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청와대가 일선 부처에 대한 불만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동남권신공항·과학비즈니스벨트·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굵직굵직한 국책 사업에 대해 해당 부처들이 손을 놓고 있다며 벼르고 있다.

국책 사업들을 둘러싸고 지역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으나 정부 내에서 누구도 선뜻 ‘총대’를 메지 않으면서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한 수석비서관은 최근 기자와 만나 “동남권신공항 백지화를 결정하기까지 지역 간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도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어느 부처에서도 백지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적극적으로 나서 설득하거나 홍보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또 “금융 위기 당시를 이용해 신공항 무기 연기를 선언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과학벨트 논란과 관련,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교통정리에 나선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임 실장이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다고 했지만 과학벨트를 둘러싸고 여러 억측이 나돌자 비공식적으로 정부의 방침을 슬쩍 흘려 논란 확산 방지를 시도한 것이다.

재·보선 이후 개각 폭에 관심 쏠려
‘부글부글’ 청와대…반발하는 관료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이해 당사자와 충분히 의견을 나눠야 한다.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면 이해될 수 있는 정책도 일방적인 발표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부처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다.

청와대 내에선 특정 장관을 타깃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에 대한 불만이 높다. 모 비서관은 “동남권신공항 파문이 눈덩이처럼 커졌는데도 정 장관은 그동안 4대강에만 매달리고 다른 사안에 대해선 뒷짐만 지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도 신공항 개념에 포함되는데 밀양이나 가덕도 유치가 안 되면 백지화하는 것처럼 보도돼도 국토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가에선 청와대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정권 출범 때부터 청와대가 모든 것을 틀어쥐고 드라이브를 걸면서 부처 자율권은 상대적으로 축소됐다는 게 부처 공무원들의 반응이다. 과천 관가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청와대와 대통령 직속위원회가 큰 틀의 정책 결정에서부터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간섭해 온 게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청와대가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이 좌절됐을 때 과학벨트는 충청도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어야 했다”며 “참모들도 몸을 사리긴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 여권 일각에선 당시 참모들이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해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마저 제기됐다.

어쨌든 청와대가 부처에 대한 불만이 큰 만큼 4·27 재·보선 이후에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개각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환경부 장관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의 거취도 유동적이라는 분석이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