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외진 아크릴 대표

인간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감성을 갖고 살아간다. 즐겁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우울하거나 지루하거나 냉정하거나 등 다양한 감정이 살아가는 순간마다 표출된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더라도 상황과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의미가 전달될 수도 있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복잡 미묘한 인간의 이런 감성도 하나의 정보로 취급될 수 있을까.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콘텐츠에 담긴 감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온라인에서의 광고와 마케팅, 또는 검색 자체의 진화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스타트업] 정통 엔지니어 출신…'감성 검색'에 도전장
WRG 창업 멤버들의 두 번째 벤처 도전

아크릴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 회사다. 그리고 아직 상업화되지 않은 ‘감성 검색’이라는 분야에 출사표를 던졌다. 무미건조한 키워드 검색이 아닌 글에 녹아 있는 인간의 감정을 정보로 인식하고 그 감정을 추출하는, 쉽지 않은 작업에 도전한 것이다.

일견하기에 전혀 엔지니어처럼 보이지 않는, 하지만 카이스트(KAIST)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통 엔지니어 출신의 박외진 대표를 만났다. 아크릴 얘기를 하려면 우선 WRG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WRG는 박외진 대표의 창업 인생이 시작된 출발점이자 지금의 아크릴을 있게 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1991년 KAIST에 입학한 박 대표는 전산학을 전공으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중이던 2001년 정보통신부 추죄 ‘제3회 전국대학생벤처창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인생 행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창업경연대회 대상에게 상금을 주는 조건은 그 아이템으로 창업해야 한다는 것. 박 대표는 2001년 창업경연대회 멤버들, 로봇동아리 출신들과 함께 WRG를 창업했다. 회사의 주력 사업은 모바일 솔루션이었다.

B2B 사업을 주로 했던 이 회사가 대중적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온라인 게임 개발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WRG가 개발한 크리스탈보더라는 스노보드 게임은 2005년 SK C&C와 퍼블리싱 계약하고 2006년 공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WRG의 게임 사업 도전은 신규 사업 개척 차원이었다. 그리고 박 대표의 게임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WRG의 게임 사업은 실패했다.

2006~2007년은 한국 게임 산업사의 대표적인 암흑기로 불릴만한 시기인데(대작들이 처참하게 실패하고 신작들이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크리스탈보더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 미국의 뉴포트미디어(Newport Media Inc.)가 WRG를 인수하면서 박 대표는 중단했던 학업을 마치기 위해 KAIST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9년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올여름 졸업할 예정이다. 원하던 학업을 마치긴 했지만 창업 본능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박 대표는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 주제인 정보 추출을 기반으로 또다시 창업을 시도했다.

KAIST 출신이 주력이 된 메인 개발팀을 꾸린 것도 이때다. 멤버들이 쟁쟁하다. 박 대표 본인이 정보 추출과 검색 분야의 전문가인데다 검색 기술 개발이 회사의 핵심이어서 엔지니어 위주로 창업 멤버를 구성했다.

KAIST 출신 동갑내기이자 WRG에서 함께 있었던 김종희 이사, KAIST 선배이자 산업공학과 석사 출신의 이세화 이사, 텍사스주립대 전산학과 박사인 염익준 이사가 핵심 멤버다. 염 이사는 KAIST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아크릴은 2009년 5월 한 정보기술(IT) 하드웨어 업체의 사내 연구소로 시작했다. 이 회사가 정보 추출 쪽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에 투자하면서 박 대표가 연구소 소장을 맡아 감성 검색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아크릴이 준비한 감성 검색 기술은 그동안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에서 연구해 온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이란 기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텍스트에 불과하던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들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감정적인 요소들과 결합돼 감성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는데 착안, 텍스트의 이면에 숨어 있는 감성 정보를 끄집어내 보여준다는 것이 감성 검색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박 대표의 설명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정통 엔지니어 출신…'감성 검색'에 도전장
감성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MoM’

즉, 특정 브랜드나 인물 등 모든 요소에 적용해 해당 브랜드와 관련된 사용자들의 감성을 나타내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전자제품에 대한 사용자(소비자)의 감성이 ‘놀라움’ 혹은 ‘기대감’이 많다면 그것이 인터넷상의 많은 기사·콘텐츠·댓글·소셜네트워크 등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감성 컴퓨팅은 그것을 잡아낼 수 있다. 소비자들의 감성이 추출되면 제품 출시 후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며 마케팅과 연계해 나갈 수 있는 ‘브랜드 감성 모니터링’이라는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또 연인과 헤어진 직후 봐야 할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인터넷상에서 해당 감성(헤어짐은 슬픔이라는 감성) 내에 위치하는 정보를 추출해 사용자의 감성에 해당하는 영화를 추천해 줄 수도 있다.

아크릴을 방문한 날 박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개 자료를 갖고 프레젠테이션 했다. 박 대표는 몇 가지 키워드 검색을 통해 감성 검색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정 연예인, 예를 들어 현빈을 검색하자 네티즌들이 그에 대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의 군입대 소식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많았다는 뜻이다.

2년간 개발한 감성 추론 엔진의 이름은 ‘맘(MoM)’이다. 감성의 원천인 어머니를 뜻한다. 주로 단어와 의미 연결, 논리 구조 등을 통해 감성을 추출해 낸다. 추출된 감정을 기쁨·슬픔·즐거움·놀라움·믿음·지루함 등 32개 감성으로 분류한다. 이를 위해 8개월 동안 아크릴은 설문 조사 인터뷰 등 필드 스터디를 통해 감성 리스트를 만들었다.

감성 검색 기능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지만 우선 사용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재미 요소를 많이 도입하겠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감성 검색이 상당히 재미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우선 모바일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앱 버전을 출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마트폰 등에서 간단하게 감성 검색 파트 중 ‘브랜드 감성 모니터링’ 부문만 따로 떼어내 감성 검색 기능의 일부를 맛볼 수 있는 ‘맘뷰라이트(MOMview_lite)’ 앱 버전을 3월 말 출시하고 이달 중 ‘맘뷰’ 웹사이트 구축도 완료할 예정입니다.”

4월에는 ‘맘뷰 영문 버전’도 오픈한다. 박 대표는 “한글 검색엔진이 완성되면 바로 외국어 버전을 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라며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DB)도 풍부하고 해당 언어에 대한 연구도 많이 돼 있기 때문에 영어 버전은 한글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단어 위주의 감성 검색이 가능할 것 같은데, 검색 결과에 대해 논란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박 대표 역시 그런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감성 검색 역시 일종의 시맨틱 검색인데, 이 영역은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잘했네 잘했어”라고 누군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말했을 때 문맥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으면 그것이 정말 잘했다는 것인지 빈정대는 것인지 혼란이 올 수도 있다. 박 대표는 “DB가 좀 더 쌓이고 문맥 분석이 더 충실히 된다면 앞뒤 내용을 통해 정확한 감성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크릴은 5월 중 스마트폰용 메신저 서비스 맘쎄이(MOMsay)도 출시할 계획이다. 기존 메신저와 달리 감성을 표현하는 기능에 중점을 뒀다. 감성 의미 추론을 통해 내가 메시지를 작성해 보내면 이에 맞는 이모티콘 등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면서 감성을 알리게 되는 것이다.

메신저를 통해 자신의 감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혹시 오해의 여지가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감성 메신저의 구체적인 모습은 5월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임원기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