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 중 대다수는 신해철에게 정서적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울고 웃고 그리고 성숙해졌으니 말이다.

일종의 ‘의리’ 같은 게 작용했는지 그가 ‘싸이렌음악원’을 냈다는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도 ‘신해철다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렇게 대놓고 ‘입시 및 프로 데뷔 전문 스파르타 음악학원’을 표방할 수 있는 건 자신감이 넘치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일일 터.

강남역 부근에 자리 잡은 음악원은 온갖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역시나’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그는 사진 촬영용 소품으로 ‘사랑의 매’를 들고 나타났다.

‘체벌 금지’를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그가 웬 ‘사랑의 매’냐고 혹 오해하는 이가 있을까봐 설명 덧붙인다. ‘사랑의 매’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턱 교정하고 배 집어넣고, 자세 교정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는 것.

[스타 비즈 인사이드] 가수 신해철, 음악원장 된 마왕…'스파르타 교육' 정체는
2009년 12월 말에 오픈했으니, 1년 반 정도 되었네요. 잘됩니까.

적자예요. 기악 파트를 겸용한다는 건 적자를 각오했다는 거죠. 대부분의 실용음악 학원은 보컬 학원인데, 그렇게 운영하면 돈을 벌거나 최소한 밑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기악, 이론, 화성학 클래스 등 실용음악대학에 있는 모든 수업을 합니다. 그래서 대학 가려고 여기 왔다가 그 생각을 접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큰돈 버는 건 고사하고 샙니다.

그럼, 투자하는 건가요.

투자라기보다 재산의 환원인가(웃음).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운영은 어렵지 않게 하긴 해요. 그런데 그동안 제가 악역 이미지를 거부하지 않으면서 학원 오픈한 것 가지고 이래저래 말들이 많을 때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제가 사설 학원 운영하면서 돈 번다고 생각하나 봐요. 내가 억울한 건 아니에요. 내 이미지는 괜찮은데, 여기서 일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는 학생들이 내 이미지 때문에 피해를 볼 수는 없잖아요.

신해철 씨가 한다고 하니 그냥 일반 음악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 싸들고 가면 받아주는 그런 학원 느낌은 아닌 거죠.

사실도 그래요.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학생 수도 한정돼 있고. 우리가 정한 가이드라인이 ‘취미로 음악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면 가르친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가 되어 음악계를 이끌 사람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강사진도 잘 안 바뀌고요. 다른 학원들 보면 옮기는 애들이 많은데 우리는 한 번 등록한 학생은 거의 나가지 않아요. 뭔가 다른 게 있긴 한가 봐요. 오히려 우리가 내쫓습니다. “여기서 매달 꼬박 내는 강습료 기별도 안 가니까 선생들 힘들게 하지 말고 가서 두 달 춤 배우고 와라”하는 식이죠.

수업료가 비싸지 않은가 봐요.

더 내리면 선생님들에 대한 모욕이 되는 수준의 돈으로 버티고 있죠. 그런데 이 안에는 몇 가지 비밀 클래스가 있습니다. 상당히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있는 학생에서부터 완전 장학 혜택을 받고 있는 아이까지 다양하게 분류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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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원과 음악학원은 같은 말일 수도 있는데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학생과 부모가 와서 혹시라도 클라이언트 행세를 하려고 하면 바로 아웃시켜 버립니다. 그런 생각으론 배울 수 없어요. 사실 얼마 전까지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학생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하느냐’는 거예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은 “싸이가 기획사 돌아다니면서 오디션 봤다면 어떻게 됐겠니?” “BMK가 오디션을 봤을까?”라는 말이었어요. 이젠 그런 말하는 친구들이 없죠.

학원은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 이런저런 기술을 다 가르치려고 하는데 우리는 프로듀서의 관점을 도입했어요. 중2가 모든 스타일의 노래를 다할 수는 없다는 거죠.

물론 여러 가능성이 열린 나이에 ‘이쪽일거야’라면서 한쪽으로 몰아간다는 건 그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살 떨리는’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합니다. 신기한 게 부모들에게 그런 이야길하면 놀랍게도 진심이 통하더라고요.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화제인데요. 그러면 싸이렌 출신들은 그런 데서 볼 일이 없는 건가요.

지금까지 등장한 바 없는데 그렇다고 말리지는 않아요. 시작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는데, ‘싸이렌 출신은 노래 이렇게 해’라는 게 자리 잡기까지는 앞으로 1년 이상 더 걸릴 것 같아요. 지금은 감히 어마어마한 단어를 쓰지만 10~20년 뒤엔 ‘싸이렌 학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오디션 열풍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세상 모든 건 ‘운용의 묘’지요. 제가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대해 비판도 하고 그랬는데 제가 비판했던 건 ‘나가수’ 자체가 아니라 청취하는 대중의 태도에 대해 항의하고 싶었던 겁니다.

가수들이 경쟁까지 해가면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노래하는데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라는 거였죠. 대중에게 항의도 하고 부탁하기도 했던 게 바로 갈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시즌2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든 게 좋아졌더군요.

혹시 섭외가 온다면 ‘나가수’에 나갈 생각이 있나요.

나는 가수 아니에요(웃음). 혹 우리 세대 음악들이 설 자리가 있다면 모르겠어요. 윤상과 서태지 등 우리 때는 노래를 잘해도 만들지 못하면 차별하는 분위기였어요. 나는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위기에 항의도 하고 그랬죠.

‘나가수’ 출연자 중에도 ‘곡도 쓰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는 ‘노래도 하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우리만 할 수 있는 게 또 있죠. 우리는 미드필더들인데 스트라이커들이 경연하는데 나가서 슛을 가지고 경쟁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마왕’에게 ‘원장님’이라는 호칭이 참 낯선데요.

