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은퇴와 집값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주택 수요가 줄어들게 되므로 점점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하락론자들의 주장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주택 수요는 인구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가구에 비례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주장하다 보니 부산 등 그동안 인구가 줄어든 지역조차 집값이 급등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11년 인구 추계에서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가 2019년이 아니라 2031년이라고 수정 발표함에 따라 앞으로 20년간은 ‘인구 감소에 의한 집값 하락론’이 설 땅이 없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베이비부머 은퇴에 따른 집값 하락설’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1958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생활할 자금이 필요한데,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몰려 있고 금융자산이 부족해 노후 준비를 위해 집을 팔기 시작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인구 감소론 만큼이나 그럴싸한 얘기다. 과연 그럴지 살펴보자.

베이비부머는 원래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195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 이때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전쟁 때문에 미뤘던 결혼이 늘어나면서 출생률이 높아진 것이다. 미국의 집값이 2007년부터 급격히 빠진 이유가 바로 이들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면서 자산을 처분했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설명까지 곁들이면 베이비부머 은퇴에 따른 집값 하락설은 진짜처럼 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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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론과 집값의 진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의 자가 보유율은 2010년 기준으로 67% 정도다. 자가 보유율은 집을 가지고 있는 가구의 비율, 즉 유주택자의 비율을 말한다. 인구의 3분의 2가 약간 넘는 사람들이 유주택자, 3분의 1 정도가 무주택자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베이비부머 세대랄 수 있는 55세 이상의 자가 보유율은 전체 세대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80% 정도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집을 팔았다면 자가 보유율이 전체 세대 평균치보다 낮게 나와야 한다. 결국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집을 팔아 2007년 이후 집값 하락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는 누군가 고의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통계를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필자로서도 주변에서 은퇴 후 집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은퇴 후 생활비 조달이 어려우면 보유한 금융자산을 먼저 쓰고 그다음 주식을 팔고 최후에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Reverse Mortgage Loan)를 신청하는 순서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것이다.

다시 표로 돌아가 보자. 부동산 시세가 가장 좋았던 2005~ 2006년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고 난 후인 2010년을 비교해 보면, 집을 가장 많이 처분한 세대는 은퇴 후 소득이 없는 세대가 아니라 한창 일할 나이인 35~44세다. 연령층이 올라갈수록 경제 위기 속에서도 집을 판 비중이 적다. 결국 2007년 이후 집값 하락 현상은 베이비부머 은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미국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한국에서는 일어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은퇴한 어떤 사람이 베이비붐 어쩌고 하는 말에 혹해 집을 덜컥 팔았다고 하자.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집을 파는 순간 세입자가 되는 것이다. 전세가 집값보다 싸니까 전세로 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세는 2년마다 오른다. 그 돈은 어디서 조달해야 할까. 자식들에게 2년마다 손을 내밀기도 어렵지만 자신들의 집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에 부모의 전세 인상분을 꼬박꼬박 내줄 자식이 얼마나 될까. 그런 자식이 있다면 애초에 집을 팔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과거 통계로 볼 때 집을 사서 전세를 주고 10년 정도 지나면 전셋값이 맨 처음에 그 집을 샀던 가격보다 비싸게 된다. 집값과 전셋값의 차이를 이용하려는 생각은 앞으로 전셋값이 영원히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은 전세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다면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그 집에서 내쫓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세를 올려주지 못하거나 월세를 부담할 수 없다면 더 외곽이나 더 열악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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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베이비붐은 1969~1974년생

둘째, 자산을 처분해 소비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10년만 버틴다면 다른 재원이 생기고, 그 다음 노후 대책이 해결된다면 자산을 처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기대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자산을 처분한다면 그것으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 살까봐 두려워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1가구 1주택이라면 역모기지(Reverse Mortgage Loan)가 대안이 될 수 있다. 1가구 1주택자이면서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면 주택의 가치에 따라 매달 연금식으로 일정액을 받을 수 있다. 살고 있는 집에 그냥 살면서 생활비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에게 집 한 채는 물려주려는 부모들의 생각으로 역모기지 가입이 그동안 저조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노후 대책으로 가장 인기 있는 제도다. 우리도 가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점점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가구 다주택자도 자산을 처분하는 방법보다 주택을 월세로 돌려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 자산을 처분해 현금화하면 자식을 포함한 주변에서 그 돈을 탐하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몇 푼의 현금을 가지고 부모 자식 간에, 또는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주택을 세를 주고, 그 임대료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가 나중에 자식에게 그 집을 물려주는 것이 부모로서도 현명한 처사다.

셋째, 베이비부머 은퇴라는 것도 상당 부분 과장됐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가 눈앞에 있는 1958~1963년생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80만 명이 넘는 연령대’는 1959년생부터 1974년생까지와 1980~1981년생까지 모두 18년이다. 몇 개 연도에 인구가 집중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더구나 인구가 많은 연령대는 1958~1963년생이 아니라 1971~1972년생이다.

이들 1971~1972년생은 1958~1963년생보다 평균 6%나 더 많다. 베이비부머라고 구분 짓기도 모호하지만 굳이 한국에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누구냐고 하면 1969~1974년생까지라고 보는 게 맞다. 이 연령대가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잘못 알려진 1958~1963년생보다 약 19만 명 정도나 많다.

이런 이유를 보면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특정 계층이 한꺼번에 은퇴할 가능성도 높지 않고 그 시기가 지금 당장도 아니다. 더구나 이들이 은퇴한다고 해도 소유하고 있는 집을 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을 보아도 나이가 많을수록 주택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은퇴 후 주택을 처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연령층 높을수록 집 파는 사람 적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