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삼성그룹 인사에서는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임원 3명이 나오면서 성공적 직장 생활을 꿈꾸는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삼성그룹 내 임원 1700여 명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숫자지만 무엇이든 1호가 터지면 2호, 3호는 물밀 듯 쏟아지게 마련이다. 지난해 1월 한경비즈니스가 재계 30대 그룹과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 임원은 총 123명이었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148명으로 25명이 늘어났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 여성 직장인들은 조금씩 기업을 바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30대 그룹 여성 임원] 148명 대공개 그들은 어떻게 별을 달았나
[30대 그룹 여성 임원] 148명 대공개 그들은 어떻게 별을 달았나
‘열등감은 그것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가 느끼는 박탈감을 알 수 없고 키가 큰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들의 설움을 모르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은 출신 대학을 감추고 싶어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자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남자들은 알기 어렵다.

그녀들의 가장 큰 고민은 결혼·가사·육아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보다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본부장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부서장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임원이 될 수 있을까’ 등등. 사법고시·행정고시·외무고시에서 여성 비중이 절반을 넘어가는 시대지만 여전히 보수적이고 강고한 남성 문화가 지배하는 기업체에서 여성의 생존율은 높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임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고 동기부여가 확실해지는 계기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자 흑인들이 눈물을 흘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지금의 숫자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삼성그룹의 전체 임원 수가 1700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42명은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박세리 키드’가 나오고 10년 뒤 세계 여자 골프계를 한국 여자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듯이 한 번 봇물이 터지면 가속도가 붙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업종별로 극과 극의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듯하다. 약사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는 제약 업종은 여직원 비율도 높고 여성 임원은 당연히 많다. 식품·생활용품·위생용품 등의 소비재 업종은 그다음이다. 정보기술(IT) 분야도 여성의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나 건설·중공업·조선·금융 분야는 아직도 여성이 사내에서 성공하기 힘든 불모지다. 이른바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공대에 여학생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 하나다. 기업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공대를 기피하다 보니 졸업생도 드물고 기업에 지원하는 숫자도 적다 보니 남자가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는 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현장 분위기가 여성을 기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강렬한 햇빛, 자욱한 먼지, 독한 유해가스가 임신과 출산을 앞둔 여성이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야외이기 때문에 화장실이나 휴게실 등의 기반 시설을 여성 한 명을 위해 설치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핑계도 한몫한다. 해당 기업들도 여직원은 되도록 본사로 보내지 현장 발령을 내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기업 차원에서도 갖춰야 할 것들이 많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출산과 육아다.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 돌아가는 만큼 적극적으로 남편과 가족들의 역할 분담을 ‘독하게’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투사가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여성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직장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도 저도 못하고 안주하다가는 결국 퇴출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사와 일을 병행하지 못하면 자포자기 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보다 이직을 먼저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팁(tip)이다. 이때 자기가 원하는 목표가 더 높은 연봉인지, 시간과 여유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선배들이 조언하는 교훈은 ‘직장 내에서 ‘꽃’ 대접을 받는 여직원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여직원은 젊음이 사라지면 이용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은 퇴출된다는 이유에서다.



취재=우종국·장진원·이진원 기자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