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서 노키아 제친 HTC 급성장 비결

“못 보던 스마트폰이네. 어디 거야?” “HTC 디자이어야.” “HTC? 그게 뭔데?”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던 사람에게 ‘대만산(産) 브랜드’라는 답을 주면 이내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온다.

애플(아이폰)과 삼성(갤럭시S)·LG(옵티머스 시리즈), 조금 더 인심을 써 ‘모토로라’나 ‘소니에릭슨’, ‘블랙베리’라면 몰라도 “웬 ‘듣보잡’ 대만 회사냐”는 식이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2009년 말 8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불과 2년도 안 돼 120%가 넘는 폭발적 성장세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안에 2000만 명 가입자 돌파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정보기술(IT)과 모바일 강국인 국내 제조사들도 스마트폰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이미 삼성·LG·팬택계열 등 국내 제조사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세계 3위 수준에 올라 있다. 국내 상황은 우리 제품 일색이다. 외국산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0% 안팎에 머물러 있고 그중 8%를 차지하는 것이 애플의 아이폰이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 중 90% 이상이 국산 단말기가 아니면 아이폰을 샀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선을 바다 밖으로 돌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2010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을 살펴보면 노키아와 RIM(블랙베리)·애플·삼성전자에 이어 등장하는 회사는 LG도 모토로라도 아닌 HTC다.

대만의 쉐어 왕(Cher Wang, 회장)과 피터 초우(Peter Chou, CEO)가 함께 설립한 HTC는 설립 당시인 1997년만 해도 단순 주문자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노트북을 만들던 업체였다. 하지만 피터 초우 대표 등 경영진은 이미 레드오션이었던 노트북 사업을 과감히 접기로 결정했다. 그리곤 회사의 새로운 주력으로 정한 것이 바로 휴대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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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5위

HTC는 비교적 최근인 2009년까지도 OEM 사업을 완전히 접지 않았다. HTC라는 자체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것도 2006년 6월로 채 5년이 안 됐다. 하지만 현재 HTC의 시가총액은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사인 노키아를 앞선 상황이다. 4월 7일 현재 HTC의 시가총액은 338억 달러로 336억 달러에 그친 노키아를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HTC의 비상에 날개를 달아준 건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최초의 스마트폰인 ‘G1’을 선보인 2008년 HTC의 총매출액은 5조6200억 원이었다. 불과 2년 후인 2010년 매출액은 10조740억 원으로 두 배가량 성장했다.

HTC는 특히 미국 시장에서 애플과 림에 이어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닐슨에 따르면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HTC의 점유율은 19%(안드로이드 17%+윈도모바일 2%)에 이른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7%에 그쳐 10% 이상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도 사정은 비슷해 노키아와 애플 림에 이어 HTC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명의 대만 OEM 제조사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로 떠오른 건 불과 5~6년 남짓됐다. 전문가들은 HTC의 성장 비결을 협력사와의 ‘다양한 파트너십’에서 찾는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안드로이드) 등 운영체제(OS) 개발사는 물론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사인 오렌지·02·T모바일·포다폰·버라이즌·NTT도코모·SK텔레콤·KT 등이 모두 HTC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

HTC는 노트북을 만들던 때부터 세계적인 IT 기술진과 폭넓은 유대 관계를 맺어 왔다. OEM을 통해 심어진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는 DNA는 하드웨어와 OS의 다양한 조합을 가능하게 했다. 노키아의 심비안, 애플의 iOS 등 폐쇄적인 구조 대신 다양한 OS를 도입해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업계의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HTC는 이미 지난 2002년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소프트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200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 5.0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등 마이크로소프트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해 왔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 OS의 최신 버전인 윈도폰7을 탑재한 스마트폰 역시 HTC의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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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장 동력은 콘텐츠 강화

구글의 OS인 안드로이드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앞으로도 HTC의 미래를 밝게 보는 첫 번째 요소다. 2008년 안드로이드 OS가 탑재된 최초의 스마트폰인 ‘G1’을 선보인 곳이 바로 HTC였다. 2010년에는 구글의 레퍼런스폰인 ‘넥서스원’ 개발에 참여하면서 구글과의 파트너십이 더욱 공고해졌다.

시장조사 업체 IDC의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안드로이드의 모바일 OS 점유율은 39.5%에 이른다. 연평균 성장률도 23.8%에 이를 것이고 2015년에는 전체 모바일 OS 시장의 45%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의 로버트 챈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향후 3~5년 내 2억 대의 스마트폰과 3000만 대의 태블릿 PC를 판매하며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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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제조사가 아닌 디자인 회사’로 부르는 독특한 기업 문화도 경쟁사와 다른 차별점이다. 단말기의 하드웨어와 스펙이 평준화되면서 이러한 독특한 문화는 끊임없는 ‘혁신’의 원천이 됐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엔지니어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간편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개성에 맞춰 사용하느냐가 HTC 개발 과정의 핵심이다.

최초의 풀터치 폰, 휴대전화를 집어 들면 벨소리가 자동으로 작아지는 기능, 전화가 걸려왔을 때 상대방의 페이스북 사진과 업데이트 내용을 보여주는 기능 등은 대표적인 사용자 편의 위주 기능들이다. 트레이드마크인 ‘날씨 위젯’과 ‘센스 UI’ 등도 사용자를 배려한 HTC만의 메리트다.

HTC는 최근 본격적인 콘텐츠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섰다. 지난 2월 콘텐츠 공급 업체인 ‘샤프론 디지털’과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업체인 ‘온라이브’를 인수한 것. 영화·TV·음악·게임 등의 콘텐츠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전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HTC의 현실이다. 2008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HTC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이동통신 기술을 보유한 한국 시장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과 LG가 모바일 본고장인 유럽과 미국에서 경쟁 브랜드를 앞서가는 것처럼 삼성·LG·팬택계열의 나라에서 HTC가 점유율을 높여간다는 상징성 또한 크다.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국내 브랜드와의 치열한 혈전을 통과해야만 한다. 당장 국내 1위인 삼성전자가 갤럭시S2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LG전자의 ‘옵티머스2X’도 2월 첫째 주 국내 시장점유율에서 갤럭시S(7.5%), 아이폰4 16GB(5.9%)에 이어 3위(5%)를 차지했다.

시장조사 업체인 가트너는 2013년에 LG전자의 글로벌 판매량이 HTC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HTC는 올 2분기부터 국내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해 올해 안에 5개 정도의 새로운 모델로 한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