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금융권 여성 임원 현황
지난해 연말 주요 기업들의 임원 인사 발표의 화두는 ‘여성 중용’이었다. 각 기업마다 ‘역대 최대 규모’, ‘사상 최초’ 등의 수식어를 달고 여성 임원의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11년 기준 4.7%에 불과하다. 2007년 말 1.5%에 비하면 3배 이상 늘었지만 노르웨이 상장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이 40%인 것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친다. 실제 주요 대기업 중에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삼성, 공채 출신 여성 임원 첫 등용
국내 기업군 중 가장 많은 수의 여성 임원을 보유한 그룹은 삼성이다. 지난 연말 임원으로 새로 승진한 8명을 포함해 총 42명의 여성 임원이 삼성의 각 계열사에 포진하고 있다. 삼성의 지난해 여성 임원 승진자는 모두 9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승진 임원이 총 501명이니 여성 비율은 100명에 2명꼴이었다.
삼성전자는 지속 가능 보고서에서 자사 여성 임원을 2020년까지 10%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8월 “한국 여성도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말했었다.
삼성의 이런 분위기를 타고 최초로 부사장에 오른 삼성전자의 심수옥 부사장은 화제의 중심이 됐다. 그는 삼성전자 ‘여성 부사장 1호’이기도 하다. 다국적기업 P&G에서 화장품 등 소비재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2006년 8월 삼성전자로 옮겨왔다. 이후 2008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브랜드전략팀장, 2009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마케팅 전무를 맡아 왔다.
또한 사상 첫 공채 출신 여성 임원자가 3명 배출됐다. 김기선 삼성전자 상무, 김정미 제일모직 상무, 오혜원 제일기획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비공채 출신인 삼성전자 송효정·이선영 상무와 홍혜진 삼성SDS 상무, 박경희 삼성증권 상무, 김지영 제일모직 상무도 임원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성 임원은 4명이다. 지난해 말 김혜경 이노션 상무가 승진해 ‘현대차그룹 사상 최초의 전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2006년 이노션에 합류한 김 전무는 현대·기아차의 굵직한 광고 제작을 책임지면서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빅5’로 성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차가 필요한 이들에게 차를 선물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던 ‘희망드림 기프트 카’ 시리즈 제작을 총지휘했다.
SK그룹은 여성 임원이 지난해 8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강선희 상무의 전무 승진이 주목할 만하다. 서울지방법원 판사 출신인 강선희 전무는 정유 업계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근무 경험도 있다. 2004년 1월 SK(주) 법무팀 상무로 영입된 이후 SK미소금융재단 이사 등 활동 폭을 넓혔고 현재 SK이노베이션에서 지속경영본부장을 맡고 있다. 한편 SK건설의 홍윤희 상무는 여성 임원이 드문 10대 건설사 중 오너 일가가 아닌 자수성가형 여성 임원으로 손에 꼽힌다. 홍 상무는 SK케미칼 출신으로 2008년 말 건설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무로 발령됐다.
LG그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4명을 유지하고 있다. LG그룹에선 지난해 초 LG아트센터 대표에 임명된 윤여순 전무가 대표 격이다. 2000년 LG 최초로 여성 임원에 등극한 윤 전무는 인화원 사이버교육팀장·경영교육팀장·리더교육팀장 등을 거쳤다. 2010년에 인화원 내 여성으로서는 처음 전무로 승진했다. 윤 전무는 탤런트 윤여정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신격호 회장의 딸) 1명뿐이었지만 올해 디자이너 출신의 박기정 이사가 추가됐다. 롯데쇼핑 GF사업부문 디자인센터 총괄디렉터인 박 이사는 홍익대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쌈지·비경통상 총괄디렉터 및 한섬·FNF의 기획이사를 지냈다.
GS그룹은 지난해와 같은 2명이지만 GS샵 전략·마케팅 본부장을 맡았던 이은정 상무가 퇴사하고 대신 손은경 GS칼텍스 마케팅개발실장이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여성 임원이 드문 정유 업계에서 나온 것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진그룹은 조모란 부장의 상무보 승진으로 지난해 7명에서 8명으로 늘었다. 하네다 공항지점장을 맡던 조모란 상무보는 1년 일찍 발탁 승진하며 여성 임원이 됐다. 그룹 오너인 조양호 회장 자녀를 빼곤 대한항공 사상 최연소(44세) 임원이다. 부장이 된 지 6년이 지나야 임원이 되는 관례를 깨고 5년 만에 발탁됐다.
한화그룹도 3명의 여성 임원을 새로 영입해 총 5명이 됐다. 제일기획 출신의 박지영 상무를 그룹 경영기획실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한국투자증권 출신의 박미경 상무는 한화증권 PB본부 본부장으로, 동양증권 출신의 최선희 상무는 한화증권 프로덕트본부 본부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KT는 지난해 15명에서 무려 9명의 여성 임원을 등용해 24명으로 늘어났다. 이석채 KT 회장이 통합고객전략본부장, 콘텐츠&미디어사업본부장, 인재경영실 등에 양현미·송영희·이영희 전무를 각각 배치하는 등 여성 임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을 역임한 송정희 부사장을 전면에 내세워 KT의 대고객 서비스를 한층 감성적이고 친근하게 바꿔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KT는 국내 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여성 고위 관리자를 늘리는 기업으로 꼽힌다.
KT, 여성 임원 통해 감성적 고객 서비스
효성그룹은 중공업 PG 풍력사업단의 이금정 상무보가 승진, 임원이 됐고 KPMG컨설팅·아서앤더슨 출신의 김혜경 상무가 지난해 영입돼 PI추진단 총괄 PM 담당 임원을 맡고 있다.
한편 지난해와 동일하게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그룹은 현대중공업·STX·LS·하이닉스·대우조선해양·대림·부영·대우건설·KCC·동국제강·현대백화점그룹이다. 이들 중 현대백화점을 제외한 그룹들은 모두 조선·건설(또는 건설자재)·중공업·철강 등 생산재를 만드는 제조업체들로 여성들이 선호하지 않는 업종들인 것이 공통점이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조선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여성들이 기피하던 직종으로, 여성들이 활발하게 입사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7~8년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신입 사원 중 25~30%가 여성으로, 이들이 성장하면 여성 임원이 대거 배출될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림 관계자는 “주력 업종이 건설·유화(여천NCC) 등으로 거칠다는 인식 때문에 여성이 드물다. 과거 공대에 여학생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여성의 지원 자체가 적기 때문인데, 건축·토목·기계 등을 전공하는 여학생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여성 임원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 업종에서는 의외로 여성 임원이 드물게 나오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에서는 지난해 2명에서 올해 1명이 늘어났다. 씨티은행에서 프라이빗 뱅킹(PB) 업무를 담당한 노차영 상무가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장으로 영입된 것. 국민은행은 지난해 2명의 지역본부장에서 1명이 늘어 3명의 여성 지역본부장을 두고 있다.
증권사는 의외로 여성 임원이 드물다. 업계 선두로 꼽히는 대우증권도 여성 임원이 없고 대신증권은 오너 일가인 이어룡 회장 외에는 없다. 키움증권과 한국투자증권도 여성 임원이 0명이다. KTB투자증권에서는 2명이 있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금융권에서 여성 임원이 없는 이유에 대해 한 업체는 “금융권도 일종의 B2B(Business to Business)로 남성 중심의 기업들을 고객사로 상대하다 보니 남성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고 전하고 있다.
우종국·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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