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의 재계와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도 대기업을 비판했다. 윤 장관은 3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해외 석학들과 국제금융기구도 한국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이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의 바탕이 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윤 장관을 비롯한 경제 부처 공무원들의 반응은 대기업에 갖고 있는 섭섭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고환율을 비롯한 정부 정책에 힘입어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면서 물가 안정이나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 등 어느 정도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반면 재계는 정부가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낸 것은 기술 개발과 비용 절감을 통해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을 힘들여 개척한 결과인데 고환율에 힘입은 것이라거나 협력업체를 쥐어짠 결과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억울하다는 얘기다.
한발 더 나아가 재계는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름값 안정을 위해 시장 경쟁을 강화하고 유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정부의 지적에 정유사들은 기름값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세금부터 깎아야 한다며 맞섰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 요구에 대해 이동통신 업계는 이미 요금을 20% 인하했다며 추가적인 인하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해 논란을 일으킨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재계는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연간 사업 목표를 뛰어넘는 수준의 이익을 내면 그중 일부를 협력업체들과 나눠 갖도록 하는 제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 제도에 대해 “경제학에서 그런 말을 배우지 못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재계는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는 초과이익공유제가 자칫 시장원리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윤 장관이 국회에서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제기한 취지는 살려나가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는데 협력업체의 사정은 좋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도 “불균형과 양극화가 심해지면 지속 성장이 어렵다”라며 오죽했으면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하라고 요구하겠는가”라고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 정부가 공정사회를 국정 운영의 기조로 삼는 한 대기업과의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사회가 대기업의 몫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제 성장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제도와 관행이 대기업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점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공정성을 높이자면 그런 제도와 관행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대기업은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정부가 대기업에 못한 게 뭐가 있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한 정부와 재계의 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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