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 차 주부인 한대여 씨는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가전·가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고장 나거나 망가지면서 고민에 빠졌다. 외벌이인 가정 형편에 TV·냉장고·세탁기·침대 등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제품들을 새로 구입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씨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대부분의 가전·가구 등을 구입하지 않고 그것도 최신 버전의 새 상품으로 빌리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렌털 산업에 비즈니스 기회 있다? ‘소유’서 ‘사용’으로 소비 트렌드 변화
부산에 사는 직장인 안소유 씨도 서울 발령과 함께 거처를 옮기면서 살림을 마련해야 했다. 비싼 임차료 때문에 빌트인 오피스텔을 포기한 안 씨는 중고품 렌털 사이트에서 가전·가구 등 필요한 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빌리기로 했다. 2년 후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날 가능성도 있는 데다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어차피 신혼살림을 다시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렌털 시장의 확대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미국·일본 등은 렌털 산업이 전 분야에 걸쳐 일찍이 자리 잡았고 국내 렌털 시장도 10조 원(한국렌탈연구소 추정치) 규모로 성장했다. 품목 또한 국내 렌털 시장을 주도해 온 정수기·비데 등 일부 제품을 넘어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B2B(Business to Business) 시장 위주로 형성돼 있던 렌털 시장이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B2C(Business to Consumer)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는 이마트가 대형 생활 가전 렌털 서비스를 시작해 업계와 소비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TV·세탁기·냉장고·김치냉장고 등 고가의 대형 생활 가전을 약정 기간(3년 또는 4년) 동안 월 사용료만 내고 사용한 뒤 약정 기간이 끝나면 소유권이 고객에게 이전되는 형태로 이마트가 소비자를 모집하고 렌털 서비스는 협력업체인 KT렌탈이 제공하는 식이다. 가령 양문형 냉장고, 김치냉장고, 드럼세탁기, 32인치 LCD TV 등 4개 품목을 한 번에 최신형으로 구입하려면 387만8000원(1월 4일 가격 기준)이 들지만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면 약정 기간 3년에 월 14만6000원(제품별로 각각 4만9500원, 3만3600원, 3만2600원, 3만300원)을 내고 사용할 수 있다. 이마트 마케팅 전략팀의 장중호 상무는 “대형 생활 가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판매 가격이 높아 소비자 구매 부담을 낮추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서비스를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렌털 산업에 비즈니스 기회 있다? ‘소유’서 ‘사용’으로 소비 트렌드 변화
렌털 서비스, B2B에서 B2C로 이동 중

그러나 한편에서는 렌털 서비스의 연평균 수익률이 제품별로 평균 12%에 달하는 데다 중도 해지하면 위약금 부담 문제가 발생(사용 1년 후부터 고객이 계약 해지를 원할 때 남은 기간 사용료의 50%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하는 등 부작용이 있어 구매하는 편이 오히려 실속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가전 렌털 서비스 업체로 주 단위, 월 단위로 렌털이 가능한 싱글러의 정창곤 대표는 “렌털은 소비자가 계약 기간을 정하는데 이마트의 렌털 서비스는 장기간 쓰다가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점에서 렌털이라기보다 리스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비스 제공자인 KT렌탈 측은 “서비스 시작 초기 고금리 할부라는 불편한 반응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렌털 사업을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돼 누적 계약액이 10억 원을 넘어섰고 마트 이용 인구가 많은 주말에는 일 계약액이 1억 원 이상에 달하는 등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번 서비스 상품의 용이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1년이면 보증 수리 기간이 종료되는데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면 렌털 기간 동안 보증 수리를 받을 수 있고 도난이나 화재 등으로 인한 파손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찬반 의견에도 불구하고 가전 렌털 서비스는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등의 고객들이 초기 구매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하거나 최신 가전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도 희소식이다.

또 다른 고가 품목인 자동차 역시 렌털 소비 계층이 늘어나는 추세다. KT금호렌터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렌터카 시장 규모는 약 2조 원, 오토리스는 5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렌터카 시장은 10~15% 정도의 성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변화라면 업무용 차량, 임원용 차량 등 법인 차원에서 장기 렌트나 오토리스를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개인 고객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1.5%에 불과했던 장기 렌터카 개인 이용 고객은 2011년 5%까지 늘어났다.

KT금호렌터카 측은 “렌터카는 LPG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유류비를 줄일 수 있어 직장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월 렌트 비용만 내면 세금·보험료 등 차량과 관련된 추가비용 없이 정기적으로 차량 정비까지 받을 수 있어 특히 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여성층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준중형 수입차를 리스로 이용 중이라는 30대의 한 여성은 “차량 관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라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다른 신차를 리스해 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렌털 산업에 비즈니스 기회 있다? ‘소유’서 ‘사용’으로 소비 트렌드 변화
철저한 시장조사, 시뮬레이션은 필수

렌털 산업 성장의 바탕에는 달라진 소비 트렌드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소비 형태가 ‘내 것’을 강조한 ‘소유’였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품목을 적당한 가격에 ‘사용’하는 개념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제는 ‘합리적 소비’를 내세운 스마트 컨슈머가 대세인 시대다. 더구나 렌털은 함께 쓰고 나눠 쓰는 ‘공유’의 개념으로 대표적인 친환경 사업이다.

전문가들은 바로 여기에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빌려주는 사업의 시대가 온다’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메시’에서는 한 번 물건을 판매하고 수익을 확정짓는 일반적인 관행에서 탈피해 동일한 제품과 서비스를 반복해 판매하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빌려주는 서비스’는 고객과 빈번히 접촉하게 되는 장점도 있어 다양한 사업 기회가 생기고 브랜드가 강화되며 훨씬 크게 성장할 기회도 생기는 선순환이 가능하므로 빌려주는 서비스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한국렌탈연구소 조윤종 연구원 역시 “이미 유아 용품에서부터 수족관에 이르기까지 많은 품목이 렌털 비즈니스의 대상이지만 앞으로는 그 아이템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보며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를 비롯해 최근엔 매트리스 렌털이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처럼 생활 밀착형 제품들이 B2C 렌털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KT렌탈의 한 관계자 역시 “국내시장은 일부 제품들이 컨슈머 렌털 시장 전체를 대변하고 있지만 앞으로 컨슈머 시장의 확장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특히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실버 렌털 산업의 성장은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는 등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쳐 렌털 서비스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렌털 비즈니스는 그 가능성만큼이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조 연구원은 “정수기 렌털 시장만 1조5000억 원에 달하는 등 렌털 산업은 아이템만 잘 선택하면 엄청난 기회의 시장”이라며 “일반 비즈니스는 제품을 팔면 끝이지만 렌털은 물건을 사서 원가를 분석한 다음 렌털 가격과 의무 사용 기간, 위약금 등을 책정해야 하고 이후에도 배송과 서비스·애프터서비스·회수·재고관리 등 엄청난 프로세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업 전 반드시 시장조사와 함께 철저한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