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과학계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 연구진에 의해 유전자 복제 기술을 이용한 환자 맞춤형 인간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처음 만들어졌다. BBC방송은 최근 미국 뉴욕 줄기세포재단연구소의 디터 에글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사람의 피부세포 핵을 난자에 이식해 배아를 만든 뒤 세포 분열을 시켜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에글리 박사 팀의 연구 결과는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그러나 미국 연구팀이 만들어낸 줄기세포는 염색체 배열이 정상적인 인간 세포와 달라 아직은 미완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과거 황우석 박사팀이 시행했던 연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에서 난자의 핵을 제거한 자리에 체세포 핵을 집어넣는 기존의 방법에 변화를 줬다. 난자핵을 제거하지 않은 채 성체세포를 이식했더니 줄기세포 덩어리가 형성되는 배반포 단계까지 배아가 성장했다는 것.
BBC는 “과거 황 박사 연구팀이 인간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 조작 여파로 성과가 부인됐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16명의 기증자에게서 받은 난자 270개에 전기 충격을 줘 피부세포와 융합시켰다. 난자의 핵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둔 채 전기 충격을 가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렇게 만든 복제 배아를 배양한 결과 전체 배아의 약 20%가 배반포 단계까지 자랐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어 배반포 단계의 배아 13개 가운데 2개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해 내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만들어진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세포의 역분화 과정과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에글리 박사는 “아직은 연구가 초기 단계여서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이번 연구로 인간의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난치병 치료 활용 기대
이번 연구에 대해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난치병 치료와 장기이식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반포 단계는 배아줄기세포가 만들어지는 시기로, 여기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피부와 각종 장기를 이루는 인체 모든 종류의 체세포로 분화되기 때문이다.
미국 연구팀은 생명 윤리 논란을 의식, 연구 기법에도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험에 사용된 난자들은 뉴욕 주 법에 따라 여성들에게서 돈을 주고 기증 받아 생명 윤리 논란을 비켜갔다. 체세포는 1종 당뇨병을 갖고 있는 남성 환자와 건강한 남성에게서 기증 받았다.
인간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그동안 망가진 세포조직을 대체하는 ‘마법의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아 왔다.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세포 치료술로 기대를 모아 왔지만 난자와 배아를 파괴하고 인간 개체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생명 윤리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앞서 2004년 황우석 박사는 체세포 핵 이식 방법을 이용해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서울대 조사단은 “우연한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정정했다. 처녀생식은 핵을 제거하지 않은 난자가 충격을 받아 정자가 들어온 것으로 착각해 수정란을 만드는 것이다.
황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 이후 줄기세포 연구는 인간의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역분화시키는 연구와, 지방에서 추출한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집중돼 왔다. 2008년에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 스티마젠 연구팀이 인간의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 배아를 만들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했지만 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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