여기 학생들은 다 원장님이라고 불러요. 사실 낯설다는 느낌은 오래됐죠. 엔터테언먼트를 하면서 ‘대표님’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고 언제부턴가는 ‘선생님’ 자가 붙더군요. 그런 호칭을 받을 만한 위치도 아닌 것 같고, 어쩐지 늙어 보이고 ‘건수’가 줄어들잖아요.

그런데 100 중 99의 시간은 다들 ‘형, 오빠’라고 불러요. 제자들도 같이 일하다 보면 ‘형’이라고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제가 ‘형질’을 싫어해요. 원래도 그랬지만 유학 갔다 오면서 완전히 지우고 왔죠.

저를 잘 모르는 중학교 1, 2학년들은 저에 대해 어렴풋한 이미지를 가지고 오긴 하는데 첫 이미지가 만만하다 싶은가 봐요. 저는 학생들 무릎 베고 자고, 우리 애들은 제 무릎에 앉고 그래요(웃음).

[스타 비즈 인사이드] 가수 신해철, 음악원장 된 마왕…'스파르타 교육' 정체는
음악원 오픈은 인생 계획에 있던 그림입니까.

그런 지는 굉장히 오래됐어요. 궁리를 하고 자본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거죠. 싸이렌엔터테인먼트는 인디 음악과 인디 콘텐츠 전문이었어요. 인디펜던트에 대형 자본을 끌어준다는 목적이었죠.

그러다 ‘쫄딱’ 망하고 빚 ‘살벌하게’ 졌죠. 그때 더 어린 사람 쪽으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엔터테인먼트의 필요에 의한 교육 시설이 아닌 교육 자체의 시장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만들어진 아이들이 어디 엔터테인먼트로 갈지 고민하는 때가 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스파르타 식 강경 음악교육’을 하신다죠.

우리의 ‘스파르타’는 정신적 스파르타예요. 여기에 온 순간 그 사람의 24시간이 음악을 위한 시간이라는 거죠. 책을 봐도, 영화를 봐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음악을 하기 때문에 자는 것이라고 몰아쳐요.

단순히 조명을 받고 갈채를 받고 1~2년에 연예인 수명이 끝나는 게 아니라, 한 국가와 민족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이 되려면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느냐를 가지고 괴롭히죠. 기술적인 부분도 아주 어린 나이에 예술가로서 빨리 자랄 수 있도록 자각을 주고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여기 와서 다들 힘든 시기를 겪습니다.

심지어 취미삼아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스파르타 식’이 해당됩니까.

당연하죠. 취미로 하더라도 여기 와서 음악을 할 때만큼은 프로와 똑같이 열광하라는 겁니다. 명찰에 ‘프로반’ ‘취미반’ 따로 붙이지도 않고요. ‘취미반이니까 그 정도 하면 되겠지’하는 생각 전혀 안 해요.

어떤 강의들을 직접 하나요.

총론 수업과 전략론을 가르치지만 보컬 마스터할 때 쳐들어가기도 하고 합주할 때 들어가서 ‘다시’를 요청하기도 하니, 전 클래스에 걸쳐 있다고 봐야죠.

학생들과는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MT도 가고요. 욕도 하고 울리기도 해요(웃음). 아마 원생들 우는 숫자로 따지면 국내 최고일 겁니다. 다만 선생이 왜 울리는지에 대한 표정이 보여야 해요. 학생을 울리려면 선생이 먼저 울어야 하는 거죠. 원장은 울면서 아이를 혼내고 있고 옆에서 부원장과 다른 선생들은 혼나면서 울고 있고, 참으로 가관인 풍경이 여기서 벌어져요(웃음).

교육에 대한 철학이 늘 확실한 것 같은데, 아마도 두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죠(신해철은 2002년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 윤원희 씨와 결혼, 여섯 살 난 딸 지유와 네 살 난 아들 동원이를 뒀다).

그렇죠. 최근에 우리 가족이 용인으로 이사했는데,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을 찾다보니 서울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냥 아이와 놀아만 주는 유치원이 없더라고요.

이사 가서 유치원을 옮겨준 후 딸에게 “새 유치원 어때?”하니까 “응, 아무것도 안 해”하더라고요. 그때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그래, 됐다’ 싶었어요.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에 컴백하셨더군요. 생방송으로 한다는데 정말인가요. ‘발언의 수위’가 괜찮을까요.

음, 1주일간 생방송한다는 기사가 났던데 그래서 제가 첫 방송에서 해명했어요. “우린 예정이란 게 없다. 단 연간 1주일간 생방송할 계획은 있다”라고요. 아마 제가 생방송을 하면 MBC 간부들 다 잠자지 못할 거예요. 오죽하면 프로그램 담당 PD가 국장이고, 조연출이 부장이겠어요(웃음).

음악원을 하면서 자극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새 음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음악원도 그렇고 DJ도 그렇고 소스나 영감, 활력 제공 차원에서 저를 위한 거예요. 여기 다니는 중학생들과 이야기하면 정말 신선해요. 전 아이들에게 ‘비틀스를 들어보지 않곤 말하지 마라’는 입장이고, 아이들은 예전에 ‘안녕’을 부를 때 스텝 밟던 것 가지고 감각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죠(웃음). 그러면서 서로 돕는 겁니다.

음반 계획은 올해부터 좀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제 음악을 더 좋아하는데, 그동안 내가 왜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론이 대충 나온 것 같아요. 내가 쓴 가벼운 시나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어느 날 ‘논문’을 돌리기 시작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 논문은 그만 쓰려고요(웃음).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