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명재
론칭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 패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술렁이게 한 남성복 브랜드가 있다. 론칭과 동시에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했을 뿐만 아니라 본격 론칭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보 에이전시인 ‘토템’으로부터 컬렉션 제의를 받을 만큼 세계시장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한 브랜드 ‘세븐오(7TH/0)’다.이곳의 옷은 같은 디자인이라도 저마다 한 벌, 한 벌이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똑같은 옷걸이에 걸려 있는, 똑같은 디자인의 구김 셔츠라고 하더라도 한 벌 한 벌이 제각각 다른 디자인인 양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흡사 한 벌의 기성복이 아니라 하나의 미술 작품을 보는 듯도 하다. 하지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븐오의 옷들은 보고, 입고, 느끼는 데까지 그 감정을 확산시킨다.
“세븐오는 삶과 감정과 옷이 전혀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입는 사람이 어떤 머리색과 어떤 피부색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심리 상태인지에 따라 옷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비친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단순한 유행이나 형태를 추구하기보다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 사람과 연결하는 편안한 옷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화제의 브랜드 ‘세븐오’ 디렉팅 담당
의상은 물론 전체 인테리어와 작은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세븐오’의 전체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담당하고 있는 박명재 씨는 원래 주얼리 디자이너로 그 명성이 높은 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주얼리 디자인을 강의했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맞춤형 주얼리를 선보이는 주얼리 디자이너로도 유명세를 탔다. 물론 현재도 파인주얼리 회사인 베켓(BECKET)의 디자이너 겸 대표이기도 하다.
한 점, 한 점에 고객의 취향과 개성까지 담아낸 주얼리 디자인을 비롯해 그녀가 직접 꾸미고 다듬은 베켓의 갤러리형 인테리어, 유려한 선과 공간감이 돋보이는 가구와 소품들은 그 각각이 전부 그녀가 얼마나 남다른 예술적 감성을 지닌 디자이너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주얼리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체 디자인 영역에서 남다른 관심과 특별한 감성을 선보여 온 그녀가 남성복 브랜드인 ‘세븐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맡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2년여 전에 지인을 통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특별히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옷으로 확장시키는 데 관심이 생겼던 만큼 큰 걱정이나 특별한 각오 없이 선뜻 ‘세븐오’에 합류할 수 있었다.
“세븐오는 하루를 공간 제로(0)로 보고, 1주일을 공간 7개, 즉 일곱 개의 제로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이 제로(0)의 공간은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며, 또 ‘함께’ 존재하는 삶의 과정이죠.” ‘세븐오’의 이름이 담고 있는 뜻처럼, 세븐오에는 그녀 이외에도 저마다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온 디자이너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이현식 디자이너는 영국의 센트럴세인트마틴스에서 남성복을 전공하고 런던의 알렉산더 매퀸 남성복 디자이너와 프랑스 파리 메종 마르틴마르지엘라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이로 남다른 기획력과 콘셉트가 돋보이는 디자이너다.
영국에서 그래픽·인테리어·패킹 등의 모든 디자인을 아우르는 ‘런던 디자인 컴패니(The London design company)’와 런던패션위크에 진출한 패션 회사인 ‘어너더세븐스데이(another7thday)’ 등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석희 이사도 세븐오의 주축 멤버 중 한 사람이다.
“그 외에도 패키징·홈페이지·룩북·광고 등 저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인재들이 ‘세븐오’를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죠.” 2010년은 그들과 함께 세븐오를 준비하기 위한 열정으로 가득 찬 한 해였다.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이 주는 두근거림은, 뜻이 맞는 이들과의 공동 작업은 피로를 잊게 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격 안에서 높은 퀄리티와 새로운 생각을 가진 브랜드가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였죠. 최고의 옷에 대한 인식이 같다 보니 함께해서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욱이 각자 남다른 재능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집단을 한데로 뭉치는 데는 그녀의 역할이 컸다. 기존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디테일을 다른 시각으로 제안하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한 덕분이다.
“그동안 주얼리 디자인을 비롯해 가구·패브릭·소품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작업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해 왔어요. 굳이 어느 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더 자유로운 발상과 시도가 가능한 점을 높이 평가해 준 것 같아요.”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통해 체득한 구조와 원단과 색에 대한 남다른 감성들은 ‘세븐오’의 작업들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세븐오에는 기본 형태의 옷이 더 많아요. 디자인이 많이 들어간 옷을 10% 미만으로 제한하고 평범한 티셔츠나 재킷·니트·셔츠 등을 만들죠. 그래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옷인데요, 바늘땀 수를 바꾼다든가, 접합면의 입체를 살리거나 혹은 질감의 대비 같은 잘 보이지 않는 디테일들을 적용해 비슷해 보여도 결코 비슷하지 않은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죠.”
그래서 세븐오의 의상들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성향의 이들에게 최선의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2011년 SS 시즌의 콘셉트인 ‘구겨짐’에서는 이런 세븐오의 개성들이 확연히 나타난다.
종이로 정교한 재킷을 만들어 디스플레이하고 구겨진 재킷과 셔츠 등으로 입체가 살아 있는 옷들을 선보인 것이다. 또 의상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감성들은 패키징 하나, 작은 소품까지에도 연결된다.
일례로 세븐오에서 제품을 구매하면 연필 한 자루가 함께 동봉되는데, 이 연필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옷과 연결해 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도구 중의 하나로서 세븐오가 지향하고 있는 패션에 대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소품인 셈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옷 만들고 싶어”
세븐오의 제품들은 원단의 품질이나 디테일, 담고 있는 감성까지 이른바 명품이라고 불리는 해외 고급 브랜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만들고 있는 이들의 자부심이 남다른 것도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븐오의 제품들은 그리 과하지 않은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된다. 이는 세븐오가 품고 있는 ‘좋은 옷’에 대한 이상과 무관하지 않다.
“좋은 옷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퀄리티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되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해 대중이 원하고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의 감정과 맞닿아 있는 옷을 계속 선보이고 싶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로, 또 세븐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남다른 디자인 열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많다. “개인적으로는 패브릭이나 가구 등을 좀 더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하지만 우선은 좀 더 많은 분께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세븐오에 열정을 쏟을 예정입니다.”
약력 : 1959년 서울 출생. 미국 인디아나대 미술대학원(주얼리 디자인 전공) 졸업. 현대장신구전. sofa전(미국). taboo전(미국) 수상.
1997~2001년 대학 강의. CMAC 어린이박물관 미술교육센터 대표 역임. 2007년 쥬얼리 베켓(jewelryBECKET) 오픈. 쥬얼리 베켓 대표(현). 세븐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현).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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