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의 대화 박경희 삼성증권 UHNW사업부장 상무

[30대 그룹 여성 임원] 삼성증권 박경희 상무 “자신을 믿고 매일 꿈을 생각하세요”
약력 : 1968년생. 90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90년 한양투자금융 입사. 보람은행·씨티은행·
신한은행 PB센터. 2006년 삼성증권. 2011년 삼성증권 테헤란지점 지점장.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 UHNW사업부장 상무(현).


삼성증권 UHNW(Ultra High-Net Worth: 초고액 자산가)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박경희(44) 상무는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에서 단 두 명뿐인 여성 임원이다. 2010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임원이 된 이재경 상무에 이어 두 번째이고, 부장 3년 만에 임원 승진이란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 상무는 보람은행·씨티은행·조흥은행을 거쳐 2006년 삼성증권에 입사하기까지 프라이빗뱅커(PB)라는 한 우물을 파 온 프로페셔널이다. PB 생활 20년 만에 직장인의 꿈이라는 임원 자리에 오른 그녀가 여성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SNI서울파이낸스센터지점의 송은수(41, 이하 송) 차장과 조혜진(39, 이하 조) 차장이 스스로 롤모델로 꼽은 박 상무에게 직접 조언을 구했다.


(송)20년이 넘도록 PB라는 전문 분야에 몸담으신 비결이 궁금해요.

전공은 영문과였는데, 뜻하지 않게 투자회사에 입사했죠. 이후 보람은행이 국내에서 처음 PB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일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국내 PB 1세대이다 보니 이후로도 씨티은행·조흥은행 등에서 관련 업무의 셋업을 도왔고 2006년부터 삼성증권에 몸담고 있죠. 개인적으로 사람(고객) 만나는 일을 좋아해요. 숫자도 좋아하는 편이라 고객의 자산을 많이 외우고 있죠.(웃음) 단순한 자산 관리뿐만 아니라 성공한 자산가의 DNA를 나의 멘토로 모시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내 스스로 성장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멘토들이죠. 우연히 시작했지만 적성에 워낙 잘 맞는 일이다 보니 고객들이 꿈에 나올 정도가 됐어요. 그만큼 일 자체를 좋아한다는 의미죠.

(조)특별히 기억에 남는 멘토가 따로 있나요.

고객도 있고, 상사도 있죠. 고객들 중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이름만 대면 알만한 CEO, 또 자수성가한 자산가 등 여러 분이 있어요. 이분들 모두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의논 상대가 되어 주죠. 직장 안에서도 ‘내가 책임질 테니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는 상사가 큰 힘이 됐어요. ‘왜 못했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 분이셨죠. 그럴 때 실제로 결과도 좋았어요.

(송)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이나 불합리함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과연 내가 불이익을 받았나’하는 거예요. 1990년 학교를 막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일단 급여에서부터 남녀 차이가 났죠. 하지만 그 후로는 급격히 이런 차별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2000년에 씨티은행에 갔을 때는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다’고까지 했죠.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생각 속에 갇혀 있으면 피해 의식을 갖기 쉬워요. 그 대신 남녀를 편 가르지 않고 항상 ‘동기보다 130%는 잘 해내겠다’는 자세로 일했어요.

(조)현실에선 여성 임원 수가 적은데요.

제 주위만 봐도 정말 능력 있는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직장을 떠난 사례가 많아요. 여성의 숫자가 줄면서 지점장 100명 중에 여자 3명, 스카우트된 PB 5명 중에 여자 1명, 이런 식이 되는 거예요. 돌려 말하면 여기서 생존하는 여성이 상위 10%가 된다는 뜻이기도 해요. 남성이라면 80~90%의 어딘가에 숨을 수도 있겠지만 여성의 실적은 고스란히 노출되죠. 그게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항상 나를 긴장시키는 요소도 됐어요.
[30대 그룹 여성 임원] 삼성증권 박경희 상무 “자신을 믿고 매일 꿈을 생각하세요”
(송)여성으로서 유리했던 면도 있을 것 같아요.

고액 자산가들의 특징 중 하나가 수익성보다 신뢰감을 중시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100만 원쯤 되는 배당금 수익이 생겼을 때 연락해 운용 방향을 상의하는 식이죠. 남성 PB들에게는 없는 세심함과 꼼꼼한 배려가 이분들에게 ‘작은 돈도 이런데, 큰돈은 얼마나 많이 신경 쓰겠나’하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 같아요. 또 여성 PB는 수익성 못지않게 위험관리에도 뛰어난 편이죠. 큰 고객은 디테일에 강한 PB를 원해요. 그걸 진정성이라 생각하죠. 배려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선 분명 여성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조)임원과 직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임원이 되기 전에도 내가 맡은 업무, 지점을 항상 생각했어요. 지금도 사업부를 제대로 이끄는 게 중요하고요. 그런데 임원은 자신이 맡은 사업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더군요. 우리 사업부가 양보해 전체의 이익을 키운다는 발상이 가능해지는 거죠. 당장 올해도 중요하지만 내년, 또 그 후를 계획하는 장기적인 시각도 필요해요. 고객과의 만남에서도 내 말 한마디가 공식적으로 회사 전체를 대표한다는 마인드로 바뀌었죠.

(송)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는 어떻게 보시나요.

아직까지 금융권은 특히 보수적인 편인 게 사실이에요. 능력 있는 분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많이 떠나게 되니 여성들이 끝까지 일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게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봐요. 삼성은 1992년부터 공채가 시작됐고 좋은 인력 풀이 갖춰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여성 임원들이 훨씬 늘어날 거예요. 삼성그룹만 봐도 2010년에 7명, 작년 말에 8명의 여성 임원이 배출됐죠. 사회적인 분위기나 인식도 많이 바뀌었어요. 여야의 당 대표가 모두 여성이잖아요.(웃음)

(조)가정생활과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상무님만의 비결이 있나요.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둘 다 잘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저는 ‘슈퍼맘’을 포기한 지 오래고 직장 일에 올인하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지금처럼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겠죠. 아이들이나 가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기도 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한없이 미안해지기만 하면 가정과 직장일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죠.
[30대 그룹 여성 임원] 삼성증권 박경희 상무 “자신을 믿고 매일 꿈을 생각하세요”
(송)꼭 임원이 아니더라도 성공한 직장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임원이 꿈이라면 ‘될 수 있다’고 마음먹는 거죠. 꿈을 크게 갖고, 그 꿈을 가끔이 아니라 매일 생각하세요. 저는 매달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얘기한 지 오래됐어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소원을 얘기한 지 10년, 5년, 3년 만에 이뤄지는 게 신기하더군요. 간절히 바라지 않기 때문에 준비도 덜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남들과 비교만 할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꾸준하게 나아가면 결국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