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작가 손미나

연말이라고 들뜨지도 않고 새해가 와도 설레지 않고 그날이 그날 같은 ‘뻔’한 일상.

비단 남의 일만은 아닐 겁니다. 흥미진진한 삶을 꿈꾸는데 현실에 치여 마음만 ‘굴뚝같은’ 그런 분들에게 한경비즈니스가 긴급 처방에 들어갑니다.

세상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며 펀(fun)하고 피어리스(fearless)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들처럼 살 수는 없더라도 간접 체험만으로도 일상 속 작은 탈출구가 되길 바라며….
아나운서 출신…보헤미안으로 살다
그녀는 잘나가는 아나운서였다. 교양과 예능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타고난 ‘방송쟁이’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명랑 쾌활한 성격에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고 인기로 치면 톱스타 부럽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2007년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1997년 KBS 아나운서 공채로 입사했으니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10년이면 누구에게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한 터닝 포인트 그 이상이었다. 여행 작가로의 전향. 그야말로 두 번째 인생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분명 놀라운 선택이었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아나운서 시절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며 넘치는 열정을 보여줬던 그녀였다. 2006년 펴낸 첫 저서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어쩌면 새로운 삶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손미나, 나는 자유다’의 다른 표현 말이다.



자유의 아이콘, 행복을 추구하다

아나운서 출신…보헤미안으로 살다
현재 그녀는 프랑스에 체류 중이다. “이번 주말엔 스위스 국경과 맞닿은 프랑스 알프스 지역으로 스키 여행을 가요. 크리스마스도 보내고 오게 될 거에요.” 인터뷰 요청 e메일을 보내자 ‘좋다’는 응답과 함께 주말 여행 계획이 따라왔다. 짧은 문장에선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요즘 그녀는 프랑스어를 공부 중이고 여행 에세이 프랑스 편 집필을 시작했다.

겨울엔 질리도록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닐 생각이라 그에 대비해 예술과 역사 관련 서적들도 읽고 있다. 프랑스 최고 쇼콜라티에(초콜릿 아티스트) 장인에게 디저트 만드는 법 교습을 받고 기타와 요리, 아프리카 전통춤을 배우는 건 프랑스를 떠나기 전 꼭 해야 할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한 사람이 이렇게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 수 있나 싶을 정도지만, 그녀는 그렇게 해왔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사실 그녀는 방송할 때도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방송을 내려놓고 ‘전향’하면서는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의 삶은 방송할 때와 달리 정적이고 고독한 순간이 더 많지만, 제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이 많고 동시에 세상을 향해 더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어 행복해요. 방송을 할 땐 상상도 못했던 자유가 생긴 것도 사실이에요. 일을 더 적게 하거나 쉽게 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 어떤 일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가서 머무를 수 있는 자유, 그런 거죠.”

언제부턴가 그녀는 자유의 아이콘이 됐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삶을 동경한다. 일면엔 ‘팔자 좋은 사람’ 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게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특히 서른 살을 넘긴 여자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자리를 박차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 만류했고 스스로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

러나 선택을 주저하기엔 여행 작가로서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게 아니었다. 대학 시절 별명이 ‘계획녀’였을 정도로 철저히 인생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사는 그녀에겐 ‘가야 하는’ 길이었다.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 그게 손미나가 사는 방식이었다.
아나운서 출신…보헤미안으로 살다
타인들의 삶을 통해 ‘자극’을 얻다

여행 작가가 된 후 도쿄 여행기인 ‘태양의 여행자’와 아르헨티나 여행기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출간한 그녀는 여러 권의 번역서 외에도 최근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발표하며 소설가 타이틀까지 달았다. 또 한 번의 ‘변신’에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녀에겐 오래 돌아온 ‘나의 길’이었다.

소설 작업은 태어나 해본 일 중 가장 힘들고도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일이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여행 작가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한 단계 발전하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숙제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아나운서 출신…보헤미안으로 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길이었어요. 창작 교습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제가 혼자 한 권의 장편 소설을 써내는 일은 수영도 못하면서 태평양 한가운데서 육지까지 헤엄쳐 간 것과 같은 일이죠. 천 명이 소설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 한 명 있을까 말까라고 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오래달리기를 마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레이스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요.”

타이틀은 달라졌지만 그녀의 삶의 한가운데는 늘 사람들이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과 이야기하고 그것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다만 카메라 렌즈와 브라운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발로 다니며 사람을 만난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그래서인지 그녀의 책 속에는 늘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이야기, 그들을 통해 그녀는 “내 삶이 막 자라남을 느낀다”고 했다.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여행서에 열광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스페인과 도쿄, 아르헨티나의 배경 자체도 열정적이지만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얘기가 짜릿한 자극이 된다고나 할까. 화제가 됐던 알랭 드 보통,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만남이 그녀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나운서 출신…보헤미안으로 살다
“두 분 모두 평범하지 않다는 첫인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꼭 어린아이처럼 수줍음과 호기심이 많았고, 또 궁금한 건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는데 그럴 땐 눈동자가 반짝거렸죠. 그분들은 모두 ‘미치는 것, 혹은 남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더군요. 스티브 잡스도 그랬잖아요. ‘스테이 풀리시(Stay foolish).’ 남들이 바보라고 하는(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라고 말이죠. 거장들과의 만남은 저에겐 항상 큰 자극이었어요. 만남 자체만으로도 용기가 됐고 그들의 겸손함과 삶을 단순하게 대하는 태도는 큰 교훈이 되었죠.”
아나운서 출신…보헤미안으로 살다
개인적으로는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 또한 마음에 와 닿았다. “인생은 본래 기쁜 순간보다 힘든 순간이 많은 여행길 아니던가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삶은 훨씬 더 가벼워지고 즐거워집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곤 새해가 됐어도 별다른 설렘도 감동도 없이 주어진 현실에 급급한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젊음은 시간이 가면 누구나 잃게 되지만 청춘은 설렘을 간직한 사람과 평생 함께한다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뭔가 가슴을 설레게 할 일을 찾아 시작해 볼 좋은 핑계입니다. 지난해 ‘사는 것이 즐거우냐’고 묻는 후배에게 저도 모르게 ‘재미있어 죽겠다’고 답하고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나요. 설레는 일을 찾아 열심히 달리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삶의 선물이 될 거예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손미나, 삼성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