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단 PPL 비즈니스

지난해 1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간접광고가 허용되면서 방송 PPL 산업이 날개를 달았다. 초창기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작된 PPL은 이제 방송 산업의 새로운 수익 구조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광고주는 효과가 확실한 새로운 홍보 툴로 활용할 수 있어 좋고 방송사는 제작비 지원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거기에 부가 수익까지 올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의 본격 가동까지 앞두고 있는 지금 PPL 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Special ReportⅠ] 의상부터 소품까지 ‘다 돈이네’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시작 전 ‘당당하게’ 고지되는 간접광고 안내 자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간접광고가 허용돼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때문이다.

간접광고는 방송 프로그램 속에 제품(또는 서비스)의 브랜드가 노출되는 것으로 ‘법적’ 시행 기간이 짧지만 PPL(Product Placement)의 형태로 오랫동안 확대, 발전해 왔다. PPL은 화면 속에 상품을 배치해 시청자(소비자)들의 무의식 속에 이미지를 심어 자연스럽게 인지시키는 것으로 대표적인 간접광고의 일종이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속 김태희가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리조트 대표로 나오며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서 특정 자동차가 수시로 노출되는 식이다. 최근작 중 PPL의 ‘천국’으로까지 불린 ‘시크릿 가든’은 리조트 외에도 PPL 광고가 줄을 이었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된 현빈의 집과 자동차, 하지원이 입은 아웃도어, 백화점 경품으로 등장한 청소기, 심지어 보건복지부의 금연 캠페인까지 등장했다. 드라마 속 PPL이야 제법 익숙해졌다지만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PPL의 활약이 눈부시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슈퍼스타K 2’. 심사위원 석에 버젓이 놓인 코카콜라를 시작으로 제작사인 CJ의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가 그대로 노출돼 프로그램의 명성에 적지 않은 ‘먹칠’을 했을 정도다.

이 밖에 ‘슈퍼스타K’의 아류인 ‘위대한 탄생’은 메인 스폰서인 자동차회사의 자동차를 수시로 노출하고 있으며 ‘무한도전’, ‘1박2일’, ‘남자의 자격’ 등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특정 상품들이 노출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PPL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그 효과를 입증 받은 데다 간접광고에 대한 법적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PPL 산업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된 셈이다.

지난해 간접광고 매출 60억 원…세 자릿수 증가 예상

처음 PPL이 시작된 것은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1990년대 중반 케이블 채널 등의 등장으로 콘텐츠 수요가 늘어나면서 외주 제작 시스템이 도입됐고 제작사들이 방송사로부터 받는 회당 제작비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협찬’이 동원된 것.

게다가 갈수록 스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PPL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PPL 전문가’로 10년 차 마케팅 PD인 조경제 PD는 “16부작 드라마는 평균 제작비가 35억~45억 원 선”이라며 “최소 10억 원은 PPL로 충당해야 드라마 제작이 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작비 100억 원이 넘어가는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고 제작비 60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슈퍼스타K 2’처럼 예능 프로그램도 점점 그 규모가 확대되면서 PPL 의존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제작 필수 조건’이라고는 하지만 과거에는 PPL을 둘러싸고 제작사와 방송사가 갈등했었다. PPL 수익이 100% 제작사의 몫이기 때문에 방송사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었던 게 사실. 그러나 방송사 수익으로 책정되는 간접광고(단순 제품이 아닌 브랜드까지 노출되는 것)가 허용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방송사도 수익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액션을 취했고 그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유료방송을 포함한 간접광고 매출은 총 60억 원(지상파 39억 원, 유료방송 21억 원)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간접광고 관련 규제를 개선 또는 완화함으로써 간접광고 매출이 세 자릿수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 러닝타임의 5% 이내로 제한하고 자막 표기를 통해 광고를 포함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사전 고지해야 하며 전체 화면의 4분의 1(DMB는 3분의 1)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제약 조건을 완화해 간접광고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
[Special ReportⅠ] 의상부터 소품까지 ‘다 돈이네’
PPL 시장이 넓어진 데는 달라진 광고주들의 시각도 크게 작용했다. 일부 광고주는 오히려 ‘큰돈 드는’ CF보다 PPL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상승과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대기업처럼 CF 물량 공세를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이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조 PD는 “대기업은 PPL과 동시에 프로그램 앞뒤에 CF까지 붙여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CF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어 PPL을 선호한다”라면서 “시청률 1%를 시청자 5만 명으로 보기 때문에 시청률 10%의 프로그램에 PPL 협찬을 한다면 50만 명에게 제품을 노출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CF와 달리 PPL은 제품 ‘완판’ 등 직접적인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데다 요즘에는 해외 판매 등을 통해 프로그램이 외국에서도 방송되기 때문에 광고주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PPL을 통해 톡톡히 효과를 본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전혀 PPL을 하지 않던 럭셔리 브랜드들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드라마 ‘스타일’에 PPL 협찬을 진행한 피아트 그룹의 마세라티 자동차가 그 예. 전 세계적으로 PPL을 해본 적이 없던 마세라티 측은 ‘스타일’을 통한 첫 PPL에서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함께 소비자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자 상당한 만족감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신규 브랜드들도 PPL을 주목한다. 거액의 광고 모델을 섭외하지 않아도 스타를 통한 스타 마케팅까지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PPL 협찬을 한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은 그런 면에서 최대의 수혜자다.

