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헤지 펀드인 자브르캐피털파트너스는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직후 도쿄 증시에 투자했다가 3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3월 23일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도쿄 증시가 곧 반등할 것을 기대하고 주식을 대거 사들였지만 예상하지 못한 원전 사태로 회복이 지지부진하자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처분한 것이다.
이 헤지 펀드는 지진 직전까지만 해도 일본 증시의 약세에 대비해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이 나도록 선물을 매도해 놓고 있었다. 일본 주식 현물에 투자한 펀드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3월 11일 대지진이 발생하고 초대형 쓰나미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펀드 운용팀은 고심 끝에 기존의 전략을 완전히 뒤집었다. 지진 충격으로 주가가 일시적으로 급락했지만 곧 일본 경제의 탄탄한 펀더멘털이 부각되며 반등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자브르캐피털파트너스 경영진은 헤지 거래를 모두 풀고 기존 일본 투자분을 전액 매수로 돌렸다.
하지만 원전 폭발이라는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나면서 펀드 운용에 차질이 생겼다. 잇따른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로 공포심이 퍼지자 닛케이 평균 주가는 반등하기는커녕 3월 15일 10.55% 급락하는 등 지진 발생 1주일 새 10.21% 추락했다. 일부 펀드의 1개월 손실률이 10%에 달하자 펀드 운용팀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일본 투자분을 전량 처분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일본에서 눈물을 흘린 헤지 펀드는 자브르캐피털파트너스뿐만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퀀트 펀드들이 일본 대지진으로 타격을 받았다. 퀀트 펀드는 계량적 수학 모델을 이용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매매하는 펀드다.
원전 폭발, 또 다른 투자 복병
세계 2위의 헤지 펀드인 맨그룹이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퀀트 펀드 AHL도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다. 자산 규모가 무려 220억 달러에 이르는 이 펀드는 100여 명의 애널리스트들이 고안한 복잡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주가와 엔화 가치의 흐름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바꾸도록 되어 있다.
이 펀드는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16%의 수익을 내 헤지 펀드 업계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AHL은 일본 지진으로 2주 만에 4%의 손실을 냈고 맨그룹은 모두 20억 달러를 잃었다.
일본 시장에 대부분의 자산을 투자하는 펀드들은 그 손실 폭이 더 크다. 런던에 있는 마라톤재팬버텍스펀드는 손실률이 13%, 아쿠스재팬펀드는 9%나 됐다. 대부분의 퀀트 펀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선물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 그
러나 재량권을 가진 펀드매니저들이 대형 사고를 매도보다 매수 기회로 활용하려다 오히려 큰 손실을 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헤지 펀드 CAI의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진으로 일본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식 가치가 많이 싸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방사능 누출 사태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 그리고 일본 정부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도쿄 증시에서 닛케이지수는 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에는 1.72% 떨어지는데 그쳤지만 이후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12일 6.1%, 13일 10.55%나 폭락했다. 이후 재난 복구 과정에서 경기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로 반등했지만 핵 문제로 다시 고꾸라지는 등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태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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