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열 KT경제경영연구소장

요즘 모바일 시장의 미래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있다. 2008년 2월 문을 연 정보기술(IT) 전문 지식 포털 ‘디지에코(Digieco)’다. 숨 가쁘게 진화하는 통신 산업의 최신 정보와 연구 보고서가 올라온다.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파워 블로거들의 글도 볼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 TV, 모바일 광고 등 핫 이슈를 짚어낸 오픈 세미나도 수시로 열린다. 수많은 네티즌들을 열광시킨 이 사이트를 KT경제경영연구소에서 운영한다.

KT그룹의 싱크탱크로 사내 전략 수립을 위해 축적해 온 정보들을 아낌없이 공개한 것이다. 유태열(51) KT경제경영연구소장은 “영업과 직결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정보 공유가 원칙”이라며 “정보를 나누는 것이 결국은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에코는 IT를 중심으로 한 지식 공동체를 지향한다. 지난 4월 18일 KT의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히는 유 소장을 만났다.
[스페셜 인터뷰] 유태열 “IT,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로 진화할 것”
디지에코는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한동안 시들했던 IT 열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죠. 대학에서도 오래전 텍스트로 교육하지요. 6개월만 지나면 구 버전이 될 만큼 변화 속도가 빠른 데 말이죠. IT에 관심 있는 대학생, 기업인, 일반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는 지식 포털을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디지에코’라는 명칭은 무엇을 뜻합니까.

디지털 생태계(Digital Ecosystem)를 줄인 말이죠. 2007년 다보스포럼에서 디지털 생태계에 대한 논의가 처음 나왔어요. 한국이 IT 강국으로 불리니까 한국 사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IT가 사회와 경제 시스템 전체로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생태계의 모습이 주된 관심사였지요. 거기에 KT가 참여하면서 다양한 생명체가 어우러져 움직이는 자연 생태계처럼 IT 분야에서도 앞으로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2008년 2월 디지에코를 오픈한 것도 그런 경험에서 나온 겁니다.

정보 공개에 대한 부담은 없었습니까.

KT경제경영연구소는 1983년 KT가 공사로 분리되면서 만들어진 인하우스 싱크탱크입니다. 시장 변화와 통신 전략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해 왔지요. 현재 석·박사급 연구원 80명이 근무하고 있어요.

2008년 디지에코를 만들면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심지어 경쟁사들이 알게 되더라도 공개하고 그래야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 결국은 KT에도 도움이 된다는 거죠. 폐쇄성에 안주하면 세계 흐름에서 뒤처지는 ‘갈라파고스 현상’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스페셜 인터뷰] 유태열 “IT,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로 진화할 것”
파워 블로거들의 참여가 활발한데요.

과거에는 일방통행 식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참여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중시합니다. 파워 블로거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KT가 많이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과거 네트워크 사업에 치중할 때는 사실 이분들과 만나도 할 얘기가 없어요.

무선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이제는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접점이 생겼죠. 2주에 한 번씩 여는 오픈 세미나에도 저녁 시간이지만 200 ~300명이 몰립니다. 그만큼 IT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뜨거운 거죠.

스마트폰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해가 사실상 스마트폰 시장 2년 차입니다. 스마트폰은 기존 휴대전화와 다르게 진화하고 있어요. 작년 1월 국내 스마트폰 판매 예상치를 내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수치를 제시했는데, 실제 판매량은 이를 훨씬 앞질렀어요.

이걸 보면서 아이폰이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혁신 상품은 항상 시장의 예측을 깨버리거든요. 올해도 스마트폰 사용자가 벌써 1000만 명을 넘어섰어요. 연말까지는 다시 두 배가 늘어 2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폰 출시로 KT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소득은 KT도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거죠. 과거 KT에는 ‘통신 공룡’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어요. 공기업 시절의 사고와 가치, 마인드가 그대로 남아 변화에 뒤처졌다는 평가죠. KT의 새로운 미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혁신이 필요합니다. 아이폰을 통해 KT가 변화를 이끄는 혁신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IT 업계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는데요.

아이폰은 국내 IT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어요. 외부에서 강력한 펀치가 날아오니까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이 시작된 거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 개념과 유사해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는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지요.

KT가 애플 좋은 일만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애플이 한국에만 특별하게 불리한 룰을 강요한 것은 없습니다. 애플에 한국은 여러 시장 중 하나일 뿐이죠. 이제는 로컬 스탠더드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해요. 스마트폰 게임이 극적인 사례죠.

글로벌 기준에서 스마트폰 게임 앱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도 한국 기준으로는 허용이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해외에 회사를 등록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애플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애플의 제품은 무엇보다 섬세합니다. 아주 작은 데서도 완벽함을 추구하죠. 다른 제품을 써 보면 어딘지 빈구석이 많고 덜렁덜렁한 느낌을 줍니다. 애플의 혁신 프로세스가 그런 완벽함을 가능하게 하지요.

애플 제품은 단순함도 동시에 갖추고 있어요. 아이튠즈는 동그라미 4개로만 소통합니다. 기계 자체는 복잡하지만 인간과 소통하는 방식은 복잡하지 않게 최대한 단순화하는 거죠. 섬세함과 단순함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특성을 공존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애플의 무서운 점이죠.

앞으로 IT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까요.

작년 방한한 한스 베스트베리 에릭슨 회장은 IT의 존재 이유가 사회적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통신의 첫 번째 존재 이유가 소통이었는데, 이게 바뀌고 있다는 뜻이죠.

IT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IT는 하드웨어 중심이었는데, 앞으로는 소프트웨어가 중심입니다.

사물지능통신(M2M, Machine to Machine)이나 스마트 워크, 모바일 오피스 모두 인간이 안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들입니다. 통신회사들도 더 이상 망에만 의존해서는 생존할 수 없어요. 망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죠. 종합적인 솔루션과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해요.

유태열 KT경제경영연구소장

1960년 전북 익산 출생.
1982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졸업.
1992년 KAIST 경영학 박사.
1984년 KT 사업지원본부.
1995년 KT 공정대책실 정책협력팀.
2000년 KT 기획조정실 출자제휴팀.
2003년 KT 경영연구소 기업전략팀장.
2005년 KT 기획부문 경영연구소장.
2008년 KT 충남본부장.
2009년 KT경제경영연구소장(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