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주역 안병국 락앤락 중국본부장 스토리

3월 18일 오전 락앤락 상하이 법인 빌딩에서 안병국 락앤락 중국본부장을 기다렸다. 오전 10시쯤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11시 30분 종종걸음으로 안 본부장이 나타났다. 전날 광저우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그는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출장으로 보낸다고 했다. 언젠가는 보름간을 사무실에서 자고 먹고 하면서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난 정말 행복해요.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어요”를 자꾸만 되뇌며 활짝 웃었다.

락앤락의 중국 사업을 이야기하면서 안 본부장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김준일 락앤락 회장이 전력을 다해 키운 중국 시장이지만 안 본부장의 열정과 지략이 큰 보탬이 됐다는 것이 락앤락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안 본부장은 2007년 락앤락에 입사해 선전 법인장을 맡았고 6개월 만인 2008년 초 중국 영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다시 1년 만에 상무로 승진하며 상하이 법인장으로 발령 났고 올 초 전무로 승진하며 중국의 영업과 생산 법인까지 총괄하는 본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그가 맡은 법인의 실적은 수직 상승했다. 선전 법인장 시절에는 300% 성장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다. 올해도 그가 책임지고 있는 중국본부의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60% 늘려 잡았다. 권투로 치면 전 라운드 내내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스타일이다.

선전 법인장 시절 연매출 300% 성장
[Special ReportⅢ] '락앤락의 메시'…'원칙 준수' 통하다
안 본부장과 락앤락의 인연은 지인의 소개로 김 회장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삼성SDI 중국 주재원으로 일했던 안 본부장은 개인 사업을 하던 중이었다. 휴대전화 부품 관련 제조업을 하다가 실패한 후 무역업으로 전환해 조금씩 성공의 기쁨을 맛보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그에게 영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삼성SDI 시절 주로 생산 관리와 자원 관리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에 영업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입사한 지 석 달 만에 선전 법인장을 맡았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 하이난 지역에서 락앤락 브랜드를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아주 잘됐다’라고 생각했다. “제품과 브랜드가 주는 느낌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잘만 하면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되돌아봤다.

선전 직영점을 내면서는 매장이 안정될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일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렇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워낙 약했던 탓에 “락앤락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알릴까”가 최대 관건이었다.

그는 대대적인 광고를 계획하고 지역 방송국에서 부사장을 지낸 사람을 고문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리고 법인 자본금의 70%를 방송 광고에 쏟아 부었다. 서서히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자 공격적으로 영업망을 뚫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목표 매출액 150억 원(전년도 매출 50억 원)을 넘어 180억 원을 달성했다.

안 본부장은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했지만 원칙은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경영 철학 중 하나가 ‘원칙 준수 편법 반대’다. 한번은 중국 세관에서 세금을 탈루했다며 소송이 들어왔다. 거의 대다수 외자 기업들은 이런 소송에 시달린 경험을 갖고 있고 대형 로펌을 통해 대응했다.

하지만 안 본부장은 별도의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직접 대응에 나섰다. 몇 달간 밤을 새워가며 만든 자료로 중국 세관을 설득했고 결국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는 “소송이 끝나고 세관원들마저 열렬한 (락앤락의) 고객이 됐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 성마다 소비자들의 특성과 요구 사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 본부장의 전략은 ‘국지전’이었다. 중소기업은 전면전을 벌일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산발적으로 타깃을 정해 정밀 타격을 가해야 승산이 높다”라고 말했다. 가령 중국 대도시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90%가 넘는 밀폐 용기 제품은 전면전이 가능하지만 주방 용품과 리빙 용품 등은 좁은 타깃을 집중 공략해 성공 경험을 만들어 내고 이를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TV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략도 2선, 3선 도시에서 바람을 일으켜 대도시로 진격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대도시에는 유럽의 명품이 다 들어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은 곳에서의 성공을 큰 지역으로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안 본부장은 소통의 달인이다. 내부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만나는 직원마다 어깨를 두드려 주고 농담을 건넸다. 직원들도 스스럼없이 그를 대했다. 그는 ‘내부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고객을 설득할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외부와의 소통도 과감하다. 중소기업이지만 매년 대규모 기자간담회와 애널리스트 로드쇼 등을 최고급 호텔에서 개최하고 있다. 지역 대학의 환경 동아리를 초청해 공장을 견학시키고 중국 전 지역에서 발생한 하루 매출을 모두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는 ‘희망공정’ 행사 등 지역 소비자와의 소통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중국 소비자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육상에서 단거리 선수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멀리 달리지는 못한다. 기업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성장을 꾀하다 보면 조직 내부의 피로감이 쌓이고 조직 운영도 방만해질 수 있다. 안 본부장에게 지나치게 고속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과거는 전부 제로”라며 “지나간 실적에 안주하면 후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향하는 모델은 포록터앤드갬블(P&G)이다. “P&G 모델로 가기 위해서는 기회가 왔을 때 달려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그리고 셋째는 뒷심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입니다.’ 안 본부장 집무실 책상에 있는 ‘초심’이라는 글의 일부분이다. 그는 “지나온 성취에 도취되지 않고 초심을 끝까지 지킨다면 지난 성공을 오늘과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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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피라미 잡다 큰 물고기를 놓친다”

중국에 진출한 수많은 기업 중에 한밤중에 보따리를 싸는 곳이 적지 않다. 대기업들도 중국에서 동남아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중국에서의 사업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안병국 락앤락 중국 본부장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로 ‘소탐대실’을 꼽았다. 작은 이익에 너무 집착한다는 의미다. 안 본부장은 “피라미를 잡다 보면 큰 물고기를 놓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지화에 둔감한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숲을 보는 안목과 함께 최고경영자가(CEO)가 직접 뛰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 본부장은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 “서류상의 정보는 소용이 없다”라며 “CEO가 현장에서 두 발로 뛰면서 확인한 정보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현지화와 현장 경영만이 중소기업이 중국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진출을 꾀하는 CEO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뭐든지 본인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정확한 가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셋째, 평가가 정확해야 한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