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이자에 고통 받는 20대


이대출(가명·남·28) 씨의 아버지는 서울 동대문 인근에서 오랫동안 봉제 공장을 해 왔다. 디자이너들이 제작을 의뢰하면 주부 사원 10여 명이 재봉틀을 돌려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라앉은 의류 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물건을 주문한 업체들도 장사가 안 돼 하나둘씩 망해가기 시작했고 미수금이 늘어나면서 이 씨 아버지의 공장도 자금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납품처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지만 직원 10명의 월급과 임차료 등 운영비는 꼬박꼬박 나갔다. 아버지는 카드론·현금서비스·저축은행·대부업체 대출을 차례로 빌리기 시작했다.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되어 더 이상 자금을 융통할 데가 없어지자 결국 공장 문을 닫았다.

공장 문을 닫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봉제 공장 운영이다 보니 이번에는 이 씨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2009년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 씨에게도 아버지와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1금융권(은행)에서 사업자 대출을 받았지만 이를 카드론으로 돌려막고 카드론을 막기 위해 캐피털 회사에서 빌리고 캐피털 대출을 막기 위해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미술을 전공한 이 씨는 2010년 2월 졸업했지만 금융권 부채 3000만 원을 떠안은 채였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만 전화와 문자를 통해 수시로 채권 추심이 들어왔고 집으로도 찾아오는 등 구직에 전념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는 이미 그의 아버지와 말을 섞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소득 없는 대학생, 고금리 대출만 가능

김부채(가명·여·26) 씨는 부모님이 생활 능력이 없어 대학 등록금부터 생활비까지 모두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집안이 어려웠지만 성공에 대한 의욕과 목표 의식이 뚜렷했던 김 씨는 등록과 휴학을 반복하며 6년에 걸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지만 부모님의 지원이 없다 보니 생활비가 부족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음식점 서빙과 과외 교습 등의 일이었다. 서빙으로 받는 금액은 월 90만 원 남짓. 그러나 이 돈으로 휴학 기간과 수강 기간의 생활비를 모두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대학생은 1금융권에서 대출이 안 돼 김 씨 또한 카드대출을 받았고 여러 개의 카드를 만들며 이를 돌려막기하다가 한계에 부닥치자 다시 저축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늘어난 대출액이 2500만 원. 채무불이행자가 된 김 씨는 4학년이 되자 취업 준비를 위해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박이자(가명·여·28) 씨는 월급여 2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다. 박 씨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었지만 과도한 소비가 문제였다. 박 씨는 취업하자마자 장기 할부로 신차를 뽑았다. 경차도 아닌 중형차를 살 정도로 과시욕이 컸다. 차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의 모든 소비가 소득을 초과했다. 한 달에 쓰는 돈이 300만~400만 원 사이로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우아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만나야 했고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치장하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 별도의 생활비가 들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박 씨의 대출 금액은 급속히 늘어났다.

박 씨는 일정한 소득이 있다 보니 1금융권에서의 대출이 용이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쓰다 보니 어느 새 한도가 다 찼고 그 후부터 카드론·현금서비스 차례였다. 처음에는 고금리의 카드 대출을 즉시 갚기도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경각심도 무뎌져 카드 대출이 일상적이 됐다. 이후에는 역시나 캐피털 업체와 저축은행의 단계로 넘어갔다.

대출금은 3000만 원으로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갚아 나갈 수도 있었지만 원금보다 이자 부담이 크다 보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돌려막기를 하던 끝에 한 군데서 연체가 발생하자 다른 금융회사에서 일시 상환 독촉이 동시에 들어왔다. 결국 박 씨 또한 신용회복위원회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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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신불자→구직난’ 악순환이 문제

위 3가지 이야기는 모두 신용회복위원회의 실제 상담 사례들이다. 첫 번째 이대출 씨는 부모의 사업 실패가 자녀에게 옮겨간 것이다. 부모가 채무불이행자가 되면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녀에게 손을 뻗친 것이다. 신용회복위원회 명동지점의 이창인 수석심사역은 “부모의 사업이 실패하면 가족 모두가 채무불이행자가 된다. 부모가 먼저 채무불이행자가 되고 그다음 성인 자녀들이 차례로 수순을 반복한다. 부모는 사업을 그만두면 할 일이 없고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보려고 하다 보니 포기를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두 번째 김부채 씨는 청년층의 생활고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은 소득이나 담보가 없기 때문에 1금융권에서의 대출이 불가능해 금리가 높은 2금융권을 울며 겨자 먹기로 쓸 수밖에 없다는 데서 제도상의 허점이 발견된다. 학자금 대출은 순수하게 등록금 용도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생활비는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데,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학자금 대출 외에 대학생의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세 번째 박이자 씨는 생활고라기보다 물질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비롯된다. 박 씨가 만약 실용적인 목적으로 자동차가 필요했다면 경차 또는 소형차를 샀겠지만 ‘잘나가는 여자’로 보이고 싶었던 20대 직장인 박 씨는 중형차를 첫 차로 구매했다. 또한 소득이 있는 직장인이라도 쌈짓돈처럼 대출금을 꺼내 쓰도록 대출이 너무 쉬워진 것도 문제다. 대출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면 박 씨가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힘들게 대출을 끼고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부채 때문에 취업이 어려워지는 경우다. 취업하기 전까지 매달 부과되는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취업난 속에서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자 부담이 커져 결국 채무불이행자가 되고 계속되는 추심으로 취업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게 돼 취업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인턴으로 취업했는데 회사에 급여 가압류가 들어와 오래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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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