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이후 결혼 신드롬 확산
컵라면·음료수·건전지·휴지 등…. 지진 이후 수요가 급증한 일용품의 대표 주자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의외로 커플링을 포함한 약혼·결혼반지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지진 이후 연인끼리의 애틋한 감정이 더해지면서 결혼 희망자가 뚜렷이 늘어난 결과다.유명 백화점 반지 코너는 4월 1일부터 19일까지 약혼반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 급증했다. 결혼반지도 25%나 늘었다. 지진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이례적인 풍경이다. 한 언론은 “이런 때일수록 소중한 사람과 함께 가정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위기를 겪어보니 혼자보다 둘이 낫다고 봐서다. 9·11 테러 때도 뉴욕서 결혼 러시
결혼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신드롬으로 확산 중이다. 유명 방송인들의 “지진 이후 혼자 있는 게 무서워 결혼을 결정했다”는 발언이 앞 다퉈 소개된 것도 붐에 일조했다. 실제 지진 이후 입적(혼인신고)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동거 커플이 정식 부부로 변신하는 경우도 늘었다. 위기 이후 결혼 증가는 우연이 아니다. 9·11테러 이후에도 뉴욕에서의 결혼 러시가 화제를 모았었다.
결혼 희망자의 절대 다수는 미혼 여성이다. 독신 여성의 결혼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추세로만 연결되면 만혼화와 저출산 등 인구구조의 딜레마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실제 결혼소개소엔 입회 신청자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결혼 상담 업체인 ‘오넷’에는 4월 이후 자료 청구 건수가 작년보다 15% 증가했다. 성별 회원 비율을 보면 여성이 5% 늘었다. 지진 이후 광고 활동을 자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 회원이 꾸준한 늘어나고 있다.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원하는 여성이 늘어난 것”이라고 회사는 설명한다. 성혼 후의 탈퇴 회원도 3월엔 전년 동월 대비 20%나 증가했다. 결혼 특화 사이트 ‘익사이트연애결혼’도 최근 방문자가 늘어났다. 회원 규모도 급증했는데 지진 이전인 3월 초에 비해 남성(0.3%)과 여성(10.9%) 모두 늘었다.
덩달아 잊힌 단어 하나가 부쩍 부각되는 분위기다. ‘키즈나(絆)’다. 이대로라면 올해의 유행어에 오를 만큼 유력해졌다. ‘키즈나’는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 고리를 의미한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지진 지원에 감사하는 광고를 실었을 때 제목이 ‘키즈나’였다. 일본방송국(JNN)의 피해 지원 활동도 ‘키즈나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미증유의 재해 피해를 극복하는 열쇠를 ‘키즈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래 가족·지역공동체를 필두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자랑했던 일본이기에 ‘키즈나’의 부각은 이율배반적이다. 그만큼 성장 논리에 밀려 훼손됐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지진은 그 잃어버린 전통 가치를 되새겨줬다. 재해 복구 과정에서도 ‘키즈나’는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다.
효율성이란 이름의 무턱 댄 신속 복구보다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감싸는데 복구 정책의 무게중심을 둬서다. 잔해더미 속에서 사진 등 추억의 물건을 찾아주는 게 우선이다. 추억이 남은 자의 생존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민 이주 과정도 그렇다.
임시 주택을 포함해 수용 여력은 충분하지만 피해 이웃이 10가구 이상 함께 이주하도록 했다. 고립감을 덜기 위해서다. ‘커뮤니티 신청’이다.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도 많지만 이웃과의 끈을 지킨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넓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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