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설문 조사 - 반도체 시장의 재편 시나리오
반도체는 한국 경제 성공 신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후발 주자로 뛰어든 국내 기업들은 지난 20년 동안 메모리 시장의 선두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이 시장에 최근 격변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반도체 시장의 변화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 2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엘피다 위협 못됨 80%
먼저 최근 쏟아지고 있는 반도체와 관련된 핫 이슈에 대해 물었다. 지난 5월 5일 인텔은 입체(3D) 구조의 ‘트라이 게이트’ 트랜지스터를 공개했다. 2차원(2D) 구조인 기존 반도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 제품이다. 국내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설문에 참여한 애널리스트들은 인텔의 혁신을 비교적 높게 평가했다. 인텔의 3D 칩이 반도체 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45%가 ‘큰 영향’, 40%가 ‘약간 영향’을 선택했다.
‘영향없음’은 10%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우 큰 영향’이란 응답 역시 단 1명(5%)에 그쳐, 전적으로 인텔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인텔의 새 기술이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인텔만의 독보적인 기술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반도체 미세화 공정이 20나노 이후 현재 기술로는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3D 칩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했다. 이러한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업체들은 3년 내 경쟁력 저하를 겪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5월 2일 엘피다의 25나노 D램 개발 발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압도적이다. 응답자의 80%가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약간 위협’이라는 응답도 20%에 그쳤다. ‘큰 위협’ 또는 ‘매우 큰 위협’이라는 답변은 전무했다.
엘피다는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다. 실제 양산보다 외부 자금 조달 등 다른 목적을 위한 과장 발표로 의심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번에 발표한 7월 양산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장비 구매나 고객 인증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모바일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은 삼성전자의 경쟁자이자 핵심 고객이다. 애플은 지난해 삼성전자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모바일 D램, 낸드플래시 메모리 등 무려 6조1852억 원어치의 핵심 부품을 구매해 갔다. 그러나 최근 애플은 AP 구매처를 인텔이나 TSMC로 다변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응답자 중 70%가 애플의 공급처 다변화는 삼성전자에 약간의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밖에 ‘충격 아님’이 15%, ‘큰 충격’ 10%, ‘매우 큰 충격’ 5% 등으로 나타났다.
애널리스트들은 애플의 공급처 다변화는 당연한 현상이며 삼성전자 역시 거래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정보기술(IT) 산업을 주도하는 메가트렌드 기업을 놓친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애널리스트들은 모바일 혁명이 반도체 시장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60%가 ‘매우 동의’, 30%가 ‘동의’를 선택했다. ‘약간 동의’와 ‘동의 안함’은 각각 5%에 그쳤다.
애널리스트들은 무엇보다 모바일 시장의 부상이 가져올 ‘윈텔(윈도우+인텔)’ 독점 체제의 붕괴에 주목했다. 최근 PC용 반도체 시장은 정체 상태를 보이고 모바일 제품용 AP와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새로운 성장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갈수록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PC 시장의 4배에 달한다. 모바일 시장은 고객 요구가 다양하고 제품 주기가 짧을 뿐만 아니라 저전력 등 경쟁 변수가 기존 PC 시장과 차이가 난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 5년 내 인텔 추월 47.45%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9.2%로 끌어올리며 1위 인텔과의 격차를 4.1%포인트까지 좁혔다. 과연 삼성전자는 인텔을 추월할 수 있을까. 애널리스트들은 5년 내 삼성전자가 인텔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전자의 인텔 추월 시기를 묻는 질문에 47.4%가 ‘5년 내’를 꼽았다. 이 밖에 ‘2~3년 내’ 26.3%, ‘10년 내’ 21.1%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인텔을 추월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5.3%에 그쳤다. 애널리스트들은 인텔이 PC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대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데 대체로 한목소리를 냈다. 관건은 비메모리 분야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로 좁혀진다.
최근 인텔 역시 3D 구조 칩을 내놓는 등 모바일로의 빠른 전환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추월 여부는 확실히 모바일 시장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재편된 반도체 시장의 승자는 누가 될까. 설문에 참여한 애널리스트들은 가장 먼저 삼성전자(28.6%)를 꼽았다. 풍부한 자금력, 메모리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 끊임없는 혁신 능력 등이 강점으로 지적됐다.
영국의 AP 설계 전문 기업 ARM이 14.3%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윈텔’을 대체하는 신조어 ‘지암(GARM, 구글+ARM)’의 주인공이다. 전 세계 AP의 95%가 이 회사의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애플의 A4, A5칩도 마찬가지다.
이어 인텔과 하이닉스가 나란히 11.4%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애플이 2.9%로 8위, 구글이 1.4%로 공동 10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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