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탈출 ‘쇼크’

“외국인이 사라졌다.” 긴자와 오다이바는 도쿄의 대표적 관광 거리다. 주말이면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관광 차량이 몰리는 시간대면 일본인지 해외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유명한 관광 스폿은 일찌감치 인산인해다. 백화점 등 쇼핑몰의 가전·명품 점포 등은 ‘매출 기반이 외국인’이란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길거리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진 이후의 방사능 공포가 직격탄을 날렸다. 지진 이전 일본의 관광 시장은 ‘맑음’이었다. 금융 위기로 잠시 주춤했지만 곧 회복됐다. 작년엔 모두 861만 명이 일본 관광을 즐겼다.

‘돈이 들지 않는 경기 부양책’이란 정부의 판단처럼 관광 입국의 꿈은 장밋빛이었다. 실제 관광 입국은 불황 탈출구를 찾던 일본 경제로서는 안성맞춤의 선택지였다. 이를 위해 최근 파워풀해진 중국인 관광객의 비자 발급을 확대 적용(부유층→중산층)했다. 적극적인 문턱 낮추기다. 효과는 짜릿했다.

하지만 3월 11일(지진 발생일)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외국인 여행객이 줄면서 관광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관광청에 따르면 3월 외국인 여행객은 35만 명인데, 이는 50%(전년 동월 대비) 급감한 수치다. 관광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작년 방일 외국인의 소비 금액은 1조1500억 엔이었는데, 올해는 줄어들 게 불가피하다. 관건은 얼마나 감소 폭을 줄일 것인지로 요약된다. 관광청이 방일 여행 수요를 자극할 방법을 공모하는 등 대안 모색에 나섰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호텔·여관 ‘직격탄’… 폐업 속출

 Police officers in protective suits observe a moment of silence for those who were killed by the March 11 earthquake and tsunami, as they search for bodies at a destroyed area in Minamisoma, Fukushima prefecture, about 18km from the damaged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April 11, 2011.  REUTERS/Kim Kyung-Hoon (JAPAN - Tags: ENVIRONMENT DISASTER)/2011-04-11 15:11:03/
Police officers in protective suits observe a moment of silence for those who were killed by the March 11 earthquake and tsunami, as they search for bodies at a destroyed area in Minamisoma, Fukushima prefecture, about 18km from the damaged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April 11, 2011. REUTERS/Kim Kyung-Hoon (JAPAN - Tags: ENVIRONMENT DISASTER)/2011-04-11 15:11:03/
충격은 즉각적이다.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던 호텔·여관 업계 중 일부가 영업 종료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반복된다. 처음엔 진원지였던 후쿠오카에 한정됐다. 그런데 지금은 원을 그린 듯 폐쇄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지진만 있었다면 버텨 볼만 했는데 기약 없는 방사능 공포가 희망조차 불살라버린 셈이다. 미련조차 허용되지 않는 눈물의 조기 폐업이다. 지바에 있는 ‘호텔그린타워지바’가 대표적이다.

이 호텔은 7월까지만 영업하고 폐관하기로 결정했다. 호텔 관계자는 “중국계 고객이 많았는데 향후 6개월 후까지 예약이 거의 제로 수준”이라고 말했다. 관광 특성상 예약 매출이 대부분인데 이게 없어졌으니 유지할 명분도 능력도 사라진 것이다. ‘일본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최소 2년은 지나야 옅어질 것이란 게 공통된 지적이다.

관광 악재는 전국적이다.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열도가 자랑하던 안전 신화가 붕괴되면서 국가 전체로 방사능 불안감이 확산된다. 오사카 쪽 관문인 간사이국제공항의 외국인 입국자는 3월에만 23% 줄었다.

본토와 한참 떨어진 오키나와는 44%나 급감했다. 충격 수준이다. 오키나와에는 일본인도 19% 줄었는데 이는 고통 공유 차원의 자숙 무드 때문으로 평가된다. 관광 기반의 여타 지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재해는 단기 악재보다 중·장기적으로 일본 경제의 뒷덜미를 잡을 공산이 높다. 관광산업은 입소문이 전부다. 그런데 방사능 공포는 수돗물·채소·어류 등의 오염 염려가 확산되면서 ‘일본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연일 확대재생산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 지진 이전에 일본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 거주하던 외국인이 사고를 계기로 속속 탈출 행렬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진 발생 초기엔 일시적 도피였던 게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엔 영구적 귀국 의사 쪽으로 가닥이 옮겨졌다.

