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거품’…지방정부 ‘부실’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가 중국 국가 신용 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피치는 세계 3대 신용 평가사 가운데 중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가장 줄기차게 경고해 온 회사다. 이번에 피치는 위안화표시채권의 신용 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춰 잡았다.은행들의 부동산과 지방정부에 대한 대출 급증이 3년 내 은행 자산의 심각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다. 중국 은행의 신규 대출은 지난해 7조9500억 위안에 달했다. 신규 대출 상한선(7조5000억 위안)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은행 대출 규모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달했다. 2008년 111%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피치, 위안화표시채권 ‘부정적’으로 낮춰 전망
지난 3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높은 집값이 중국 경제의 가장 큰 근심거리라고 밝힐 만큼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베이징의 평균 주택 가격은 지난 2년간 2배 이상 뛰었다. 지방정부는 은행으로부터 직접 대출을 받지 못하는 규정 때문에 금융공사를 만들어 대출을 받았다.
피치는 중국이 지난해 말 현재 부실채권 비율이 1.1%라고 밝히고 있지만 보수적으로 추정된 비율은 이미 6%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피치는 “은행이 스스로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 거의 소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경고했다.
피치는 지난 3월에도 중국 은행들이 대출 증가와 부동산 가격 폭등 여파로 3년 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의 자체 거시건전성지표(MPI)를 분석한 결과 중국 은행들이 위기를 맞을 확률은 60%였다. 피치 MPI는 1등급부터 3등급까지 나뉘는데 중국 은행들은 대부분 위험성이 가장 높은 3등급에 포함됐다.
피치는 1월에도 올해 아·태지역 은행들에 대한 전망을 ‘안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예외적으로 중국과 베트남 은행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피치는 통화 당국이 인플레이션 억제 시점을 놓치면 이후 급격한 긴축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또다시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가계와 은행의 동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피치의 설명이다.
피치는 지난해에도 잇따라 중국 금융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작년 7월 보고서에서는 중국 은행들이 작년 상반기에만 편법 증권화를 통해 대출 규모를 실제보다 2000억 달러 정도 축소했다고 주장했다.
대출 일부를 증권으로 만들어 되사준다는 조건으로 신탁 회사에 넘겼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대출 규제에 나서자 편법으로 장부에서 대출을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대출 규모를 축소했다는 설명이다. 피치는 당시 중국 은행들의 상반기 공식 신규 대출이 4조6000억 위안이었지만 실제는 5조900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 당국은 2009년 은행의 신규 대출이 9조6000억 위안으로 전년의 두 배 수준으로 늘자 자산 거품과 부실채권 발생을 우려해 2010년 신규 대출 상한선을 총 7조5000억 위안으로 설정하고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피치는 앞서 작년 초엔 과도한 대출과 대출 채권 편법 매각 등을 이유로 중국의 초상은행과 중신은행의 신용 등급을 ‘D’로 한 단계 낮췄다. 피치가 중국 은행의 신용 등급을 내린 것은 200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부장 kjoh@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