 학부생 절반 이상이 더페이스북에 가입했다. 회원이 되려면 하버드대 e메일을 갖고 있어만 했다. 3주가 지나자 가입자 수가 6000명을 기록했고 한 달 만에 1만 명을 돌파했다.

저커버그의 기숙사 친구 3명이 공동 창업자로 참여해 회사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경제학과 학생으로 나중에 페이스북의 첫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활약한다. 크리스 휴즈는 은발의 잘생긴 동성애자로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브라질 재벌가 출신인 에두아르도 세브린은 체스를 잘 두는 수학 천재였다.

페이스북의 인기는 하버드대를 넘어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컬럼비아대·스탠퍼드대·예일대가 서비스에 추가됐다. 4명의 하버드생들은 여전히 학업에 대한 부담을 지면서도 몇 주 만에 매사추세츠공과대(MIT)·펜실베이니아대·프린스턴대·브라운대·보스턴대에도 진출했다. 페이스북은 대학 문화에 빠르게 뿌리를 내렸다. 2004년 가을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이 신입생 환영사에서 페이스북에 있는 신입생 대부분의 프로필을 살펴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인사말을 할 정도가 됐다.

사실 페이스북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SNS는 다양한 기업과 개발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진화해 왔다. 공개 프로필 작성, 친구 목록 공개, e메일을 통한 초대장 등 핵심 기능들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2002년께 마침내 소셜 네트워크가 실리콘밸리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학을 타깃으로 한 경쟁 서비스도 이미 하나둘이 아니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2003년 8월 창업한 마이스페이스였다. 2004년 말 아이스페이스 회원 수가 500만 명을 돌파하자 저커버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았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았다. 마이스페이스는 회원의 실제 아이덴티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원하면 얼마든지 가공의 인물로 행사할 수 있었다. 반면 페이스북은 대학 e메일 계정으로 신원 인증을 했고 누구나 자신의 신분을 정확하게 밝혀야 했다. 마이스페이스는 모든 프로필이 공개됐지만 페이스북은 공개 범위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었다. 마이스페이스는 2005년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에 인수된 후 잊혀졌다.

회사가 커지면서 페이스북은 동부를 떠나 서부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페이스북은 개성 있는 벤처기업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에서도 도드라졌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만화처럼 멋지고 쿨한’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페이스북에는 낮 12시 전에 출근하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느지막이 출근해 저녁이 돼야 일에 속도가 붙었다. 중요한 결정은 밤사이 메신저를 통해 이뤄졌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최에게 사무실 벽화를 부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데이비드 최는 이때 비용을 돈 대신 주식으로 받아 이후 백만장자가 됐다.

2006년 위기가 찾아왔다. 대학에 이어 고등학교 대상 서비스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저커버그는 다음 타깃으로 ‘직장’을 꼽았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대로 직장 내 회사원을 대상으로 직장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2006년 5월 직장 네트워크가 문을 열었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갑자기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페이스북이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있지만 성인들은 그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을 지탱하고 있는 저커버그의 ‘이론’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현대판 성공 신화 페이스북 스토리] 세상을 바꾼 20대 CEO 8년 만에 100조 기업으로
뉴스피드 항의 사태로 최대 위기

때마침 인수 제안이 쏟아졌다. 2006년 6월 야후 이사회가 페이스북 인수 추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야후가 제시한 인수 금액은 10억 달러였다. 회사 매각을 금기시해 온 저커버그도 흔들렸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야후가 페이스북을 사버리면 서비스가 크게 약화될 우려가 있었다. 뉴스코프에 인수된 마이스페이스가 생생한 사례였다. 인수 원칙에 합의하고 실사까지 마쳤지만 실적 부진으로 야후 주가가 하루 만에 22% 폭락하면서 인수 논의는 없던 일이 됐다.

저커버그가 마지막까지 회사 매각을 주저한 것은 페이스북의 재성장을 위한 회심의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사이트를 전면 개방하고 ‘뉴스피드’ 기능을 새로 추가한다는 것이다. 200 6년 9월 오랫동안 공들인 뉴스피드 기능을 공개했지만 결과는 악몽으로 나타났다.

뉴스피드는 페이스북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동으로 업데이트해 주는 것이다. 일일이 친구들의 페이지를 찾아가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정보 유통의 혁명을 의미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소식을 전하려면 소식을 게시하고 무엇인가를 보내 알려야 했다. 뉴스피드는 이 과정을 뒤바꿔 놓았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다. 자신이 각자 업데이트하는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스토커가 된 기분이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뉴스피드에 반대하는 그룹이 만들어져 순식간에 회원 수가 70만 명을 넘어섰다. 페이스북이 경험한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이것은 아이러니였다. 항의 그룹이 급속도로 퍼져나간 사실 자체가 뉴스피드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센 항의의 물결은 페이스북이 뉴스피드 공개 범위를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도록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을 바꾸면서 잦아들었다.

사이트 전면 개방도 올바른 선택임이 밝혀졌다. 수많은 성인들이 페이스북으로 몰려들었다. 신입 회원 수가 하루 2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순식간에 2배 이상 뛰었다. 격동의 2006년을 보내면서 CEO로서 저커버그의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 모든 직원들이 일종의 경외심을 품고 그를 대하기 시작했다. 뉴스피드에 대한 항의 사태를 강한 의지로 정면 돌파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넘어선 페이스북은 이제 인터넷 제패의 비전을 꿈꾸기 시작했다.


※참고 도서:‘페이스북 이펙트(에이콘)’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