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홍록기


청담동에 있는 한 웨딩스튜디오. 파란색 재킷에 노란색 바지 등 파격적인 의상을 차려입은 신랑이 두 명의 신부와 한창 웨딩 촬영 중이다. 장미꽃 하나까지 촬영 소품을 일일이 챙기며 신부들에게 포즈를 세심하게 지도해 주고 있는 신랑은 바로 개그맨 홍록기.
노총각 연예인의 웨딩 사업 도전기
웨딩 컨설팅 회사 ‘나우웨드’의 최고경영자(CEO)로서 ‘홍보용’ 촬영이지만 진짜 예비 신랑 신부의 그것처럼 현장은 화기애애했다. 이번이 두 번째 촬영이라 그나마 여유가 생겼지만, 첫 촬영 때는 진짜 신랑이 된 것처럼 무척 떨리더라는 그는 고객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신랑 체험’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홍록기가 웨딩 사업을 시작한 건 지난 3월.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등 웨딩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나우웨드는 오픈 7개월 만에 20명이던 직원이 60여 명으로 늘었고 등록한 회원만 500쌍에, 이미 웨딩을 진행한 커플이 200쌍이 넘을 정도로 승승장구 중이다.

정확한 매출을 밝힐 수는 없지만 사업 시작 전 높게 잡아 뒀던 목표치를 이미 넘어섰을 정도다. 김태욱·박수홍·황승환 등 이미 동료 연예인들이 선점한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데다 경기 불황으로 결혼하는 커플이 줄어들고 있는 악조건 속에서의 결과여서 더욱 의미 있는 성과다.

이전에도 패션 사업과 클럽 운영 등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사’를 사업으로 확장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웨딩 사업 역시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했다.

“지인 한 명이 결혼할 때 웨딩플래너란 직업을 알게 됐는데,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서도 보람을 느끼며 일하는 걸 보고 매력을 느꼈어요. 결혼이라는 평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은 신랑 신부를 더 기쁘게 해주는 직업이잖아요. 누군가는 결혼도 안한 노총각이 무슨 웨딩 사업이냐고 하는데, 제가 이미 결혼했다면 오히려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단한 목표 의식을 갖고 회사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저 결혼에 대해 갖고 있는 아름다운 환상, 그걸 그대로 실현해 주고 싶은 거죠. 그게 나우웨드만의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웨딩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김인수 공동대표가 주로 ‘숫자적’인 경영을 맡아 한다면 홍록기 대표는 웨딩플래너 관리 및 교육, 협력 업체 접촉과 홍보 등을 맡아 ‘발로 뛰는’ 경영을 하고 있다. 고객 응대는 그가 주력하는 부분이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커플들과는 하다못해 영상통화를 통해서라도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하트 그림을 그려 넣은 사인 한 장에 마음을 담아 선물하기도 한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에게 작지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도 한 50팀을 만났는데, 저를 처음 보면 웃는 분들이 많아요. 결혼 준비하면서 힘들고 또 싸울 일도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제 사인을 보면서 싸우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옛날부터 어디 가서 사주를 보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살 팔자라고 그랬어요. 우리 직원들이 생각하는 홍록기란 사람도 비슷하더라고요. 늘 즐겁고, 해피 바이러스가 넘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나요. 인생이 사주대로 가는 것 같아요(웃음).”
노총각 연예인의 웨딩 사업 도전기
공격적 마케팅과 사람 중심 경영 전략

사업이 초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홍록기 식 ‘통 큰’ 마케팅도 한몫했다. 지난 9월 ‘CEO 홍록기가 7억 쏜다’라는 슬로건 아래 매일 30명에게 고급 웨딩드레스를 무상으로 대여하는 파격 이벤트를 실시했다. 경제도 어려운데 결혼식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큰 예비 부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한 이벤트는 1주일 만에 15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리면서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였다. 그 성원에 대한 보답으로 10월에는 ‘홍록기 7일 동안 7억 쏜다’는 내용으로 예비 신부 1000명에게 무료로 드레스를 빌려주는 이벤트를 열어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래 그렇게 통이 크지 않은데 목표가 생길 땐 통이 커져요(웃음). 사실 처음에는 결혼하기 어려운 형편인 분들에게 공짜로 드레스를 빌려주는 이벤트를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발전된 거예요. 그 아이디어의 시작도 어떤 회원이 홈페이지에 어려운 분들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남겨준 글에서 비롯됐어요. 그 글을 보고 뭔가 뭉클하더라고요.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 주는 직업이잖아요. 제가 컴퓨터를 잘 못하는데 직원들에게 물어가며 ‘가능하게 하겠다’는 댓글을 남겼더니 거기에 또 엄청난 댓글이 달리는 걸 보고 행복해졌죠. 지금 원래의 이벤트도 진행 중에 있어요.”

회사가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줄 예상도 못했다는 그는 공동대표를 비롯해 웨딩플래너들의 넘치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또 “웨딩플래너들이 고3 수험생처럼 진짜 열심히 일한다”라며 “플래너들은 부하 직원이 아니라 파트너이며, 오히려 나를 더 채찍질하고 긴장하게 한다”고 고백했다.

“규모가 커져서 사실 걱정도 돼요. 가수들이 왜 1집이 대박나면 2집 낼 때 더 신경 쓰이잖아요. 지금 제가 그런 상태예요.”

웨딩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혼설 해프닝을 겪기도 했던 그는 사업을 시작한 후 오히려 결혼은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두 사람만의 결혼이 아니라 집안 대 집안, 부모님의 의사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가 아쉽다는 생각에 그는 진짜 신랑 신부만을 위한 ‘애프터 웨딩’ 이벤트도 계획 중이다.
노총각 연예인의 웨딩 사업 도전기
“결혼 과정이 진짜 번거롭고 복잡하잖아요. 두 번 못하겠어서 그냥 산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닌 거죠. 평생에 가장 중요한 첫날밤, 미래를 얘기하기는커녕 피곤에 절어 잔다잖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사업을 시작한 후 그런 우리나라 결혼 문화를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향후 토털 웨딩 사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큰 기업보다는 좋은 브랜드를 꿈꾸는 그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사람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회사가 바로 그것. 결혼한 고객들에게 형식적인 차원의 ‘관리’가 아닌, 진심 어린 ‘소통’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나우웨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