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부각된 30대 트릴레마 공포
트릴레마(Trilemma). 삼중고란 의미다. 진퇴양난의 딜레마보다 더 심한 상태다. 일본의 30대가 이 트릴레마에 빠졌다. 본인 노후도 걱정인데 부모 간병(개호)과 자녀 교육까지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인구 변화와 맞물린 장기·구조적인 저성장 압박 때문이다. 일본 사회가 최근 무연화(無緣化)되고 만혼화(晩婚化)되며 폐색화(閉塞化)되는 이유다.본인 노후, 부모 간병, 자녀 교육의 트릴레마는 사실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1981년 미국에서 명명된 ‘샌드위치 세대’란 말이 대표적이다. 부양해야 할 부모와 자녀 때문에 경제적 압박을 느끼는 4050세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략 20~30년 후의 은퇴 시점에 부모 봉양과 자녀 교육의 이중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의 샌드위치 세대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 여기에 은퇴 이후의 본인 생활도 심각한 걱정거리다. 트릴레마의 완성이다.
트릴레마가 무서운 건 사실 늦은 결혼 때문이다. 즉 만혼화(晩婚化)가 낳은 문제다. 35세 이후 자녀 출산이 증가하면서 본인의 퇴직 시점에 자녀 양육비는 정점을 찍는 한편 부모 연령은 80대 전후까지 올라간다. 천문학적인 개호 부담과 자녀 지원이 중첩되지만 정작 본인의 경제활동 여부는 미지수다. 부모 봉양·자녀 양육에 본인 노후까지
때늦은 결혼은 때늦은 출산을 뜻한다. 일본에선 결혼하면 자녀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자녀 부부는 드물다. 이는 부부완결출생아수라는 통계에서 확인된다. 가임 연령(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다.
평균 2.09명이다. 이는 미혼 여성까지 포함된 합계 출산율(1.32명)보다 높다. 결혼 이후 2명 이상 낳는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만혼화로 자녀 출생이 늦어진 고령 부모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20~30년 후 가정경제는 비관적이다.
35세 때 첫아이를 낳았다면 20년 후 엄마 연령은 55세다. 대개 연상인 남편의 정년 시즌과 맞물린다. 남편 수입이 불안정해진다는 의미다. 또 이들의 부모 연령은 80대를 넘어 본격적인 봉양이 불가피하다. 20세 자녀 밑으로 들어가는 교육비도 덩달아 확대된다. 이게 일본판 30대 트릴레마의 핵심이다.
트릴레마에 봉착한 이들 30대 규모는 잠재적으로 220만~230만 명에 달한다. 통계를 보면 2005~2009년의 5년에 걸쳐 35세 이상 고령 산모는 105만 명으로 알려졌다. 향후 5년까지 포함하면 120만 명이 더 추가될 것으로 분석된다.
즉 35세 전후 5년씩(10년)을 감안한 트릴레마 후보군은 225만 명까지 확대될 여지가 있다. 결국 만혼 결과에 따라 20년 후 정도엔 부부의 부모·자녀를 둘러싼 자금 지원이 느는 반면 본인 세대의 경제활동은 축소될 확률이 높다. 정년 연장 등 고령 근로를 위한 정책 변화가 이들 30대의 불안감을 불식시킬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의 준비 상황은 적잖이 열악하다. ‘노후 난민’이란 표현처럼 상당수가 무방비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게 정설이다. 샐러리맨 설문 조사(피델리티퇴직·투자교육연구소, 2010년)에 따르면 30대의 평균 연봉은 435만 엔이고 보유 자산은 669만 엔으로 집계된다.
모두 평균(각각 493만 엔, 861만 엔)보다 적다. 하지만 은퇴 이후 생활 이미지는 ‘느긋하게 삶을 즐기겠다’는 응답이 남녀 모두 절반을 넘겼다. 특이한 건 결혼 여부와 연령이 갈리는 30대의 세부 상황별 이미지 차이다.
남성은 결혼 여부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30대 전반 미혼 남성은 퇴직 생활을 ‘곤란·불안(12.1%)’으로 본 반면 기혼 남성은 이 수치가 5.0%까지 줄어든다. 30대 후반 남성도 미혼(12.5%)과 기혼(4.9%)이 구분된다. 이에 비해 ‘긍정·행복’이란 답변은 30대 전반은 미혼(7.8%) 기혼(17.8%), 30대 후반은 미혼(7.7%) 기혼(12.9%)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30대 여성은 어떨까. 남성과 달리 결혼 유무보다 연령 상황이 노후 생활의 행복을 가르는 기준으로 부각된다. 분기점은 35세다. 30대 후반 여성은 결혼 유무와 무관하게 ‘유지·절약’을 꼽은 이가 23%인데 비해 30대 전반 여성은 19%에 불과했다.
20대 여성은 15.5%까지 떨어진다. 반면 4050세대 여성은 그 수치가 25%로 높아진다. 즉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은퇴 이후를 피곤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한편 퇴직 후 필요 자금은 30대 남녀 모두 평균 3000만 엔 정도로 추정됐다. 다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30대의 준비 금액은 필요 금액의 9분의 1에 불과한 320만 엔대에 그쳤다. 준비 자금이 제로인 케이스도 많다. 돈이 없다고 답한 30대 남녀는 각각 51.3%와 54.1%에 달했다.
특히 가족 부양 책임이 있는 기혼자는 필요 액수가 더 많지만 정작 준비 상황은 더 열악하다. 당장의 경기 침체, 소득 감소조차 버텨내기 힘든 까닭에 앞날의 노후 희망을 떠올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의지하는 동아줄이 얇아졌다지만 그래도 퇴직금·기업연금이 유력하다. 자금 출처 중요도 조사 결과 30대 남성은 저축(46.4%), 자산운용(23.8%), 퇴직금·기업연금(21.0%) 등으로 나타났지만 문제는 저축과 자산운용은 현실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50대 결과인 저축(36.9%), 퇴직금·기업연금(33.5%), 자산운용(20.0%) 등과 구분되는 결과다. 물론 퇴직금·기업연금도 갈수록 부정적이다. 기업 실적 정체와 퇴직 시장 확대 등으로 수혜를 볼 개연성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하고 뚜렷한 트릴레마 해소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30대의 폐색(閉塞)감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같다.
퇴직 후 필요 자금 3000만 엔 추정돼
또 하나의 문제는 자산운용과 관련한 30대 트릴레마 세대의 소극성이다. 30대 중반 이후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버블 붕괴를 지켜본 세대다. 10대 때부터 거의 20년 넘게 장기 불황을 생활 속에서 경험했다.
‘투자=손해’라는 이미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여윳돈이 없기도 하지만 있어도 위험 자산보다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앞의 조사 결과를 보면 35세를 변곡점으로 투자 활동에 대한 부정론이 뚜렷하게 늘어난다.
남성 30대 전반은 ‘투자=부정적’이 압도적(72.5%)이라지만 30대 후반은 78.1%까지 더 올라간다. 그나마 30대 전반과 20대는 1990년대 초반의 폭락 과정에서 한발 비켜선 결과다.
하지만 실제 30대의 투자 활동 비율은 남녀 각각 39.0%, 24.2%로 적지 않다. 잃을까봐 불안한 마음보다 노후 자금의 압박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후에 홀로 살아갈 기대 여명이 높은 여성은 연령이 늘수록 투자 활동에 적극적이다. 투자 대상은 남성은 일본 주식이 많았고 여성은 외화예금이 일반적이었다. 또 매월 분배형 펀드는 여성이, 외환 투자(FX)는 남성이 선호했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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