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브릭 아티스트 김주

[프로의 세계] “뜨개질하는 남자? 이젠 잡티스트라고 불러주세요”
카페 뜨쥬는 패브릭 아티스트 김주 씨가 그의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뜨개질 카페 겸 갤러리 겸 공방인 복합 문화 공간이다. 홍대 골목 안 깊숙이 자리 잡아 초행길로는 찾아가기도 쉽지 않건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

그중에는 외국인 손님들도 적지 않다. 그의 패브릭 아트 작품들이 뉴욕이나 유럽 등에도 알려졌고, 특히 일본에서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러 일부러 그의 카페까지 찾아주는 이들이 많다.

사실 패브릭 아티스트 ‘김주’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뜨개질하는 남자’라는 별칭 때문이었다. 요즘엔 여자들도 잘하지 않는 ‘뜨개질’을 하는 남자라는 이유로 화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뜨개질을 시작한 지는 한 1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욕도 많이 먹었죠.”

한복의 아름다움에 눈뜨다
[프로의 세계] “뜨개질하는 남자? 이젠 잡티스트라고 불러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들이나 하는’ 뜨개질이나 바느질, 옷감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그였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유난히 한복을 즐겨 입으시던 그의 어머니 덕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술이나 패션을 전공할 수 없었던 집안 형편 때문에 공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학교를 나온 후에는 CAD(컴퓨터 이용 설계) 디자인을 하며 착실히 회사원으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남들과 똑같은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해서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마음 가고, 호기심 가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도 배웠고, 액세서리도 배웠다. 그러다가 뜨개질, 즉 니트를 접하고 비로소 자신이 찾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줄 선물을 찾다가 니트 책을 보고 내가 직접 만들어 선물하면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것 봐라? 싶은 생각에 오기가 생겨서 자꾸만 도전하고, 매달리고 하다 보니 어느덧 5~6년의 세월이 흘러 있더라고요.(웃음)”

정식으로 학원에 등록해 뜨개질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하지만 학원에서 배운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솜씨를 갈고닦아 나갔다. 오래 공부한 만큼 기본기는 탄탄하게 쌓여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은 아낌없이 주위에 선물로 주고, 또 혼자만 보기 아까운 작품들은 모아 전시회도 열었다.

원래부터 손재주가 유난히 좋았던 그였던지라 뜨개질로는 못 뜨는 것이 없는 니트 작가로 정평이 났다. 조끼나 카디건 같은 일반적인 작업 외에도 웨딩드레스를 만든 적도 있다. “남자이기 때문에 뜨개질에 더 유리한 점이 많았어요. 배울 때도 기술 자체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습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9년부터는 아예 공방 겸 카페인 ‘카페 뜨쥬’를 오픈하고 좀 더 본격적인 니트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카페로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따로 수강료를 받지 않고 뜨개질을 가르쳐 주는 덕분에 번번이 도전만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에서부터 한 번도 뜨개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 오랜만에 뜨개질을 새롭게 시작해 보려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카페를 찾아왔다.
[프로의 세계] “뜨개질하는 남자? 이젠 잡티스트라고 불러주세요”
뜻하지 않게 뜨개질 전도사가 되어버린 그지만, 몇 년 전부터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작업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한복을 재활용한 아트 작업이다.

“지난 2005년에 다른 작가들과 함께 리사이클 전시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열었어요. 그 당시 재활용 의류들을 모아놓은 몇몇 곳을 둘러본 적 있는데 의외로 너무나 멀쩡한 한복들이 많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어요.”

세탁만 하면, 조금만 손질만 하면 얼마든지 재활용이 가능한 한복들을 그대로 버려두기에 아깝다는 생각에 ‘한복’을 주제 삼아, 또 캔버스 삼아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흔히 한복은 불편하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또 오기로(웃음) 불편하다면 좀 더 편하게 한복의 느낌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가방이나 지갑과 같은 생활 소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가 소재로 많이 활용한 건 우리나라 고유의 색감이 살아 있는 색동저고리를 비롯한 알록달록한 한복 치마들, 그리고 이불 홑청들이었다.

그가 유행 지난 색동 한복, 꽃분홍 한복 등을 이용해 만든 패브릭 가방이나 지갑, 생활 소품들도 마찬가지다. “촌스럽다”, “알록달록하기만 해서 아무 멋도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영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오히려 한복만의 색감이나 패턴이 아주 아름답다는 칭찬을 많이 받아요. 우리 눈에는 너무 익어서 촌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것들이 그들의 눈에는 더없이 오묘한 예술 작품처럼, 새로운 패션처럼 보이는 것이죠.”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싶어

자신의 작품 활동 이외에도 그는 많은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신인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 뜨쥬’가 그리 공간이 크고 넓지 않아도 유난히 젊은 아티스트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 사이에서 ‘갤러리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카페 뜨쥬 외에도 비슷한 공간 서너 곳에서 전시 관련 일도 하고, 작품 활동도 하고, 가을 겨울에는 니트 작업도 하고 나름대로 분주하게 살아요. 카페에서는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 농담처럼 저 자신을 늘 잡티스트라고 소개해요. 잡다 구리 아티스트라는 의미에서죠.(웃음)”

‘잡티스트’로서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 그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일은 바로 패브릭 작업들이다.

“뜨개질도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패브릭 작업은 하면 할수록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패브릭 작업을 하다 보면 유난히 좋은 기억을 많이 떠올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니트 작업과 함께 꾸준히 한복을 응용한 패브릭 작업들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저만의 한복 천으로, 한복 색동을 제 스타일대로 스타일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복 천으로 만든 패브릭 가방을 하나의 명품 가방처럼 인식시키고 싶어요. 물론 그만큼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겠죠.”

김주 약력

1975년생. 삼일공고 졸업. KOFAC 한국패션 액세서리공모전 대상. 모마(MoMA) 데스티네이션 디자인 프로젝트 한국 대표 참가. 2004년부터 공방 운영. 2009년 복합 문화 공간(뜨개질 카페 겸 갤러리 겸 공방) ‘카페 뜨쥬’ 오픈.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