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지난 2002년 은평·길음·왕십리 등 3개의 시범지구 지정으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을 이 말만큼 잘 표현만 문구도 없다. 단순한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아닌 뉴타운이란 그럴듯한 용어 이면에는 좋은 집과 더 넓은 평수, 여기에 시세 차익이라는 달콤함까지 녹아 있었다.

하지만 사업 시작 10년이 지난 현재 뉴타운은 개발 반대 소송, 사업성 결여 등의 문제가 쌓이면서 좌초되기 직전이다. 뉴타운 사업이 시작된 지 이제 10년 남짓이다. 좁은 도로와 구불구불한 골목길, 지은 지 몇 십 년이 지나 쓰러져가는 집을 허물고 번쩍번쩍한 새 집, 그것도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는 개발 사업.

하지만 처음의 장밋빛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장 먼저 준공된 은평뉴타운은 중대형 미분양으로 유령 아파트인 곳이 많고 개발이 예정된 다른 지구들도 ‘개발 반대’를 외치는 조합원들과 주민들의 소송이 한창인 곳이 적지 않다. 사업 동의서에 도장만 꾹 찍으면 근사한 새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다는 믿음도 깨지고 있다.
‘로또 재개발’ 뉴타운 무너지다
뉴타운이라 말은 본래 19세기 말 영국의 에베너저 하워드가 제창한 ‘전원도시론’에 처음 등장했다. 산업혁명 이후 이뤄진 급격한 도시화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공기·물·일조량 등의 기본적인 주거 환경은 물론이고 교통·주택·위생 등 현시점에도 유효한 도시화의 부작용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시 건설 욕구를 낳았다.

그린벨트나 녹지에 새로 지어진 이들 도시는 지금도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국의 런던 외곽이나 프랑스 파리 바깥의 신도시 등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구도심이 아니라 도시 외곽에 완전히 새로 만든 도시가 뉴타운의 본래 의미다.

의미나 연원이 어찌됐든 낡은 도시나 주거지의 문제점을 개선해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게 뉴타운의 사업 목표다. 그런데 분당 등 신도시와 지금의 뉴타운 개념은 개발 방식과 수단 등 고려 사항이 완전히 다르다. 신도시는 살고 있는 사람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보면 자연환경만 고려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뉴타운은 이미 살고 있는 이들의 이주나 재정착, 주변 시설이나 주거지와의 조화, 기존 기반 시설에 대한 영향 등 고민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목적은 두 사업이 같지만 구체적인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로또 재개발’ 뉴타운 무너지다
‘황금알’에서 ‘애물단지’ 전락

건설사의 중동 붐이 끝난 1970년대가 지나자 1976년 도시재개발법 지정, 1980년대 합동 재개발 사업 등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당시만 해도 급격한 서울 집중으로 주택 수요가 태부족이었던 시절이다.

주택이 부족하다 보니 짓기만 하면 분양은 100%였다. 분양이 잘되니 원주민들의 입주 부담금도 거의 들지 않았다. 건설사와 주민(조합)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살고 있던 집과 같은 평수를 받거나 오히려 줄여가도 몇 억 원씩 돈을 더 내야 한다. 오르기만 할 줄 알았던 아파트 값이 정체를 보이거나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도시공학과 이제선 교수는 “이미 2·3차 뉴타운 지정 때만 해도 달라진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준황금알’ 정도는 될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기대감이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 부동산 값이 오르던 호시절에는 이름값을 했지만,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게 현재 뉴타운의 속사정이다.

도시 기반 시설이 양호해 추가 사업이 필요 없는 재건축과 달리 재개발 사업은 도로·상하수도·학교·공원 등의 기반 시설을 추가로 공급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뉴타운 개발은 이러한 도시 기반 시설 건설 비용은 물론이고 주거 세입자나 상가 임차인들의 보상 비용까지 원주민들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뉴타운을 개발하면 당연히 집값이 오르고, 그 개발 이익으로 큰 비용 부담 없이 새 아파트를 받거나 분양권을 전매할 수 있다는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 2009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4구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0.9%에 그쳤다. 그나마 임대주택을 포함해서다. 사업 구역 안에 살던 원주민 중 18.2%가 성북구에 새 터전을 마련했고 성북구 인접 구에 30.7%, 서울시 그 외 지역에 16.9%가 이주했다.

서울시 바깥으로 밀려난 원주민 수도 20.5%에 이른다. 재정착해 사는 사람들보다 서울 밖으로 쫓겨난 사람이 많은 실정이다. 뉴타운 개발 사업이 ‘주거 개선’이 아니라 ‘주민 개선’ 사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시는 지난 4월 14일 ‘신주거정비 5대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전면 철거 후 획일적으로 짓던 기존의 재개발·재건축 방식을 바꾸겠다는 게 골자다. 이미 지정된 뉴타운사업지구는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다만 건축 허가 등의 제한을 받고 있는 뉴타운 지구 내 30개소 존치 지역은 주민 의견을 수렴해 건축 제한 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뉴타운 정책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경기도도 4월 13일 ‘경기도 뉴타운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단계별로 사업이 부진하면 촉진구역에서 해제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미 추진하고 있는 사업도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이라면 주민 의사를 공정한 방법으로 확인해 사업 취소가 가능해졌다. 사실상 뉴타운 ‘포기’나 다름없다.

뉴타운을 비롯한 재개발 사업의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단독·다세대 등의 주택 거래량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써브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 단독·다세대·연립·다가구주택의 거래량이 2008년 총 9만8949건에서 2009년에는 6만8969건, 2010년 들어서는 5만416건으로 급감했다.

연 10만 건에 육박했던 거래량이 불과 2년 사이에 반 토막 난 것이다. 재개발 사업 대상인 단독·다가구의 거래량이 쪼그라들었다는 건 그만큼 뉴타운 사업의 매력이 더 이상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취재=장진원·박진영·우종국 기자
전문가 기고=김지훈 내집마련정보사 정보분석팀장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