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하루 뒤인 1월 26일 호텔신라는 보도 자료를 통해 제과와 커피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호텔신라 측은 “대기업의 영세 자영업종 참여와 관련한 사회적 여론에 부응하고 사회와의 상생 경영을 적극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아티제’ 철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호텔 측은 이어 “최근 대기업의 제과·외식업 등 영세 자영업종 진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아티제 역시 사회적 논란이 있어 과감히 철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룹 전체가 ‘상생’ 강조
아티제는 호텔신라의 자회사 ‘보나비’가 운영하는 커피·베이커리 카페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외국계 커피 전문점에 맞서는 토종 브랜드로 육성해 국내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목표로 2004년 처음 문을 열었고 2010년부터 보나비를 통해 운영해 왔다. 아티제는 이 사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는 회사다. 하지만 외국계 자본과 협력해 홍콩·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로 하는 등 이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오던 사업이었다.
이 사장이 전격적으로 커피·베이커피 사업을 정리하기로 한 건 대기업 오너가(家) 3세들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텔신라의 아티제를 비롯해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조선호텔베이커리’를 열었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는 롯데백화점 안에 베이커리 전문점 ‘포숑’을 선보였다. 여론은 이를 ‘재벌가 딸들의 빵 전쟁’이라고 표현하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 왔다. 그룹 내 계열사를 통한 전폭적인 지원과 거대 자본력을 통해 대표적인 동네 상권으로 꼽히는 베이커리 사업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호텔신라의 발 빠른 행보는 최근 삼성그룹 전체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의 MRO 사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해해 상생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올 초에는 가전 부문의 담합이 적발돼 그룹 수뇌부가 적극적으로 정화 노력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베이커리 사업까지 정리한 것은 상생 발전을 화두로 강조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최근 들어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협력사와의 상생을 주문하고 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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