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 토크
박근혜의 한나라호(號)가 2011년 12월 27일 닻을 올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오버페이스’로 촉발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당 안팎의 예상대로다. 하지만 불과 3일도 지나지 않아 한나라호는 닻은 올렸지만 아직은 대양으로 나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 정점에는 비대위원회 체제가 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 한나라호를 이끌 비대위원으로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 의장 등 당연직과 쇄신파의 김세연·주광덕 의원 등 당내 인사를 제외하고 6명을 모두 당 밖에서 끌어왔다.
이들은 비(非) 혹은 반(反)한나라당 성향이 대부분이다.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전두환 정권 이후 정권에 상관없이 청와대·장관·국회의원(비례대표로만 4선)을 지냈다. 김 비대위원은 ‘토지 공개념’을 만들었고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은 인물로 보수 인사지만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4대강 사업 반대론자이며,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는 박근혜 위원장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의 딸이다. 세간의 화제인 26세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는 한나라당이 취약한 2040세대다. 비대위원 쇄신 강공에 여기저기서 아우성
이들이 한나라당 지도부를 차지하자마자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열정 없는 국회의원은 다 나가야 한다”, “MB (이명박 대통령)와 확실한 선 긋기를 해야 한다. MB틀 속에 갇히면 아무것도 안 된다”, “현 정권 실세들은 모두 용퇴해야 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결과물로 첫 회의 날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공격한 사건과 연루된 최구식 의원의 자진 탈당 권유로 이어졌다.
이 중에서 무엇보다 한나라당을 분열로 만들고 있는 건 정치인들에게 민감하게 작용하는 ‘용퇴론’이다. 이상돈 교수는 비대위원이 되고 나서 “박근혜 주변에 낡은 생각을 가진 염색한 노인네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했고 김종인 위원은 “현 정권 실세들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말들이 나오자 친이계 핵심 인사들이 발끈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사랑의 매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의 대답은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이라고 했으며 이재오 의원도 “오늘은 할 말이 없다”고 넘어갔지만 다른 의원들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더 나아갔다. 홍 전 대표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부정하는 사람을 당 비대위원으로 둬서 되겠느냐”며 이 비대위원을 비판한데 이어 김종인 위원을 향해선 “내가 검사 시절 뇌물 수수에 대해 자백을 받은 사람”이라고까지 공격했다. 이 와중에 친이계로 분류됐다가 아나운서 성희롱 사건으로 당에서 제명된 강용석 의원은 이준석 위원의 학력과 병역 등의 의문을 제기하며 ‘신상 털기’에 나섰다가 트위터로 이 위원과 싸우는 일까지 발생했다.
박 위원장의 눈치를 보는 친박계 의원들도 겉으론 말을 못하지만 “공천은 시스템으로 하는 것이고, 벌써 비대위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두고 보자”는 반응이다. 쇄신파 의원들만 반기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비대위 활동을) 거침없이 해줬으면 한다. 당이 기득권과 계파에 연연해서는 파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홍정욱 의원은 “쇄신파가 그동안 계속 생각해 왔던 것을 외부에서 말해 주니 감사하다”고 했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