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설이 자꾸만 흘러나오는 이유는 뭘까. SK의 하이닉스 인수설은 작년에 이어 올 초부터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초에는 청와대와 SK 측이 별도의 모임을 갖고 하이닉스 문제를 논의했다는 루머가 증권가를 중심으로 새어 나왔다.

때마침 하이닉스 주주협의회(채권단)가 공식적으로 매각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인수설이 갑자기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SK 측은 펄쩍 뛴다. 그룹 관계자는 “사실무근으로 검토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SK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 인수설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이닉스 채권단, 매각 방안 논의 시작

SK의 하이닉스 인수설, 왜 자꾸 나오나
우선은 SK 이외에 뚜렷한 인수자 그룹이 없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이닉스는 시가총액이 약 19조 원에 달하는 대형 물건이다. 지분 20%만 인수해도 대략 3조8000억 원이 소요된다.

당장의 인수 금액도 만만치 않지만 장치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하이닉스를 인수한 후 제대로 경영하려면 수조 원대의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비를 쏟아 부어야 한다.

이 정도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국내 그룹은 10대 그룹 안쪽이다. 10대 그룹 중에서도 재계 서열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야 인수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얘기가 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 중에서 하이닉스 인수 의지를 피력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삼성·LG·현대차·포스코 등은 사업이 중복되거나 하이닉스를 인수할만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과 중복되기 때문에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LG그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SK와 함께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지만 올 초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전혀 생각이 없다”고 공식 부인하면서 인수설이 쏙 들어갔다.

더욱이 그룹의 주력인 LG전자가 지난해 스마트폰 등에서 밀리면서 기업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현대건설을 인수한 그룹의 사업다각화 방향도 건설 및 제철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인수설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포스코는 이미 대우인터내셔널을 사들인데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더 관심이 많다. 결국 SK만 남은 셈이다. 내수 중심의 그룹 체질도 SK 인수설이 잇따라 불거지는 또 다른 배경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은 정유와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둘 다 내수산업이자 규제산업이다. 더욱이 최근 사회 이슈화되고 있는 기름값 및 통신비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유와 이동통신 사업은 정부 정책에 따라 경영 환경이 급변할 수 있는 분야로 전형적인 규제산업이다.

게다가 하이닉스는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대한통운 등과 함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이다. 이 중 하이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이미 매각됐거나 인수자들이 나선 상태다. 따라서 올해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어가면 총선 및 대선 국면이 펼쳐지면서 매각 작업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예측이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 나선다면 가장 손쉬운 상대가 대표적인 규제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SK그룹이라는 지적이다. SK그룹의 비전은 해외 신사업 발굴 등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또한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