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6~8시. 퇴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하루의 노곤함을 씻는 이들이 많다. 진심을 담아 고른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된다. 그러기에 그녀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유난히 고정 애청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CBS 음악FM ‘저녁스케치 939’의 제작과 진행을 겸하고 있는 배미향 프로듀서(PD) 얘기다. 어떤 땐 큰언니·큰누나처럼, 어떤 땐 오래된 친구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배 PD의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정감어린 사연들이 넘쳐난다. 방송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청취자의 사연들은 배 PD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다른 프로그램 작가나 PD들이 항상 부러워해요. 어쩌면 그렇게 좋은 사연들이 많이 들어오느냐고요. 게다가 글들은 또 어찌나 잘들 쓰는지 모른다니까요?(웃음)” 사연 선정에서부터 곡 선정, 전체 프로그램 조율까지 도맡아 하는 PD 역할에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생방송을 진행하는 DJ 역할을 겸하다 보니 다른 DJ나 PD보다 곱절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좋은 사람들의 좋은 사연을 전하다 보면 피곤한 줄 모른다고 한다.
[배미향 CBS PD 겸 DJ]노곤함을 씻어주는 ‘천상의 목소리’
음악 감상실 DJ서 CF·방송 주름잡는 라디오 스타까지

“방송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는 청취자분들이 많은데요, 청취자들의 사연과 노래를 통해 저 역시 많은 용기와 힘을 얻곤 하죠.” 청취자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 때문에 배 PD는 방송 중에는 되도록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방송은 듣는 분들의 것이니까요. 제 개인사가 그분들에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방송했는데도 불구하고 ‘배미향’이라는 이름과 그 목소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얼굴은 물론이요, 나이대도 가늠할 수 없어 ‘도대체 몇 살인데, 이렇게 올드 팝의 감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배 PD가 방송과 연을 맺게 된 것은 36년 전, 1975년에 CBS에 입사하면서부터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지인의 소개로 대형 음악 감상실에서 DJ를 하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여자 DJ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죠.” 음반들의 먼지를 닦으며, 청소를 하며,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시간, 손님들이 별로 없던 시간대에 음악을 선곡해 틀어주곤 했다.

“그러다 당시 다른 중요한 시간대를 맡고 있던 여성 DJ가 그만뒀을 때 저에게 기회가 왔어요. 선곡 솜씨를 진작부터 눈여겨봤던 당시 대표가 그 자리를 제의하시더라고요.” 처음으로 노래와 노래 사이에 자신만의 멘트를 넣기 시작한 후부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의 차분한 진행 솜씨에 반한 이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CBS의 모 프로그램에서 공개방송을 나왔다. 공개방송을 진행하던 남자 아나운서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함께 MC를 본 후 방송사의 스카우트를 받았다. 딱히 아나운서 공부를 한 적도, DJ 공부를 한 적도 없었지만 안정감이 돋보이는 차분한 목소리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진행 솜씨를 높이 산 덕분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실력을 쌓은 그녀는 얼마 후 제작까지 겸하게 됐다. “원래 DJ를 할 때부터 선곡이나 프로그램 속 코너 제작 등에도 많이 참여하곤 했어요. 그런 부분들을 인정해 주셔서 PD 발령까지 내신 게 아닐까요?” 제작을 겸하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프로그램 안에 자신의 진심을 녹여내는데 더 많은 공을 기울였다. 2000년 9월부터 맡아 시작한 ‘저녁스케치’는 그녀의 진심과 목소리가 가장 돋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DJ 배미향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킨 프로그램이다.
[배미향 CBS PD 겸 DJ]노곤함을 씻어주는 ‘천상의 목소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DJ

“사실 요즘 다른 라디오 방송들은 대부분 젊은 DJ들이 전진 배치돼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많이 진행되잖아요. 올드 팝의 추억과 감성을 함께 나눌 수 있는 DJ들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그 반향으로 우리 방송에 애착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청취자 외에도 점점 그 ‘진심어린 목소리’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목소리 덕분에 2003년 KBS 1TV 프로그램 ‘한국의 미’의 내레이션을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내레이션부터 KBS 아침 드라마 내레이션까지 다양한 방송 활동을 겸하게 됐다. 방송 활동이 늘어나고 라디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광고 쪽에서 활동할 기회가 늘었다.

그 덕분에 목소리조차 유행에 따라 금세 교체되는 숨 가쁜 CF 세상에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목소리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특별한 목소리 톤을 주문하지 않아요. 방송을 통해 들려준 목소리 이미지 그대로를 원하죠.” 유독 금융권이나 항공·아파트 등 신뢰감을 전달해야 하는 기업 광고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수십 년에 걸쳐 방송을 해 왔지만 아직도 청취자들의 사연을 전하고 방송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매일 설렌다.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었겠어요. 저야말로 정말 행복한 DJ가 아닐까요?(웃음)”

설렘과 긴장, 행복 속에 매일 저녁 ‘저녁스케치’라는 이름으로 청취자를 만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이를 기념해 배 PD는 요즘 10주년 기념 콘서트 준비로 한층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11월 15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저녁스케치 진행 10주년 팝스 콘서트를 열 예정이에요. 지금까지 한결같은 응원과 지지, 사랑을 보내주신 ‘저녁스케치’ 팬들을 위한 콘서트죠.”

또 지난 9월 30일에는 그녀가 직접 선곡한 팝송들을 모은 ‘저녁스케치 3집’ 앨범도 출시했다. 각각 플래티넘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1, 2집에 이은 세 번째 앨범으로, 올드 팝을 위주로 샹송·칸소네·월드뮤직 등 다양한 음악들을 담았다. “저녁스케치 방송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앨범이라고 자신해요. 여러분도 이 가을과 어울리는 감성적인 음악에 빠져보시지 않으실래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