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십 년 동안에는 일본이 개척한 첨단 제조업이 성장 단계에 접어들면 한국으로 주도권이 넘어온 후 해당 산업의 성숙 단계에서는 생산의 중심이 점차 중국으로 이전되는 프로덕트 라이프 사이클(Product Life Cycle)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패턴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인지 우려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의 중간 소득층 인구는 2010년 9억4000만 명으로 확대됐고 2020년에는 20억 명으로 늘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에서 내구재를 구매할 수 있는 신흥국 소비자만 선진국 시장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하는 것이다.
급성장하는 신흥국 중간 소득층의 니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신흥국의 산업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기업에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신흥국 산업이나 기업의 매출 규모가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이나 연구·개발(R&D), 선진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막대한 자금을 지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신흥국 기업이 개발한 제품이 신흥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점차 한국을 비롯한 선진 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 글로벌 기업은 모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집중적으로 기술·제품 개발에 몰두해 만든 제품을 우선 선진 시장에 공급하고 이후 점차 신흥국 고소득층 시장을 겨냥해 해당 제품을 현지 시장용으로 개량해 공급했다.
이른바 글로컬(Global Localization) 전략이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기업들은 신흥국 고객에서 출발하는 기술 및 제품 혁신인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후지필름은 대당 가격 100달러의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해 신흥국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중국 현지에서 저가격 이동식 초음파 진단 기기를 개발해 현지 시장뿐만 아니라 선진국 판매에도 성공했다.
이러한 GE의 리버스 이노베이션 성공 원칙은 ▶성장이 기대되는 지역에 권한을 이전해 이노베이션팀이 독자적인 전략·조직·제품 개발 권한을 갖게 한다. ▶기존의 선진국 제품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제로베이스에서 신제품을 개발한다. ▶이노베이션팀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식으로 신조직에서 설계한다. ▶기존 사업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지역에 맞는 독자적 목적·목표·평가 기준을 설정한다. ▶이노베이션팀은 경영진 직할로 하고 회사 전체의 연구·개발 경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등이다.
우리 기업은 기존의 선진국발 이노베이션의 글로컬 전략을 더욱 고도화하는 노력과 함께 거대 신흥국에서의 기술 및 제품 개발 체제를 강화하면서 역발상에 기초한 리버스 이노베이션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1963년 일본 도쿄 출생. 1985년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고려대 경제학 석사. 1988년 LG경제연구원 입사.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 및 재팬인사이트 편집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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