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호 엔프라니 사장

화장품 브랜드 엔프라니의 나종호 사장은 마케팅에 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경험 많은 백전노장 마케터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CJ제일제당의 마케팅팀을 거쳐 보령메디앙스 마케팅본부장, 한경희생활과학 부사장 등을 지냈다.

Q&A마케팅·한국마케팅지식원 등 국내 유명 컨설팅 업체의 대표도 역임했다. 숙명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장안대 경영학과 등의 겸임교수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바쁜 와중에도 ‘삼성을 이기는 강소기업’, ‘밀리언셀링 마인드’ 등 6권의 책을 출간했다.

나 사장은 올해 초 화장품 전문 업체 엔프라니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10여 년 만에 친정에 돌아온 셈이다. 엔프라니는 나 사장이 CJ제일제당에 근무할 때 직접 론칭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노련한 마케터 나 사장은 성공하는 마케팅을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첫 번째가 ‘고객 중심’의 사고다.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고 실행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마케터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그가 초보 마케터도 알만한 내용을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실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1993년께로 그는 기억했다. CJ제일제당에서 화장품 브랜드 ‘식물나라’를 론칭하기 전에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조사에서 화장품에 대한 불만을 물었더니 대다수의 응답자가 “너무 비싸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런 불만을 해결해 주면 시장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당시 스킨로션 가격이 1만~1만5000원이었다”라며 “식물나라를 4000~5000원에 팔았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식물나라로 첫해 매출액 400억 원을 올리며 성공의 기쁨을 맛봤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미샤·더페이스샵 등이 속속 시장에 안착하면서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전성시대가 열렸다.
[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기존 룰과 상식 깨면 대박 상품 보인다”
“기본 지키고 고정관념 깨야”

CJ제일제당의 베스트셀러 ‘햇반’도 같은 이치다. 출시 전에 맛벌이 부부와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즉석밥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 대다수 응답자가 구매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는 “히트 상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라고 거듭 말했다.

둘째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창조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조는 최근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다. 아이폰·아이패드의 애플과 구글·페이스북 등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로 급성장한 기업들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창조 경영은 시대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그는 “창조는 상식을 깨는 일”이라며 “기존 룰과 상식을 깨면 대박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탁 세제 ‘비트’를 예로 들었다. 비트 출시 당시 사회 분위기가 환경을 중시하는 쪽으로 돌아갔다.

낙동강 페놀 사건 등 잇따른 환경오염 사건으로 환경문제에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던 때였다. 더욱이 기존 세제는 제품 사이즈가 크고 세탁에 사용하는 세제 양도 많았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불편했다.

‘그렇다면 환경에 해로운 세제를 적게 쓰면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세탁 세제를 만들 수 없을까’하는 생각으로 개발을 시작한 것이 바로 비트였다. 그렇게 나온 비트는 ‘적게 쓰지만 때가 잘 빠진다’는 슬로건으로 소비자 공략에 성공했다.

이 밖에 역발상으로 고정관념을 깬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액체 위장약 ‘겔포스’는 위장약은 알약이라는 상식을 깼고 광동제약의 ‘비타500’ 역시 비타민은 알약이라는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중소기업은 제휴·협업에 강해야”

셋째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략의 일관성이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A 맥주회사가 TV 광고에서는 깨끗함을 내세우는데 매장 여사원은 고객에게 부드러운 맥주라고 홍보하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는 “마케팅은 제품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라며 “제품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어떻게 각인시킬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제품의 콘셉트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시장 흐름과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리뉴얼이 이뤄져야 하지만 광고를 할 때마다 주장하는 콘셉트가 바뀌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히트작이었던 식물나라도 일관성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식물나라는 제품 출시 이후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날 화장품 무대에서 사라졌다. “식물나라가 잘나가다 보니 욕심을 부렸어요. 전국 1만3000여 개 슈퍼마켓에 제품을 진열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곳에 제품이 있다 보니 관리가 전혀 안됐어요. 슈퍼마켓마다 제품에 먼지가 뽀얗게 쌓였습니다. ‘깨끗함’을 앞세운 식물나라가 실제 매장에서 지저분하게 진열돼 있으니 힘들 수밖에요.”

넷째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따라가지 말고 자기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역량을 더 강하게 하고 부족한 것은 전략적 제휴나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는 한경희생활과학에서 살균 세정기 제품을 출시한 적이 있는데, 때마침 구제역이 터진 시점이어서 히트 상품이 됐다.

당시 제품 기술은 가산디지털단지의 벤처기업과 제휴해 해결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은 힘든 것은 아웃소싱이나 제휴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국 유통망을 갖추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편의점·우체국·농협 등 기존 유통망을 적극 활용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엔프라니는 연매출액 800억 원 정도의 중소기업이다. 엔프라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고객을 대상으로 색조 전문 브랜드숍 ‘홀리카홀리카’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 사장은 “중소기업은 제휴와 협업에 강해야 한다”라는 지론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여자대학 생활관 입점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사장의 비전은 ‘3355’다. 3년 뒤 업계 3위에 오르고, 5년 뒤 매출 5000억 원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엔프라니의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좋기 때문에 부족한 점만 개선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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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후배들을 위한 tip

“성과로 먼저 보여줘야 신뢰 얻어”

“전문성을 키워라.” 나종호 엔프라니 사장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팔방미인은 필요없다”라며 “실무는 물론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나 사장은 “현실과 이론은 다르지만 그래도 이론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해야 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에서의 실무 경력은 커다란 자산”이라며 “본인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책까지 저술한다면 본인의 경쟁력을 배가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라”는 것도 그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그는 “마케팅은 한마디로 인간관계”라며 “고객과의 관계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고객과의 관계에서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편에서 생각하고 베풀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마케팅 실무를 하면서 전략을 수립하거나 신제품을 개발할 때도 그 전략 속에는 고객의 편익이 녹아들어 가야 그 전략이 성공할 수 있고 신제품의 콘셉트도 고객이 필요로 하는 편익이 강하게 느껴져야 히트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감성적 리더십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론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라며 “이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해 주는 감성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감성적 리더십은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것으로 ‘자기야, 나 사랑해?’라고 묻는 것은 마케팅 마인드가 아니라고 했다. 마케팅도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컬러 마케팅, 청각 마케팅, 음악 마케팅 등과 같은 감성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도움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성과가 있어야 남을 설득할 수 있다”라고 못 박았다. 말보다는 먼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고 그것을 매출·수익과 같은 숫자로 보여줘야 진정한 마케터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약력 : 1957년생. 위덕대 경영학 박사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마케팅 과장과 CJ제일제당 마케팅 팀장 등 실무자로 18년간 일했다. 보령메디앙스 영업마케팅 본부장(전무), 한경희생활과학 부사장 등을 맡아 경영에 참여했다. 이 밖에 KMKI한국마케팅지식원 및 Q&A마케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올 초 엔프라니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