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치겠습니다. 2009년에 이미 실효성이 없다고 폐지된 제도를 부활시킨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전형적 포퓰리즘의 사례입니다.”

최근 만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공무원이 털어놓은 푸념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도입을 반길 줄 알았던 기자의 짐작과는 딴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의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묘한 상황이다. 공정위의 진의는 출총제처럼 낡아빠진 규제로는 지금의 재벌 그룹을 실효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출총제는 대기업 순자산의 일정 비율(25%나 40%)까지만 계열사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한도를 두는 제도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막아보겠다면서 1987년 처음 도입됐다. 계열사 출자 한도는 당초 40%였지만 1994년 25%로 강화됐다. 외환위기로 기업의 줄도산 사태를 맞았던 1998년 한 차례 폐지됐다가 2001년 부활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를 막아 성장 잠재력과 고용 창출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일면서 2007년 출자 한도를 25%에서 40%로 대폭 완화한 데 이어 2009년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최근 민주통합당이 재벌 규제 개혁 방안으로 출총제 부활을 들고나오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우선 10대 그룹에 소속된 기업에 대해서는 자산 규모에 상관없이 출총제 적용 대상에 포함해 순자산액 대비 40%의 출자총액 한도 규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 또 모기업이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을 과세 대상에 포함하는 재벌세 도입 등의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상호 지분 보유를 까다롭게 해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게 이 방안의 핵심이다.
 물가 고심(?)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늘부터 기름값 적정여부 등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현장조사에 나선다. 2011.1.14
    jeong@yna.co.kr/2011-01-14 08:32:43/
물가 고심(?)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늘부터 기름값 적정여부 등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현장조사에 나선다. 2011.1.14 jeong@yna.co.kr/2011-01-14 08:32:43/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대기업 규제 논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대기업을 억누른다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출총제 자체에 대해서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김동수 위원장은 최근 “글로벌 경쟁 환경과 개별 기업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아날로그 방식”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출총제 소관 부처 기관장의 이 같은 발언으로 출총제 논의는 더 이상 힘을 얻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공정위의 출총제 반대가 ‘일반적’ 반대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출총제 도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개진하면서 “출총제 부활보다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문제 해결에 적합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이 미래를 위해 신성장 산업 분야에 진출하지 않고 총수나 친인척 기업에 일감을 몰아줘 사익을 챙기거나 증여·상속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출총제보다 더욱 강한 방식으로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나 투자 행태를 규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그는 “올 상반기 중 대기업들의 출자 구조를 그림으로 그린 지분도를 공개하겠다”며 “지분도를 공개하면 일반인도 복잡한 출자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돼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감시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김 위원장의 출총제 반대는 기업들이 정색하고 환영할 일이 아니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재벌 2, 3세들의 ‘빵집 논란’은 대기업들의 입지를 더욱 좁혀 놓고 있다. 물론 해당 기업들은 속속 사업 철수를 발표하며 여론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출총제를 훨씬 능가하는 강력한 칼날이 드리워질 것이라는 공포가 기업들을 엄습하고 있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