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신감 ‘상실’…4분기가 더 걱정

유럽 재정 위기와 미국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전체 수출의 3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선진국 지역으로의 수출이 둔화되면 개별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물론 무역수지 흑자 감소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경상수지 흑자는 미국·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수출 감소로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8월 국제수지’에서 경상수지는 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9월 29일 밝혔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 1월 1억6000만 달러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전월보다 흑자 규모가 33억7000만 달러나 줄었다.

경상수지 흑자가 급감한 것은 선진국 경기 후퇴에 따라 상품 수지가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상품 수지는 전달보다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면서 흑자 규모가 47억3000만 달러에서 4억8000만 달러로 10분의 1 토막 났다. 수출은 457억9000만 달러로 지난 2월 372억3000만 달러 이후 가장 적었다.

실제로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등 올 들어 유럽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주력 정보기술(IT) 관련 품목의 수출 상황은 이달에도 호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도체 수출은 글로벌 수요 감소와 D램 단가 하락 등으로 지난 4월 이후 지난 8월까지 5개월째, 디스플레이 수출은 7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LCD 유럽 경기 ‘직격탄’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의 4분기 수출 전망도 어두워져가고 있다. KOTRA와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4분기 KOTRA-SERI 수출선행지수’가 53.6으로 직전 분기보다 4.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9월 29일 발표했다.

다만 기준치인 50은 넘었기 때문에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지수는 50 이상이면 전 분기 대비 수출 호조, 미만이면 전 분기 대비 수출 부진을 의미한다.

조사에 따르면 4분기 우리나라 수출의 가장 큰 복병은 미국 경기 둔화, 그리스 디폴트 위기 등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났다. 4분기 수입국 경기 지수는 45.8로 3분기 대비 9.8포인트 떨어졌다.

지역별로는 유럽 지역 수출선행지수가 기준치를 밑도는 48.8로 떨어지면서 수출 감소가 예상됐다. 북미 지역은 4.4포인트 하락한 52.8을 나타냈다.

중남미와 중국도 각각 9.2포인트와 8.6포인트 낮아졌다. 품목별로는 컴퓨터(45.2)가 전체 품목 중 가장 낮은 지수를 기록했고 반도체(48.7)·LCD(46.4)·가전(49.3) 등이 기준치보다 낮아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수출경기전망지수(EBSI) 역시 전 분기보다 18.2포인트 하락한 89.8을 기록했다. 이 지수가 기준치인 100 이하로 떨어진 것은 10분기 만이다. EBSI 지수가 100 이하면 직전 분기보다 수출 경기가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수출 업체가 더 많다는 의미다.
한편 외국인의 급격한 자금 유출도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데 부채를 부쳤다. 외국인의 증권 투자금 유출 규모는 전례 없이 큰 수준이다. 외국인들은 8월 한 달에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41억8000만 달러어치의 자금을 뺐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있던 2008년 11월(62억6780만 달러) 이후 2년9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홍표 기자 haw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