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저축의 효과

풍족하게 쓰고 남아서 노후까지 문제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소득을 거두는 사람이라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정도의 충분한 수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런데 앞으로 기대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은퇴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은퇴 후 삶의 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세 붕괴…자산 양극화 앞당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공동 조사한 ‘2010년 가계 금융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연평균 가처분소득은 2912만 원이다. 그런데 60세 이상 고령층의 수입은 1681만 원으로, 전체 가구의 58% 수준에 불과하다. 한 달에 14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은퇴 후 급격하게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그만큼 저축이나 투자를 많이 해 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소득은 일정한데 저축을 늘린다는 의미는 그만큼 당장의 소비를 줄여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저축을 하지 못하거나 그 시늉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금 당장 쓸 돈도 없는데 저축은 어떻게 하나”라는 이유로 자기 합리화한다.

그런데 상황을 바꿔 누군가가 강제로 저축하게 만든다면 어떨까.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저축을 하게 된다면 그 당시는 다소 고통이 따르겠지만 노후의 삶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앞서 인용한 2010년 가계 금융 조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수도권 거주자와 비수도권 거주자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경상소득에서 비소비 지출을 제외한 가처분소득을 비교해 보면 수도권 거주 가구는 연간 3155만 원의 가처분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는 반면 지방 거주자는 2699만 원으로 수도권의 86%밖에 안 된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의 직장이 수도권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지방 거주자보다 수도권 거주자의 소득이 높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자산이다. 수도권 거주자의 평균 자산 규모는 3억6247만 원으로 11.5년어치의 가처분소득을 모았지만 지방 거주자는 1억9409만 원에 그쳐 7.2년 정도의 가처분소득밖에 모아 놓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자산의 대부분(76%)을 차지하는 부동산에 그 원인이 있다. 과거 수도권 부동산의 상승률이 지방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이것이 누적돼 현재의 자산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수도권 거주자가 가처분소득 많아

하지만 이런 측면 외에도 원인이 있다. 바로 강제 저축 효과다.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나 기타 실물 자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수도권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7236만 원에 달한다.

이에 비해 지방 거주 가구는 4596만 원에 그쳐 수도권 가구의 64%에 불과하다. 전체 자산 규모가 부동산 투자 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금융자산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라고 모두 재테크의 귀재만 모여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강제 저축 효과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가처분소득에서 14%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저축률이 같다고 가정하면 금융자산도 14% 정도만 지방 거주자가 적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차이가 36%에 달한다는 것은 소득의 차이에 따른 14%를 제외한 나머지 22% 정도가 저축률의 차이, 다시 말해 강제 저축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수도권은 그동안 높은 상승률을 보인 부동산을 일부 처분해 금융자산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도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도권은 78%인데 비해 지방은 73%에 그친 것을 감안할 때 부동산을 처분해 금융자산이 일시적으로 많아져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수도권 거주자가 이러한 강제 저축을 해야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가 그 원인이다. 수도권 거주자의 금융자산 7236만 원 중에서 순수 금융자산은 4366만 원이고 나머지 2870만 원은 전월세 보증금이다.

이에 비해 지방 거주자의 순수 금융자산은 3847만 원이고 전월세 보증금은 749만 원에 불과하다. 순수 금융자산만 비교해 보면 지방 거주자가 수도권 거주자의 8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 차이가 12%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가처분소득 차이 14%보다 낮은 수치다. 결국 범인은 전월세 보증금인 것이다. 전월세 보증금은 임대 기간이 끝나면 원금 손실 없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자산으로 분류되는 것이 맞다.

한마디로 수도권 거주자는 계속 인상되는 전월세 보증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맞춰주다 보니 어느덧 자산이 모이게 된 것이고 지방 거주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주거비를 지불하다 보니 힘들여 저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4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지난 7년간 수도권 전세 상승률은 29.7%에 달한 반면 지방 소재 5대 광역시는 20.7%, 기타 지방은 21.0%에 그쳐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세금 인상액만큼을 더 저축했어야 한 것이다.

임대 보증금 올려주다 보니 저축하게 돼

이론적으로 보면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방에 거주하면 그 차액으로 저축을 하든지 다른 곳에 투자해 자산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이와 반대다.

저축을 하지 않으면 몇 년 후 기존에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나는(?) 수도권 거주자는 이를 악물고 저축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살다 보면 어느덧 상당한 금융자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지방 거주자는 주거 문제에 대한 당장의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지만 저축에 대한 간절한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느껴지기 때문에, 이것이 누적돼 나중에는 금융자산 자체가 많이 모아지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 등 일부 도시는 수도권 소재 도시보다 소비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은 수도권보다 낮지만 주거비를 제외한 다른 물가 수준은 수도권보다 낮지 않은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까. 집을 소유하지 않은 무주택자라도 수도권 거주자의 금융자산이 많은 것은 2년마다 인상되는 전세금을 쫓아가기 위해 강제 저축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앞으로 전세 제도가 사라지거나 그 비중이 점점 축소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세금을 올려주는 것은 (이자는 붙지 않지만) 일종의 저축을 하는 행위다. 하지만 월세는 내면 없어지는 돈이다. 매월 일정액을 월세로 지불하는 만큼 자산이 불어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런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제 저축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달 그달 살아가는 가구가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강제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의 지방 소재 가구들처럼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차액은 월세의 형태로 누군가에게 지불되는 것이다.

결국 전체 임대 시장에서 월세의 비중이 점점 늘어간다면 향후 자산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과거에는 주택의 유무에 따라 자산 양극화가 진행됐다. 집값 상승률이 소득 상승률보다 높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이에 비해 앞으로는 임차료를 내는가 아니면 임대료를 받는가에 따라 소득의 양극화가 먼저 진행될 것이고, 이것이 추세로 고착된 이후에는 자산 양극화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무주택자냐 다주택자냐에 따라 소득과 자산이 점점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고, 그 중심에는 전세 제도의 붕괴가 있다. 현재의 전세 제도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주택 서민에게는 가장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을 통해 전세 제도가 가능한 한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정책적 역량을 모을 때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세 붕괴…자산 양극화 앞당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의 운영자, 부동산 칼럼니스트. 객관적인 사고, 통계적 근거에 의한 과학적 분석으로 부동산 투자 이론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