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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급 순위 34위의 중견 건설사 삼부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건설업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진원지는 금융권에서 받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다. 작년 말 현재 PF 대출 규모는 38조7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규모만 12조4000여억 원이고 평균 연체율도 24.3%까지 치솟은 상태다.

PF 대출이 심각한 부실에 이르게 된 건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진행한 후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거둬들인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이 PF의 기본이다. 하지만 대규모 미분양 사태와 거래 실종 등 극심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돈줄이 마른 건설사가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삼부토건은 지난해 매출 8374억 원에 영업이익 201억 원을 거둔 알짜 기업이었다. 하지만 재무제표상에 나타나지 않는 PF 대출만 8000억 원대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태의 발단이 된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 사업 외에도 카자흐스탄 오피스텔, 사천 골프장 개발 등 대규모의 PF 대출을 안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부실 PF 대출 문제가 삼부토건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로 헌인마을 사업 공동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도 4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금융권 역시 PF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만기 연장 등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추가 담보가 없는 건설사로선 부도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업계에선 상위 100개사 중 60개 사가 PF 대출 부실로 쓰러질 것이라는 괴담까지 돌 정도다.
건설사 PF발 퇴출 공포…‘속수무책’
“100개사 중 60개 쓰러질 것” 괴담 돌아

법정관리가 최악의 선택임은 분명하지만 은행과 기업 간 ‘기싸움’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06년 통합도산법을 개정하면서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를 도입했다. 공금횡령 등 비위 사실이 없으면 종전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는 내용이다.

반면 돈을 꿔준 채권단 입장에선 손해 보는 장사다. 기업의 법정관리가 확정되면 모든 채권·채무가 즉시 동결된다. 때론 원금 손실까지 감수해야 한다. 삼부토건은 “막판 협의 과정에서 추가 담보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채권단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채권은행들은 “사전에 아무런 협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실제로 삼부토건은 서울 르네상스호텔, 경주 콩코드호텔 등 전국에 부동산 자산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 추가 담보를 제공하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법정관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경영권을 보호하려는 속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편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삼부토건은 “철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헌인마을 공동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 몫의 담보 제공 부분만 완화되면 철회를 고려하겠다는 뜻. 이에 대해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좋은 답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금융 당국이 채권단의 만기 연장을 주문한 셈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