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trans), 창조의 불꽃이 켜지는 순간

한 소녀가 예쁜 다람쥐를 보고 휴대전화로 찍어 전송한다. 게임 디자이너가 그것을 보고 다람쥐 주인공이 모험을 즐기는 게임을 만들어 지인에게 전송한다. 로봇 공학자는 이를 보고 가볍게 튀어 오르는 사이버 다람쥐 로봇을 만들고, 이를 본 패션 디자이너는 다람쥐의 줄무늬 패턴과 튀어 오르는 다람쥐 로봇에 착안해 창의적인 패션쇼를 하게 된다.

어느 휴대전화 광고는 무엇이 뜀틀대가 되어 상상력이 도약하고 증폭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이미지를 읽어내는 리딩(reading)과 원 이미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 시각에서 읽어낸 미스리딩(misreading)은 모두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창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발신자의 의도를 수신자가 어떻게 잘 읽어내는지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어떻게 ‘잘못 읽어내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이 광고는 잘 알려주고 있다. 상상력은 또 다른 상상력을 낳는 밑거름이 되어 무한히 새로운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

성냥이 인화물질과 부딪쳐야 비로소 아름다운 불꽃을 피워낼 수 있듯이 기존의 것은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한 상상력의 뜀틀, 상상력의 도약대가 된다.

(1) 이행·초월·변형의 상상력

[CEO를 위한 상상력 교실] 누구의 앞에도 사과는 떨어진다
아주 오래된 TV 오락 프로의 간판 게임 중 출연자의 귀를 막고 입모양만 보고 첫 사람이 했던 말을 릴레이식으로 전달해 최종 사람이 그 첫말을 맞히게 하는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은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정답을 상정하고 있을 때에는 발신자의 의도를 ‘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각이 발전하지 않지만(헤드폰이라는 자기만의 감옥에 갇혀 제각기 소리를 질러대는 출연자들을 보라), 정답을 상정하지 않았을 때에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생각들이 소통하면서 유영할 수 있다.

필자는 창조와 관련해 특히 ‘트랜스(trans-)’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있다. 가로지른다는 의미의 ‘이행’, 현 조건을 뛰어넘는 ‘초월’, 다른 조건, 다른 사물이 된다는 의미의 ‘변형’을 함께 담고 있는 ‘트랜스’는 이 시대의 문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창조에 이르는 중요한 프로세스를 알려주는 키워드다.

우리 시대에는 장르나 매체, 직업이나 세대라는 선험적으로 구획된 경계를 가로지르고, 뛰어넘고, 그리하여 기존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꾸는 ‘트랜스’의 창조 기제가 활발히 실험되고 있다.

서로 다른 음이 끼어들고 가로지르며 관객의 함성까지 음악이 되는 즉흥 연주처럼 트랜스의 상상력은 새로움이 끝도 없이 더해질 수 있다는 확신, 현장의 생생함,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기쁨을 전해준다.

(2)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낸 코카콜라 병과 만유인력의 발견

코카콜라 병 디자인은 병 제조 공장에 다니는 평범한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유래했다. 어느 날 코카콜라사는 다음 세 조건을 내건 디자인 공모를 한다. 첫째, 유리로 되어 있고 물에 젖어도 미끄러져 깨지지 않아야 한다. 둘째, 아름다워야 한다.

셋째, 보기보다 적게 들어가야 한다. 이 공모 문구를 본 병 제조 공장 직원의 여자 친구는 공모에 당선되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자 친구에게 공모에 낼 디자인을 만들어 낼 때까지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6개월간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공장에서 병만 만들던 사람이 디자인이 쉬웠을 리 만무하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다. 마감 날짜가 임박해 걱정이 된 여자 친구가 이 남자를 보러 왔을 때 기회는 찾아온다.

그 당시 유행하던 허리가 잘록 들어가고 확 퍼지는 치마를 입고 나타난 여자 친구를 보는 순간 코카콜라 병과 오버랩되고, 이 모습을 본뜬 아름다운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여자 친구가 날씬했기에 망정이지 뚱뚱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우연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뚱뚱했다면 텔레비전을 우연히 보다가 그런 옷을 입은 다른 여성에 의해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우연히 영감을 받았나’라는 사실이 아니라 ‘여자 친구’의 방문이라는 계기가 되기까지 이 남자가 끊임없이 ‘병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문제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게 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 냈다는 사실에서 그의 천재성이나 우연의 힘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 된다. 뉴턴은 잠깐 쉬러 밖에 나가 사과나무에 기대앉은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자신이 골몰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사과가 떨어졌을 때 그는 비로소 오랜 고민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사과가 아닌 다른 어떤 물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도 만유인력의 법칙은 착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가 떨어졌다는 우연에 집착하거나, 아니면 ‘사과’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창의성을 한 개인의 천재성의 산물이라든가, 어쩌다가 계시나 영감을 받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상력은 한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새롭게 읽어내고 거기에서 다의적 의미를 발견해 내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창조는 우연과 필연, 의식과 무의식,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비로소 만들어지는 복잡하고 경이로운 순간에 이룩된다. 열정적으로 꾸준히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사람에게만 바로 그 창조의 경이로운 불꽃이 켜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 시대에는 모두가 ‘쇼를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1인 기자, 1인 미디어, 1인 창조자가 되어 의미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화 예술 공연, 신문, 인터넷, 블로그, 휴대전화, 다른 사람과의 대화 등을 통해 주고받는 것들은 모두 우리들의 상상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문화의 여러 창들을 통해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해 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일은 스스로가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중요하다. 문화 전반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부분을 분리해 내 상상력의 도약대로 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에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다.

매뉴얼과 설명서의 시대가 가고 문화 창조자들이 새롭고 가치 있는 것들을 생산해 내는 상상력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앞에도 사과는 떨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도, 맛있게 먹어치울 수도 있다.

하지만 뉴턴처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도, 애플사의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를 디자인할 수도,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떨어지는 사과를 의미 있게 만드는 작업은 이 시대 상상력을 이끌고 나갈 우리의 몫이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경기창조학교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