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미국 EQT 경영전략 담당 부사장


박희준(44) 미국 EQT 부사장은 “2015~2016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며 “한국이 이 기회를 놓치면 중국의 에너지 종속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부사장이 꼽는 변화의 진원지는 셰일가스다. 미국은 최근 ‘셰일가스 붐’으로 조용하던 에너지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셰일가스 덕분에 2009년 러시아를 제치고 단숨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에 올랐다. 중국·인도·유럽 기업들도 미국 전역을 휘저으며 대대적인 가스전 사냥에 나서고 있다. 3~4년 뒤면 셰일가스의 영향이 전 세계로 확산된다. 미국이 셰일가스 수출에 나서고 중국도 자체 채굴 기술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 최대 가스 업체인 EQT는 체사피크에너지와 함께 셰일가스 시장을 개척한 주역 중 하나다. 박 부사장은 “한국이 가스 인수·합병(M&A)에 뛰어들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 휘둘리고 있다”며 “기회가 되면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한국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연말 휴가 차 한국을 찾은 박 부사장을 2011년 12월 26일 만났다.
“향후 3년 내 에너지 시장 대격변 온다”
천연가스 시장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입니다. 업계에서는 2020~2030년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요. 그때까지 가장 친환경적이고 가장 경제적인 대안이 바로 천연가스죠. 천연가스는 화석연료 중 공해를 가장 적게 유발하거든요.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원자력도 대안이 되지 못해요. 게다가 원유는 매장량이 계속 줄지만 천연가스는 거꾸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요. 셰일가스 때문이죠. 셰일가스 상업화 이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떨어졌어요.

미국에서 셰일가스 붐이 언제 시작됐습니까.

셰일가스는 단단하게 굳은 암석(셰일)에 갇혀 있는 천연가스입니다. 10년 전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200년 전부터 석탄을 캐낸 지층 밑에 엄청난 가스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죠. 옛날 기술로는 발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체사피크에너지 최고경영자(CEO)와 EQT CEO가 모험적인 투자를 했어요.

2007년에도 이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100억 원을 투자했지요. 그게 1조 원짜리 사업이 됐어요. 지금은 거의 매일 새로운 가스전이 발견되고 있어요.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죠. 기존 가스전은 수직으로 1000피트 정도 뚫지만 셰일가스전은 수직으로 1만 피트를 파고들어가 다시 수평으로 뻗어가죠. 가스전 하나에서 나오는 양이 엄청나요. 또 압력이 워낙 세 별도 장치 없이 100마일까지 그대로 갑니다.

에너지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전통적으로 미국 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는 텍사스 휴스턴이죠. 셰일가스 하나로 죽어가던 도시 피츠버그가 제2의 휴스턴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어요. 최근 셰일가스 시장은 오일 메이저들의 참여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세계 최대 기업 엑손모빌이 20조 원을 투자해 가스전을 보유한 XTO에너지를 사들였어요. 미국 기업만이 아니죠. 미국은 지금 미국과 유럽, 아시아 에너지 거인들의 각축장이거든요. 페트로차이나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같은 중국 기업과 인도 업체들이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이죠. 미국 전역 48개 주를 샅샅이 훑고 있어요.

중국이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중국은 에너지를 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 봅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죠. 에너지 문제만큼은 중국도, 미국도 절대 양보하지 않아요. 20년 후에는 에너지를 가진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거든요. 어쨌든 지금 중국이 미국 가스전을 사면 땅은 미국에 있지만 그 안의 천연가스는 중국 것이 됩니다. 또 중국에서도 셰일 가스 시추를 시작했지만 기술력이 훨씬 뒤져요. 미국 기업을 인수해 채굴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죠. 2015~2016년이면 중국이 독자적인 기술 확보에 성공할 것으로 봅니다. 우리 자식 세대에서는 한국이 중국의 에너지 종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걸 막으려면 앞으로 3~4년이 굉장히 중요해요.

석유공사 등 한국 기업도 미국 가스전 확보에 나섰는데요.

해외 자원 투자는 이명박 정부가 한 것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한두 가지 사건으로 이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돼요. 방향은 맞지만 경험이 없어 너무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문제죠. 미국 투자은행들은 한국을 거의 ‘봉’으로 생각해요. 미국에서 잘 팔리지 않는 유전을 비싼 가격에 살 용의가 있는 나라라는 거죠. 에너지 자주율을 높이라는 강한 정책 드라이브가 걸려 있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에요. 미국 투자은행 사람들이 저보고 ‘10년 만의 횡재’라고 말해요. 중국인으로 착각한 거죠. 정말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한국이 자원 M&A에서 소외되는 것은 에너지 전문가가 없어서가 아니에요. 에너지를 아는 금융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죠. 미국 에너지 산업을 움직이는 것이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거든요. 지금은 가스전이나 유전의 가치를 정확하게 산출하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과 딜을 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요. 투자은행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걸 검증할 방법도 없고요. 사실 에너지 딜은 굉장히 정확한 가격 산출이 가능한 딜입니다. 매장량도 확률에 따라 여러 가지고 확률이 낮으면 가격도 할인이 돼야죠. 또 생산 초기에 처음 30일 동안 나오는 가스 양으로 향후 생산량을 정확하게 뽑아내는 ‘툴’이 있어요. 미국 에너지 업계에 있는 한국 출신들도 대부분 엔지니어죠. M&A쪽은 거의 없어요.

또 개선해야 할 점은 없습니까.

한국 기업 간에 정보 공유가 필요해요. 중국이 잘하는 부분이죠. 중국은 에너지 관련 국영기업들이 미국 가스전을 놓고 서로 경쟁합니다. 하지만 서로 협조 체제를 긴밀하게 유지하죠. 한 기업이 들어가면 다른 기업이 발을 빼요. 불필요하게 가격을 올리지 않으려는 거죠. 중국계 MBA 동기들이 중국 기업을 잘 봐달라는 전화를 많이 해요. 인적 네트워크가 잘 가동되는 거죠. 201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기업·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셰일가스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자고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못했어요.

앞으로 셰일가스 시장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2015~2016년이 큰 전환점이 될 겁니다. 세계 에너지 시장 자체가 재편될 거예요. 2014년 파나마운하 확장 공사가 끝나요. 수출용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미국이 지금은 안보 차원에서 천연가스 수출을 억제하고 있지만 오일 메이저들이 참여한 이상 이게 풀리는 건 시간문제예요. 막대한 셰일가스를 보유한 호주도 그때쯤이면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수출에 나설 것이고요. 중국 역시 독자적인 채굴 기술을 확보하겠죠. 천연가스 가격은 더 떨어지고 전 세계 가격이 평준화될 겁니다. 현재 천연가스 가격은 열량 단위인 1MMbtu당 3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한국은 원유에 연동된 구매 계약으로 17달러에 사오고 있지요.
“향후 3년 내 에너지 시장 대격변 온다”
약력:1968년 경남 합천 출생. 1991년 경희대 사학과 졸업. 1996년 삼성화재 인터넷마케팅팀 대리. 2002년 미국 카네기멜론대 MBA 졸업. 2001년 EQT 인수·합병(M&A) 애널리스트. 2007년 EQT 전략 담당 이사. 2009년 EQT 전략 담당 전무. 2010년 EQT 경영전략 담당 부사장(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