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니 ‘1년만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부채를 다 갚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계 부채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2007년 1월 27자에서 가계 부채 600조 원의 위험성을 경고한 지 불과 5년 만에 66%가 증가했다.
일상화된 부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운이 좋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쑥쑥 성장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가계 부채가 남의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내 가족 또는 친척 중 누군가의 빚이 5년 사이 평균 66%가 늘어난 것이다. 열심히 일해 저축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빚만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부채가 늘어날수록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은 굳이 거창한 경제 용어를 쓸 필요도 없이 개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빚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의 돈을 쓸 때는 이자를 내야 한다. 이자를 내는 만큼 생활비가 줄어들 테니 그만큼의 소비 여력이 사라진다.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니 기업의 재고가 늘어나고, 재고가 늘어나니 생산이 줄고,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한다. 근로자는 직장을 잃으니 당장 생활비가 없어 돈을 빌려야 한다. 한 번 늘어난 가계 부채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그 종착역은 상상에 맡긴다. 결론적으로 가계 부채는 나라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게 된다.
둘째로 과도한 가계 부채는 정부의 거시경제 조정 기능을 무력하게 만든다. 지난해 이상기후에 따른 식량난 등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하자 한국은행의 고민이 시작됐다.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올려 화폐 유동성을 억제해야 하는 것이 거시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가계 부채가 워낙 많다 보니 기준금리를 올리면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가계가 속출할 우려가 있다. 결국 금리를 동결하자니 물가를 잡을 수 없고,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 부채가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가계 부채가 한국은행을 불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셋째로 이미 전 세계인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똑똑히 목격한 바 있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가계가 속출하고 대출을 갚기 위해 주택 등 자산을 ‘땡처리’ 하듯 시장에 내놓으면서 전 지구적인 공황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의 예뿐만 아니라 한국도 2003년 소비 활성화를 북돋우기 위해 신용카드 발급을 남발했다가 된통 당한 바 있다. 당시 1000만 회원으로 국내 1위를 자랑하던 카드사는 결국 헐값에 매각돼야 했다.
당시는 카드사 부실에 한정됐지만 현재의 가계 부채는 전방위적이다. 농협을 포함한 5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저축은행·새마을금고·우체국 등), 기타 금융회사(보험사·증권사·카드사·연기금·대부업체 등) 등 모든 금융회사에 걸쳐 있다. 까딱 잘못하면 대한민국 금융이 모두 파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그 종말을 향해 펌프질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 이제 가계 부채의 심각성이 가슴에 와 닿는가? 심각성을 느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계라고 한다면, 이제 희망이 보인다. 그럼 이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취재=우종국·장승규·이홍표 기자
전문가 기고=백정선 TNV어드바이저 대표·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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