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간 속에 서 보라

새벽 3시 경주 불국사의 시간 속에 서 본 경험이 있다. 차갑고 투명한 대기 속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그 시간에 가사 장삼을 걸친 수십 명의 스님들이 탑을 돌면서 불경을 읊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큰 북이 울리고 이어서 목어(木魚)와 운판(雲版), 목탁 소리가 어우러진 소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우리가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이렇게 일어나 깨달음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전율했다. 그 순간은 인간과 신이, 무생물과 생물이, 인간과 자연이 경계를 허무는 시간이었다.

1. ‘성공하는’ CEO의 시간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판부가 펴낸 ‘시간관리의 기술’, 펙 피커링의 ‘업무 시간의 생산성 극대화 방법’,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나오는 ‘시간관리 매트릭스’, 스테파니 윈스턴의 ‘성공하는 CEO들의 일하는 방법’….

최고경영자(CEO)뿐만 아니라 시간에 자유로울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솔깃하게 하는 이 베스트셀러들은 하나같이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해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자신의 시간 씀씀이를 파악하라’는 것. 이는 재무관리 계획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간은 곧 돈이니, 헛되이 낭비되는 부분이 없는지 파악하라는 것이다.

테트리스 게임이 생각난다. 조금만 방심하면 무서운 속도로 도형들이 떨어져 내려 쌓이고 순식간에 ‘게임 오버’가 된다. 베스트셀러들이 조언하는 시간 관리 기술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게임 오버가 되기 전에 니은 자, 기역 자 도형을 착착 맞춰 정리하면서 살라는 셈이다.

그러니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시간이 없다. 능숙한 게이머라면 물론 그 안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 테트리스를 오래하다 보면 놀랍게도 도형이 떨어져 내리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져 음료를 마실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도형들이 뒤죽박죽 상태로 끝까지 차오르는 상태가 온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테트리스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 전부가 생산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인간에게 24시간이라는 절대적 시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많은 시간들이 어우러져 관계와 생의 법칙들이 만들어진다. 현대인이 그토록 갈구하는 상상력, 창의성, 행복, 사물과 세상과 나를 돌아볼 시간은 어느 곳에 존재하는가. 한의사로 신춘문예에 당선한 소설가 오수완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언제 장편소설을 썼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이들이 잠든 후 11시쯤부터 썼다. 10분 쓸 때도 있고 1시간 쓸 때도 있다. 욕망·슬픔·괴로움·쓸쓸함, 이런 것들이 쓰다보면 풀리는 것을 느꼈다”고 답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한의사 일을 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소설을 썼다는 답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상상력이 펼쳐지는 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따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 ‘다른’ 시간들을 응시하기
[CEO를 위한 상상력 교실] ‘시간 관리’기술은 끝없는 테트리스 게임
5초는 정말 별것 아닌 시간이지만, 농구장에서 경기 종료 5초 전 1골 차로 지고 있던 팀의 한 선수가 던진 공이 골대의 림(Rim)을 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경기장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심판과 관중 모두가 째깍째깍 흐르는 1초 1초를 생생하게 느끼고 공이 빙그르르 돌다가 바스켓 안에 들어가는 순간을 응시할 것이다. 만화 ‘슬램덩크’를 본 분은 잘 아시리라. 그 찰나의 순간이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되는지….

“맑게 갠 토요일 오후였다.” “우중충한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일요일 저녁이었다.”

소설에서의 시간 묘사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단서가 되기도 하고,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대낮이라는 시간의 그 강렬한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매일 뜨고 지는 같은 태양인데, 왜 1월 1일의 태양은 우리에게 특별할까. 그것은 시계가 기계적으로 균등하게 제시하는 시간 외에 다른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시간, 경험적 시간, 일탈의 시간, 문학적 시간….

독일 매체 미학자 발터 벤야민 또한 매 순간 양적인 차원에서 균등한 가치를 지니도록 배분된 시간이 아니라 비균질적이고 비연속적인 시간의 의미를 말한 바 있다. 창작자들이 주목하는 상상력이 샘솟는 시간이 바로 이런 비연속적인 시간이다.

숨 가쁘게 짜인 일상의 물리적 시간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 보라. 자신의 뇌가 딱딱한 고정성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새로운 리듬으로 작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CEO들이여, 일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도무지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 때 다른 시간으로 가보라. 자나 깨나 시간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먼저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라. 하루쯤 이른 새벽 거리에 혹은 새벽시장에 가보면 익숙하게 경험했던 공간들이 어떻게 다르게 체험되는지, 내 자신과 세상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되는지 한껏 느낄 수 있으리라.

일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는 경험을 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순간은 상식적이며 일상적인 체험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눈을 뜨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래서 바쁜 사람일수록 어느 날 문득 낯선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당면한 일의 총체적인 면모가 확실하게 잡히고 잘 풀리지 않던 일의 해결점을 보다 쉽게 찾게 될 것이다.

새벽 3시 불국사에서 깨어나 보면 시간의 개념뿐만 아니라 생의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게 인식된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쉬지 않고 취하라!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그 무엇에든!”이라고 외쳤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의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응시자가 되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운 시간을 응시하고 있으면 내가 보이고, 여러 방향으로 흘러가는 다른 시간들이 보이고, 부닥쳤던 문제들이 전혀 다른 각도로 풀린다.

새로운 시간의 응시는 메마른 일상에서 아름다운 감동을 경험하게 해준다. 일상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 그 힘찬 울림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넘어서고 초월해 저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이 시간의 창조자가 되는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경기창조학교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