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도 ‘고급, 더 고급’

지난 4월 5일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대 부지에 들어선 ‘한남더힐’. 지난 1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아직 곳곳에서 마무리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평일 한낮인 때문인지 입주민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공사용 차량과 가전제품을 실은 트럭만 단지 내를 간간이 오갈뿐이다.

수십억 원을 들였다는 값비싼 조경수와 거대한 조형 작품들이 이곳이 국내 최고가 임대아파트 단지임을 실감나게 한다. 한남더힐의 임대료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웬만한 고가 아파트를 팔아도 보증금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다. 임차보증금은 최저 14억800만 원에서 시작한다.

규모가 가장 큰 332㎡형은 보증금 25억 원에 월 임차료가 429만 원에 달한다. 이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남동이라는 최고의 입지와 부자들만의 커뮤니티를 내세운 마케팅이 성공을 거둬 최고 51 대 1의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분양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보증금만 25억 한남더힐 51 대 1 경쟁률
[부자의 지갑을 열어라] ‘비싸도 팔린다’…‘VIP 커뮤니티’ 어필
단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332㎡형 초고가 주택이 들어선 곡선형의 3층짜리 동 3개가 눈에 들어온다. 지상 1~2층에는 복층형 주택 2가구가 있고 3층에 펜트하우스가 들어간 구조다. 펜트하우스에는 소나무 등이 심어진 가구별 독립 정원이 마련돼 있다. 최고급 호텔을 연상시키는 커뮤니티 센터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이제 고급화 추세는 사치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의식주 분야에서도 차별화된 고가 상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에도 고급 아파트의 인기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원석 한화건설 차장은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을 뿐이지 고급 시장은 여전히 살아있다”며 “두 시장은 따로 움직이는 별개의 시장”이라고 말했다.

오는 6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성동구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는 한남더힐 못지않게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이다. 서울숲 바로 옆에 들어선 45층짜리 주상복합 갤러리아 포레는 국내 최고가 분양가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지난 2008년 분양 당시 3.3㎡당 평균 분양가가 4200만 원에 달했다. 가장 비싼 377㎡ 펜트하우스가 무려 52억 원이고, 여기에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인 장 누벨의 인테리어를 적용하면 가격이 57억 원으로 뛴다.

갤러리아 포레는 처음부터 ‘대한민국 1%’를 타깃으로 한 귀족 마케팅에 초점을 맞췄다. 장 차장은 “입주자는 대부분 기업 오너들”이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기업 오너가 가장 많고 유명 법무법인 대표, 연예인 등 전문직도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갤러리아 포레에 끌린 가장 큰 이유는 ‘한국판 센트럴파크’인 서울숲과 한강을 안방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뛰어난 입지다. 장 차장은 “외국 생활을 한 분들은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주변 고급 아파트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1%를 끌어들인 갤러리아 포레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230가구 전체가 233㎡ 이상 대형 주택으로만 구성돼 있어 부자들만의 독특한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장 차장은 “타워팰리스나 아이파크도 실제 대형 평형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반면 갤러리아 포레는 펜트하우스급 주택만 230가구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지인 소개로 여럿이 함께 입주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타깃이 다른 만큼 마케팅 방법도 달랐다. 초기에는 명품 보석 브랜드나 고가 수입차 멤버십 모임을 함께 개최했다. 그러다 계약자가 어느 정도 늘면서부터 골프 행사와 소규모 패션쇼 등을 다양하게 열었다.

4월부터 분양을 시작하는 포스코건설의 주상복합 ‘서울숲 더샵’은 한남더힐이나 갤러리아 포레와 비교하면 오히려 분양가가 저렴한 편이다. 가장 비싼 150㎡ 형의 분양가가 15억 원 안팎이다. 하지만 자연친화적 주거 환경과 고품격 서비스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회사는 최근 모델하우스 오픈을 앞두고 실내 인테리어를 또 한 번 업그레이드했다. 강연석 포스코건설 주택문화관 소장은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계속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고가 주택을 사는 고객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바로 차별화”라고 말했다. 다른 곳과 똑같은 인테리어로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14년 완공될 이 건물에는 원패스 카드 시스템이 설치된다. 스마트카드만 소지하고 있으면 주부들이 주차장에서 내려 집에 들어갈 때까지 양손에 든 무거운 장바구니를 전혀 내려놓을 필요가 없다.

주차장에서부터 입주민 확인이 자동으로 돼 출입문을 손으로 열 필요가 없고 엘리베이터도 자동 호출돼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 이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주차장 주차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센터에는 직접 각종 식물을 기를 수 있는 식물농장이 마련된다.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물과 전기로만 재배해 씨앗에서부터 발아·성장 모습까지 직접 지켜볼 수 있다. 강 소장은 “연간 1000포기 정도 식물 재배가 가능하다”며 “도심 속에 나만의 텃밭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급화 흐름은 식품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고급 재료를 쓰고 제조 공법을 차별화한 프리미엄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곡물·설탕 등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식품 물가가 들썩이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늘기는 했지만 웰빙과 건강에 대한 관심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풀무원식품은 기름에 튀기지 않고 생면을 그래도 건조한 프리미엄 라면 ‘자연은 맛있다’에 이어 최근 국산 곡물과 과일을 쓰고 설탕 대신 아가베시럽과 올리고당으로 단맛을 낸 시리얼 ‘뮤즐리’를 선보였다.

대상도 무농약 인증을 받은 국산 밀로 만든 밀가루 ‘친환경 무농약 100% 우리밀’에 이어 전남 영농조합과 100% 계약 재배한 ‘한 알의 약속’을 내놓으며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기농 고급쌀 시장에 진출했다. CJ제일제당은 고춧가루·햅쌀·천일염 등 국산 재료만 8가지를 쓰고 유통 단계부터 냉장 보관하는 ‘8선 고추장’을 내놓았다.
[부자의 지갑을 열어라] ‘비싸도 팔린다’…‘VIP 커뮤니티’ 어필
대형 유통점들도 명품 코너 선보여

이처럼 기업들이 프리미엄 식품을 속속 내놓은 것은 ‘비싸도 팔린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화학조미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자연 조미료 시장은 2008년 151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250억3000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커졌다.

고급화와 거리가 멀 것 같은 대형 유통점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고급 제과를 찾는 고객이 늘자 베이커리 코너에서 웨스틴조선호텔의 베이커리 브랜드 ‘베끼아 에 누보’ 디저트 케이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반 케이크보다 30~40% 비싸지만 큰 인기를 끌었다. 홈플러스는 프라다·샤넬·구찌·페라가모 같은 명품 브랜드를 파는 오르루체 명품관을 입점시켰다. 대형 할인점에서는 값싼 평상복만 살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롯데홈쇼핑에서 인기를 끈 패션 상품을 망라한 ‘롯데홈쇼핑 팝업 스튜디오 250’을 개장했다. 프라다·구찌·페라가모 같은 명품과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 주얼리 브랜드가 포진해 있다. 롯데마트는 친환경 신선식품을 원하는 고객들을 겨냥한 식물 공장 ‘행복가든’을 열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