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나운

신동엽은 그녀를 ‘외계인’이라고 부른다. ‘절친’들은 그녀가 사는 방식을 보곤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기자 역시 인터뷰 내내 말하고 싶었다. “참 힘들게 사시네요.” 고백하건대 김나운이란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어쩐지 잘 따지고 까다롭고 완벽주의자일 것 같은 이미지. 다른 건 몰라도 일에 대해서만큼은 그 선입견이 맞아떨어졌다. ‘김나운의 더 키친’ 탄생 스토리는 그야말로 철저함의 결정체였다.

3년간 온갖 테스트, “몰래카메라 아니야?”
[스타 비즈 인사이드] 홈메이드 국수로 ‘키친’ 스토리 스타트
처음 국수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땐 의아했다. 연기는 똑소리 나게 한다지만 살림의 ‘시옷(ㅅ)’자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살림꾼도 이런 살림꾼이 없다.

일단 요즘 같은 패스트 시대에 가마솥처럼 민속촌에나 있을 법한 살림살이를 고수하는 것부터 그렇다. 뚝배기에 밥을 짓고 면 행주, 삼베 보를 백옥같이 빨아서 널어둔 집안 풍경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제가 전자제품에 능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철저히 옛날 방식이죠. 사실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기 말곤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집을 가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던 엄마가 없는 거예요. 심지어 남편이 저더러 밥을 달라는데 ‘저 남자가 왜 나한테 밥을 달라지?’ 했다니까요(웃음).”

네 살 연하의 남편 조수영 씨와 결혼한 뒤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며 얼떨결에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뭐 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었다. 친정엄마를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들게 살까’ 생각했던 것들을 그녀 역시 똑같이 따라하고 있었던 것. 된장찌개 하나를 끓이더라도 좋은 재료를 구해 제대로 국물을 우려내 만들다 보니 남편은 하루 종일 기다려 밥 한 끼 얻어먹는 형국이었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잖아요. 믿을 수 있고 정직해야 하는 거죠. 국수 사업 준비 과정이 길었던 것도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왜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은 어두운 데서도 믿고 먹잖아요. 지금 아이가 없지만 사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아이가 금방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위한 진짜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어보자고 했죠.”

‘김나운의 더 키친’이란 브랜드를 처음 만든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한밤중에 남편과 함께 공장에 달려가 재료를 넣어도 보고 빼기도 하면서 맛 테스트를 하는 건 아주 흔한 일상이었고, 심지어는 포장할 때 공기를 얼마만큼 넣느냐를 가지고도 시험에 시험을 거듭했다.

오죽하면 공장 식구들이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탄생한 첫 제품이 몸을 정화하는 작용을 하는 연잎을 넣어 만든 ‘연잎 생국수’.

“업계에서 무모한 짓이라며 하지 말라는 건 다 했어요. 국수 포장을 이렇게 투명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지만 속이 들여다보이는 게 믿을 수 있잖아요. 다시 백만 해도 생물을 누가 넣느냐고 말렸는데 전 꼭 멸치와 새우 같은 생물을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죠.

꼭 국산 우리 밀을 쓰는 것도 철칙이에요. 2009년엔 멸치 파동이 있었고 최근엔 밀가루 값이 엄청 올랐지만 제품 생산을 중단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좋은 재료만큼은 반드시 고집할 거예요. 유통기한이 짧고 원가는 높고 그야말로 ‘못 돼 처먹은’ 제품이죠(웃음).”

그런 정성을 알았는지 한 달 전 국수가 시판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주문이 폭주한 건 먹어본 사람들의 입소문 때문이었다. 최근 대전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열린 시식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시식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을 뿐만 아니라 제품이 ‘완판’됐던 것. 26년을 오로지 연기만 해 온 그녀가 새로 도전한 분야에서 이렇게까지 사랑받게 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직원들 다 해 봐야 30~40명이라 주문량이 쏟아지면 정말 난감해요. 우리 제품은 주문받은 날 생산해 다음날 배송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그런데 고맙게도 불평 한마디 없이 밤을 새워서라도 주문량을 맞춰주고 있어요.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못하는 거잖아요. 3년간 아주 사소한 것도 그냥 ‘예스’하지 않는 까다로운 저 때문에 마음고생들 많이 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저를 믿고 따라주는 것 같아요.”

‘절친’들 싸 주던 ‘봉지 국수’가 시발점
[스타 비즈 인사이드] 홈메이드 국수로 ‘키친’ 스토리 스타트
사업 규모는 늘리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직접 치를 수 있는 손님 수에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게 그녀의 얘기. 대규모 생산이 아닌 지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마음으로 하겠다는 것만큼은 버릴 수 없는 철학이다.

아닌 게 아니라 김나운 표 국수가 탄생하게 된 데는 지인들의 격려가 컸다. 친한 사람들을 초대해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 국수를 끓여주고 돌아갈 때는 ‘지퍼백’에 국수를 담아 싸 주던 게 시작이었던 것.

“이승연 씨는 ‘이거 팔지 않더라도 나는 꼭 줘야 해’라고 하더군요. 남희석 씨와 이훈 씨 등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도 먹일 수 있는 국수라면서 특히 더 좋아했어요. 그런 격려가 힘이 돼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우리 국수는 기존에 알고 있던 밀가루 음식하곤 달라요. 밀가루가 나쁘다는 개념을 바꾸는 제품이죠. 남편은 결혼 전만 해도 인스턴트식 때문에 장이 좋지 않아 1년에 며칠씩 입원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끓여주는 국수를 먹고 속이 편안하다며 아주 좋아해요.”

국수를 통한 나눔 활동도 4년째 계속하고 있다. CJ 나눔 재단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그녀가 공부방 아이들에게 직접 끓인 국수를 제공해 온 것. 최근엔 푸드뱅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국수를 나누는 일도 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그녀가 국수 사업을 하는 건 어쩌면 운명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사업은 ‘봉사 활동’이 아니지 않은가. 3년간 고스란히 투자만 한 덕분에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아직 멀었다는데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명쾌하다.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남는 사업’을 하게 되지 않겠어요? 제가 연기를 시작할 때 52명 MBC 공채 탤런트 중 52등으로 들어갔어요. 당시 어떤 국장님은 저한테 비주얼이 떨어진다며 얼굴 좀 고치는 게 어떠냐고도 했어요.

그랬던 제가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서 1등을 했죠. 그땐 출석률 같은 것으로 순위를 매기는 게 있었거든요. 이순재 선생님은 ‘넌 20년이 지나도 남을 배우’라고 했어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잖아요.

연기도 사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난 3년간 식품 사업을 위한 밑바탕을 탄탄히 쌓아 놓았으니 이젠 새로운 뭔가를 내놓는다고 해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을 거예요.”

‘김나운의 더 키친’ 스토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100년, 200년이 지나도 누구나 믿고 찾는 국수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살림에 관한 모든 노하우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까지 아마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될 것 같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