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독서 노트

우리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말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머리와 입 사이에 필터를 장착하고 산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필터를 없애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나아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 없으리라. 예를 들어보자. 한 남자가 처음 만난 아름다운 여자에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나는 지금 당신을 안아보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Book]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괴짜 이야기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A. J. 제이콥스다. 그는 ‘획기적인 정직 실천하기’라는 이름하에 이런 엽기적인 일을 벌인다. 거짓말 없이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거창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과연 이렇게 행동한다면 어떨지 그 결과를 기사로 쓰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신의 이 실험이 바보 천치 같은 발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실행한다.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장모가 저자에게 상품권을 생일 선물로 준다. 그런데 저자는 이 상품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이럴 때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고맙다고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때 거짓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생각대로 이야기한다. 이런 선물을 좋아하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주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아마 앞으로 장모는 사위에게 어떤 선물도 주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저자는 이런 과정에서 ‘부적절한’ 솔직함이 주는 짜릿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선택’의 부담에서 놓여난 역설적인 기쁨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그는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저런 말을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간단히 진실만을 솔직히 말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실험 1주일이 지나자 거짓말의 빈도수가 40% 줄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문제 또한 발생한다. 매일 수도 없이 상대방과 대치 상황이 연출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부부 관계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물론 빙빙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니 상당한 시간이 절약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대차대조표를 그려본다면 이는 명백히 손해가 나는 거래일 터. 선의의 거짓말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 실험은 이 책에 소개되는 9가지 실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인터넷에서 여성인 척하기’란 실험도 재미있다. 저자는 인터넷 남녀 연결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여자 역할을 한다. 앞에서 말한 정직 실험과는 정반대로 거짓 상황이다. 미모의 여성 사진을 올려놓았기에 남성들의 e메일이 흘러넘치듯 답지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남성에게는 e메일로 딱지를 놓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평생 느끼지 못한 통쾌함을 느낀다. 자신이 총각 시절에는 그냥 여성들에게 매달려서 사귀어 보자고 한 기억밖에 없는데, 지금은 자신이 상대방을 마구 딱지를 놓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여자로 행세한다는 것이 아주 최고의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실험이다.

9가지의 실험 과정이 아주 코믹하게 그려져 있어 읽으면서 낄낄거리며 웃게 된다. 웃음이 좀 필요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A. J. 제이콥스의 또 다른 책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와 ‘미친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다음에 벌일 또 다른 실험이 궁금해 미치겠다.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A. J. 제이콥스 지음┃이수정 옮김┃382쪽┃살림┃1만3800원
[Book]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괴짜 이야기
북 칼럼니스트 eehw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