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학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는 “호박벌은 뉴턴의 자연법칙에 따르면 날 수 없는 존재지만 현실에서는 훌륭하게 날고 있다”며 협동조합은 기존 자본의 시각에서 해석하면 존재가 불가능하지만 협동조합적 경영을 통해 계속 존재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축구 클럽 그 이상 ‘FC바르셀로나’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는 1899년 11월 29일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스페인 역사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36년 마드리드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프랑코는 반정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바르셀로나의 주도(州都)인 카탈루냐를 탄압했다. FC바르셀로나는 내전 중 클럽의 회장이 프랑코군의 공격에 숨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면서 일종의 ‘시민 정신’을 대표하는 축구팀으로 거듭났다.
그렇기 때문인지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FC바르셀로나는 17만3000여 명의 회원(출자자)이 주인인 협동조합이다. 이들 회원들이 투표해 구단주 격인 회장을 뽑는다. FC바르셀로나의 회원 중 가입 경력 1년 이상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6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회장 선거에서 회장을 선출할 권리를 가지며 이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회원은 또 FC바르셀로나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총회의 구성원으로 2년간 활동할 수 있으며 총회는 연간 보고서, 장기 계획, 예산 등을 결의한다.
대기업의 총수가 구단주가 되거나 이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출자자인 회원이 클럽의 구단주인 회장을 선출하고 이사회를 구성하며 총회를 통해 클럽의 미래를 결정하는 FC바르셀로나의 독특한 구조는 ‘장기적 성장’을 가능하게 해준다.
실제로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등 FC바르셀로나 선수 중 대부분이 FC바르셀로나의 유소년팀 출신이다. 이들은 클럽의 장기 성장 지원 시스템을 거치며 ‘서로 눈빛만으로 마음이 통하는’ 뛰어난 패스워크 위주의 경기 운영을 통해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들로 거듭났다. ●자유 언론의 대표 주자 ‘AP통신’
통신사는 뉴스를 모아 다른 신문사나 잡지사, 방송 사업체에 뉴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세계의 수많은 통신사 중 ‘5대 통신사’로 꼽히는 곳이 있다. 로이터·AP·AF P·TAS·UPI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 중에서도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는 통신사가 있다. 바로 AP통신이다.
AP통신은 1848년 뉴욕의 한 신문사가 입항하는 선박으로부터 유럽의 뉴스를 공동으로 취재하기 위해 결성한 ‘항구뉴스협회(Harbor news association)’를 기원으로 한다. 2011년 기준 현재 AP통신은 AP에 가맹하고 있는 미국 내 회원 신문사 1400여 곳에 뉴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AP로부터 뉴스를 받는 해외의 언론 매체는 수천 개에 달한다.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지국에서 37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직원 가운데 3분의 2가 뉴스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에 지국을 개설하기도 했다.
AP통신의 주인은 바로 미국 내 1400여 개의 개별 언론사다. AP통신은 이들 언론사들이 발행 부수에 따라 경비를 분담하고 자신을 대표할 이사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AP통신의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 자산은 총 5억1000만 달러이며 출자금은 1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미국 오렌지 재배 농가의 힘 ‘썬키스트’
동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품인 ‘썬키스트(Sunkist)’는 ‘태양(Sun)의 입맞춤(Kissed)’이라는 의미만큼이나 강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썬키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오렌지의 대표 브랜드다.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를 재배한 역사는 18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0년대 미국 대륙횡단철도의 개통은 캘리포니아 지역에 국한됐던 오렌지 소비를 미국 전역으로 확대시켰다.
당연히 오렌지 산업은 크게 성장했지만 오렌지 재배 농가들은 도매상들의 횡포에 고통을 당해야 했다. 도매상들은 판매된 오렌지에 대해서만 대금을 지불했고 그 결과 모든 리스크를 감귤 재배 농가들이 짊어져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의 대부분은 도매상들이 가로채 가 오렌지 재배 농가들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결국 1893년 몇몇 오렌지 재배 농가들이 ‘남부 캘리포니아 거래소’를 만들어 판매와 유통을 직접 수행했다. 1905년에는 조합원이 5000농가로 늘었는데, 이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산업의 45%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거래소가 오늘날 썬키스트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썬키스트는 1908년부터 거래소에서 판매되는 고품질의 오렌지에만 붙인 이름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썬키스트는 최고급 오렌지의 대명사가 됐다.
오늘날 썬키스트협동조합은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의 6000여 오렌지 재배 농가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썬키스트협동조합은 엄격한 품질관리로 브랜드를 관리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많은 로열티 수입을 올리고 있다.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를 아우르는 또 다른 길 ‘웰치스’
포도 주스로 유명한 브랜드 ‘웰치스’는 토머스 웰치 박사가 개발한 것이다. 감리교 신자인 웰치 박사는 술을 몹시 혐오했다. 그는 ‘취하지 말라’라는 성경 문구에도 불구하고 교회 성찬식에 와인이 사용된다는 사실에 진저리 쳤다. 그래서 포도를 가공해 발효를 막는 실험을 거듭한 끝에 1896년 무알코올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오늘날 웰치스의 기원이 됐다.
웰치스의 탄생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웰치스가 협동조합 소유의 브랜드란 사실이다. 물론 웰치스 자체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주식회사다. 그러나 웰치스의 주식은 모두 전미포도협동조합연합회가 소유하고 있다. 전미포도협동조합연합회는 미국의 1만2000여 포도 재배 농가들의 협동조합이다. 즉 웰치스는 포도 재배 농가들이 지배권을 가진 협동조합 소유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미포도협동조합연합회는 왜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를 만들었을까. 이는 협동조합의 지배권을 유지하면서도 주식회사의 장점을 취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주식회사는 협동조합과 비교해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고 신속한 시장 대응에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가장 큰 목적은 구성원인 조합의 이해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반면 주식회사의 목적은 투자자인 주주의 이윤 창출을 위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웰치스의 사례는 ‘협동조합이냐, 주식회사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협동조합의 목적을 위해 주식회사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참고 도서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한국협동종합연구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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