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연설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을 듣고 한동안 넋을 잃었습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잡스는 가슴에 묻어뒀던 사연을 담담하게 얘기했죠. 졸업생들은 기쁨에 들떠 떠들기만 하더군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 10월 5일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연설을 다시 봤습니다.
[광파리의 IT이야기] ‘용기 있게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라’
잡스가 공개한 사연은 세 가지. 부모가 미혼 상태에서 아기를 낳은 바람에 태어나자마자 입양 보내졌던 일, 자기가 창업한 애플컴퓨터에서 쫓겨났던 일, 췌장암에 걸려 3개월 내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던 일이 그것입니다. 누구나 한두 가지 사연을 품고 살지만 잡스의 사연은 남다릅니다.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섰기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연설을 명연설로 꼽는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사연은 사실 소재에 불과합니다. 잡스가 가슴 속에 묻어뒀던 사연을 공개한 것은 졸업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잡스는 세 토막으로 나눠 얘기했습니다. 첫 번째는 점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점의 연결. 무슨 뜻일까요.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내막을 얘기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입양 보내졌던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또 대학 중퇴 후 서체학을 청강했던 얘기, 그게 컴퓨터를 개발할 때 큰 힘이 됐다는 얘기를 합니다. ‘입양, 대학 중퇴, 서체학 청강, 컴퓨터 개발. 이 4개의 점이 이어졌다, 각각의 점이 언젠가는 연결될 것이라고 믿고 살아라.’ 이게 잡스가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사랑과 상실.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후 도망칠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넥스트를 창업했습니다. 일에 대한 사랑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잡스는 말합니다. ‘살다 보면 벽돌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도 신념을 잃지 마라, 사랑할 만한 것을 찾아라, 대단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죽음. 잡스는 열일곱 살 때 읽은 글귀를 들려줍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는 제대로 될 것이다.” 췌장암 판정을 받았던 얘기를 한 뒤 죽음에 관해 말합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워 새로운 것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졌다. 남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 용기 있게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라.”

잡스는 세 가지 이야기를 끝낸 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합니다. 강연 때마다 늘 했던 “하나만 더(One more thing)”와 비슷하죠.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뒤표지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픈 상태로 살아라, 어수룩하게 살아라.’ 이런 뜻인데 잡스는 항상 이렇게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졸업생들한테도 이 말을 명심하며 살라고 당부합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라, 대단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이 가운데 ‘스테이 풀리시’가 가장 어렵게 느껴집니다. 똑똑한 사람도 많고 똑똑한 척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서 어수룩하게 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제 잡스는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말을 마음에 품고 살고자 합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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