여진 공포를 피해 잠시 일본을 떠났다가 돌아온 외국인도 태도가 달라졌다. 방사능 우려가 심화되자 아예 일본을 떠나기로 마음먹기 시작했다. 사고 강도가 체르노빌에 필적하는 레벨 7로 올라가고 수돗물에서 방사능물질이 검출되는 등 갈수록 사태 진전이 악화일로를 걷는다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 그룹의 불안감이 높다. 남편만 남고 가족 전부가 고국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패닉 상태라도 피할 곳이 없는 일본인과 달리 회피 공간이 있는 외국인에게 탈출 카드는 당연한 결과다.
  일본 탈출 러시

    (하네다=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일본 동북지방에서 사상 초유의 대지진이 일어난지 하루 지난 12일 오후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승객들이 일본 하네다 공항 대한항공 카운터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2011.3.12

    jihopark@yna.co.kr/2011-03-12 18:03:18/
일본 탈출 러시 (하네다=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일본 동북지방에서 사상 초유의 대지진이 일어난지 하루 지난 12일 오후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승객들이 일본 하네다 공항 대한항공 카운터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2011.3.12 jihopark@yna.co.kr/2011-03-12 18:03:18/
어린 자녀 있는 부모 불안감 커

외국인 근로자의 귀국 러시는 광범위하다. 주요 언론은 방사능 불신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외국인 도피 쇼크가 언제까지 지속될까’라며 심층 보도 중이다. 요컨대 외국인 근로자 귀국 문제다. 이는 방사능 피해 확산, 무차별적 소문 피해, 여름 전기 부족 사태와 함께 중요한 해결 과제로 급부상 중이다.

공장 등 제조 현장에서 음식점 서비스 업체까지 귀국한 외국인 근로자로 차질을 빚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외국인 근로자는 그간 일본 노동시장의 중요한 공급원 중 하나였다. 2000년 21만 명이 2010년엔 65만 명으로 늘어났을 정도다(후생성).

대부분 기업이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외국인 근로자를 대거 고용한 결과다. 음식점과 농업 등 단순노동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운영되지 못할 만큼 의존도가 높다.

한편 그 대부분은 중국인이다. 하지만 이번 탈출 러시에서 확인되듯이 중국인의 신속한 집단 귀국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되돌아오지 않는 비율도 가장 높다. 일각에선 영토 분쟁과 맞물려 중국 혐오증을 키우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다.

실제 외국인이 많은 기업·교육 현장은 정상 운영이 힘들어졌다. 일부 교육 현장에선 보육원부터 대학원까지 외국 학생이 급감해 비상사태다.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확대되는 방사능 불안감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태세다.

생산 현장도 비슷하다. 가뜩이나 전기조차 부족한 판에 손길마저 달려 풀가동이 힘든 지경이다. 봉제 업계도 4만 명의 중국인 실습생 중 3만 명이 미복귀 상태로 알려졌다. 규동 전문점 요시노야에선 지진 직후 1주일간 수도권 외국인 아르바이트생 중 4분의 1(200명)이 퇴직했다.

다른 업체도 엇비슷하다. 이 결과 외식 취업자는 11개월 만에 감소했다. 편의점은 점장까지 나서 부족한 일손을 돕고 있다. 원래 편의점은 아시아계 점원이 많기로 유명했다. 부담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 유학생 등에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지진 이후 풍경이 좀 달라졌다.

외국인의 일본 탈출은 미묘한 이슈다. 외국인이야 신체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지만 일본인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떠날 곳이 없는 일본인으로선 부럽고 얄밉기 때문이다.

일시 귀국 후 되돌아온 외국인 동료에게 배신감과 함께 괘씸죄를 묻는 극단적인 상황도 있다. 심할 때는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논란은 뜨겁다. ‘탈출한 외국인이 배신자인가’란 주장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란 댓글이 달리는 등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