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양양국제공항

‘양양국제공항’의 이정표를 따라 운전대를 틀자 시원하게 뚫린 왕복 4차로 도로가 나온다. 비행 시각을 맞추기 위해 분주히 오가는 차량을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을까. 중앙선을 넘나들어도 전혀 위험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차량을 찾기 어렵다. 498대가 동시 주차할 수 있다는 주차장은 차라리 넓은 운동장이나 광장에 가까워 보였다.
[추락하는 지방공항의 진실] 하루 이용객 14명… 공항 직원은 30명
그나마 햇볕이 환한 외부는 좀 나은 편. 빈 공간을 찾아 헤맬 수고로움 없이 차를 대고 청사로 들어가면 공항이 갖는 이미지와 정반대의 ‘썰렁함’에 스산한 기분마저 감돈다. 최소한의 조명만 켜 놓은 1층 로비는 물론이고 2층 탑승장에서조차 인기척을 찾기 어렵다. 티켓을 끊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기다리는 풍경은 적어도 양양공항에서는 찾기 어렵다.

공항 안의 부대시설도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매점에도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다. 대신 ‘모금함’ 비슷한 하얀 상자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 후 돈을 넣어 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자율 판매대’가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외부인이기 때문일까. 어쩌다 지나치는 공항공사 직원들이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하는 김해행 운항 시간이 다가오자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아진다. 현재 양양공항의 유일한 정기 노선은 (주)이스트아시아에어라인이 하루 1회 운항하는 양양~김해 노선이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하고 19명이 탈 수 있는 소형 항공기다.

그나마 19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평균 60% 정도 탑승률에 그치고 있다. 양양공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명에 그치고 있다(2월 현재). 공항 상시 근무자가 30명 정도니 직원 수가 승객 수보다 많은 실정이다.

탑승객들이 빠져나간 양양공항은 또다시 적막에 휩싸이고 만다. 영동 지방의 유일한 국제공항이라는 명성과 텅 비어 어두컴컴한 청사의 풍경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하루 한 번 19인승 소형기 운항이 전부

[추락하는 지방공항의 진실] 하루 이용객 14명… 공항 직원은 30명
강원도 양양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 휴양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낙산사와 해수욕장 등으로 유명한 동해바다를 앞에 두고 있고 뒤로는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설악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답게 해마다 피서철이 되면 7번 국도를 따라 늘어선 차들로 주차장을 이룰 만큼 인기 있는 관광지가 바로 양양이다. 인근의 속초까지 아우르면 관광으로 먹고사는 전형적인 관광·휴양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해 떠오르는 고장(襄陽)’이라는 지역 이름답게 양양에는 영동권 유일의 국제공항이 들어서 있다. 지난 2002년 4월에 문을 연 양양국제공항이다. 양양공항은 시설과 입지 여건이 열악했던 속초공항과 착륙대 시설이 부족해 안전기준에 미달됐던 강릉공항의 대체 공항으로 건설됐다.

설악산과 금강산, 양양 해수욕장과 인근의 속초와 강릉까지 아우르는 관광 벨트는 새로운 공항 건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불러일으켰고 대체 공항 건설은 지역의 숙원 사업이 되었다.

정권이 들어서면 지역의 숙원 사업 해결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민심을 다지는 차원에서 그만한 좋은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항 건설이다. 하지만 경제성이나 사업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의도는 개항 후 사업 부실과 만성 적자로 이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김대중 정부 때 들어섰던 울진공항이 좋은 예다. 2003년 문을 연 울진공항은 개항 후에도 취항하는 항공사가 없어 제대로 문을 열지도 못했고, 지금은 민간 조종사를 양성하는 훈련 비행장으로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영남권 신공항 계획이 노무현 정부 때 수립된 것도 비슷한 사례다. 양양공항 역시 김영삼 문민정권 중반기에 개항 후보지로 최종 확정됐다.

양양공항 건설은 이미 1986년 타당성 조사로부터 시작됐다. 1995년에 개항 후보지로 확정된 후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기본 설계에 착수했고 1997년 착공에 들어가 2001년 준공식을 가졌다. 2002년 드디어 첫 비행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양양공항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다른 지방 공항들과 달리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한 관광 수요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양공항 개항 이전까지 주로 이용됐던 속초공항은 주말이면 비행기를 이용하려는 여객들도 늘 북적이곤 했다.

지역 특성상 휴가를 즐기는 군인들의 이용이 눈에 띄게 많았다. ‘군경 할인’ 혜택으로 항공 운임과 자동차(고속버스) 운임이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불구불한 미시령·대관령 길을 몇 시간씩 멀미가 나도록 달리느니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김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양양·속초·고성·간성 등에 근무하던 군인들은 공항공사나 항공사에도 최고의 고객이었다. 여름 한철 반짝하는 관광객들보다 1년 내내 꾸준히 비행기를 타는 고정 고객이 바로 군인들이었다. 국제선 사정도 개장 초기에는 괜찮았다.

2002년 운항된 국제선 노선은 연간 78편이었고 2003년에는 129편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2004년에는 43편으로 확 줄었고 2007년 18편에 그친 후 2009년에는 아예 한 편도 운행되지 않았다.

도로망 발달로 항공 수요 급감

국내선도 취항이 아닌 ‘운항 중지’ 사례가 훨씬 많다. 개항 후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11월 아시아나항공이 양양~김포 노선을 중단했고 2004년에는 대한항공도 같은 노선의 운항 중지 결정을 내렸다. 양양~제주 노선도 2006년에 취항했다가 이듬해 바로 접었다.

노선이 없어진 이유는 명확하다. 승객이 없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공항공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라도 공항을 유지해야 하지만 민간 항공사로선 손님이 없는 비행기를 띄울 이유가 전혀 없다.

속초공항 시절만 해도 북적이던 공항이 지금처럼 한산해진 주 배경에는 도로 교통망의 발전이 있다. 막히지 않아도 4~5시간씩 걸리던 서울행 고속버스 대신 1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비행기는 매력적인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미시령터널이 뚫리면서 예전과 같은 ‘구불구불 길’은 사라졌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해 속초에 닿는 버스에는 ‘2시간대 도착’이라는 홍보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 있을 정도다.

경기 침체도 비행 여객 수요 급감 요인 중 하나다.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지면 자연히 놀고먹는 것부터 줄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여름 휴가철은 그렇다 쳐도 1년 내내 꾸준한 수요를 보이던 관광객 수요는 이제 보기 어렵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다.

지방 공항 부실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이 되었지만 양양공항의 가능성과 회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다. 당장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 이용객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러시아·중국·일본은 물론 겨울 풍경을 보기 힘든 동남아(태국·필리핀 등) 등까지 사업 대상을 넓혀 장기적인 국제선 수요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3월 말에는 면세점 공개 입찰을 통해 현대아산이 최종 사업자로 확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운항됐던 134편의 중국행 국제선 이용객들의 면세점 설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양양공항공사는 상하이와 옌지 등을 추가해 올해 230편 정도로 국제선을 증편할 계획이다.

지방 공항의 사회간접자본(SOC) 역할 역시 간과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다. 실제로 민간 여객을 제외한 양양공항의 이용 현황은 2009년 기준으로 1048회에 이른다. 훈련·교육·작전·소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항 이용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공항공사 양양지사 임영희 운영·시설팀장은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공항의 SOC 개념을 봐야 한다”며 “물론 적자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으로서 안타까운 게 사실이고 수익성 확보 대책 수립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