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경영자 런정페이의 변신
중국 최대이자 세계 2위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67) 최고경영자(CEO)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절 거절해 은둔의 기업인으로 불린다. 그가 공개 경영을 선택했다. 최근 2010년 실적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13명의 이사진 명단을 공개했다.이사들의 이름과 사진, 간략한 이력까지 웹사이트(huawei.com)에 올렸다. 1988년 설립된 이 회사는 6만 명이 넘는 직원을 뒀지만 경영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런 CEO의 결정은 마오쩌둥식 경영으로 승승장구해 온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서 번번이 태클을 당하는 현실을 깨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런 CEO의 화웨이 지분은 1.4%이며, 종업원들이 나머지를 갖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분은 하나도 없다.” 화웨이가 이번에 처음 지배 구조를 공개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지난 2월 미국 기업 스리립(3Leaf)시스템 인수 불발을 포함해 화웨이는 최근 3년간 스리컴(3com), 노텔네트웍스, 모토로라 무선네트워크 사업부, 투와이어(2wire) 등 무려 5차례의 해외 기업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CEO가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이라는 점을 이유로 미 국방부와 정책 입안자들이 화웨이와 중국 군 당국과의 관계를 의심해 왔다. 공개된 이사진을 보면 이사장인 쑨야팡(孫亞芳)이 계속 이사장 자리를 맡고, 런정페이의 딸이 최고재무담당임원(CFO)으로 새 이사진에 포함됐고 남동생 런수루는 감사에 올라 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통신 장비 제작을 시작한 화웨이는 20여 년 만에 매출의 65%(2010년 기준)를 해외에서 거두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런 CEO의 마오쩌둥식 경영전략이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다.
농촌에서 혁명을 일으킨 뒤 도시를 포위했던 마오쩌둥의 전술처럼 저가 장비로 농촌에서 실적을 올린 뒤 대도시에 진출했다. 해외 사업도 마오쩌둥식 전략을 채택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홍콩·싱가포르·태국에서부터 사업을 확장해 갔다. 이들 지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정보기술(IT)과 통신 장비의 본고장인 유럽과 북미로 세를 넓히고 있다.
세계 2위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의 창업자
세계 100여 개국에 진출한 화웨이는 글로벌 상위 50개 통신 사업자 가운데 45곳에 장비를 납품했다. 그 덕분에 2006년 660억 위안이던 화웨이의 매출은 지난해 1852억 위안(273억 달러)으로 급증했다. 이런 속도라면 화웨이는 올해 세계 1위 통신 장비 업체 등극이 확실시된다.
런 CEO의 투명 경영은 미국 진출을 가속화해 마오쩌둥식 경영 성공의 방점을 찍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웨이는 텍사스에 있는 비영리 민간 기구인 아동메디컬센터에 5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미국에 위협이 아닌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는데 주력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수석 변호사, 국가안보회의(NSC)고문으로도 활약했던 존 벨링거(로펌 아널드앤드포터의 파트너)를 작년 초 영입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다른 로비스트들도 고용했다.
연구·개발(R&D)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화웨이 질주의 또 다른 배경이다. 화웨이는 매출의 10% 이상을 매년 R&D에 투입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 미국·스웨덴·러시아 등지에도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지난해엔 항저우에 14억 위안(2400억 원)을 투자해 글로벌 R&D센터를 세웠다. 4월 초엔 미 산타클라라에 연구소를 개설했고, 브라질 상파울루에도 3억 달러를 들여 연구센터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장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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