로고와 상품 노출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했고 극중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제품은 바로 ‘완판’되는 등 매출에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몽벨’ 관계자는 “방송 후 브랜드 인지도가 1000% 이상 오른 게 사실”이라며 “어느 정도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모든 PPL이 이러한 효과를 누리는 건 아니다. 첫째로는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인기 프로그램이어야 하고 둘째는 제품을 부각시키는 스토리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이 있어야 한다.

잘되는 프로그램에는 PPL 협찬이 줄을 서고 잘 안 되는 프로그램은 기피하는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기는 건 그런 이유다. 실제로 ‘시크릿 가든’은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PPL을 가장 잘 풀어내는 작가로 손꼽히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란 점에서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몽벨’ 관계자는 “드라마가 5~6회에 이르렀을 때는 PPL 협찬을 하겠다는 제품들이 줄을 섰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그나마 우리는 일찍 계약해 다행이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PPL 협찬 계약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낮아 돈만 들이는 경우도 허다하고 시청률은 높지만 ‘막장’, ‘불륜’ 등 소재의 부적절함 때문에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부익부 빈익빈 심각…콘텐츠 경쟁력만이 살 길

결국 PPL을 통해 얼마만큼의 수익을 창출하느냐는 콘텐츠 경쟁력에 달려 있다. 좋은 작품, 스타 출연진, 거기에 이름 있는 작가와 감독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같은 제품이라도 방송 시간대에 따라, 출연진과 제작진이 누구냐에 따라 ‘단가’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논리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밝힌 PPL 단가 역시 ‘협상가’로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실정이다. 다만 지난해 기준으로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는 최고 가격이 회당 3000만 원으로 진행됐다.

한편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PPL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운 요즘, 정작 관계자들은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대표적인 PPL 대행사 인터오리진의 김형석 팀장은 “종편채널이나 보도채널이 지상파의 벽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채널이 다각화되면 지상파에서 안 되는 의약품이나 주류 등 기존에 닫혀 있던 제품의 PPL 시장이 새로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PD 역시 “광고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광고주들의 눈도 그만큼 높아졌다”라며 “지상파냐 종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콘텐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통위 관계자는 간접광고 시장 확대에 대해 “종편채널 이슈가 아닌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비대칭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규제 완화 이슈가 더 클 것”이라며 “지난해 유료방송 간접광고 매출 21억 원의 대부분을 차지한 ‘슈퍼스타K 2’는 채널을 떠나 콘텐츠 경쟁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간접광고를 유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PPL을 통한 홍보가 점점 늘어나면서 “방송을 보는 건지 광고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문제 장면으로 떠오른 드라마 ‘욕망의 불꽃’ 속 태블릿 PC 설명 신 등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아닌 ‘대놓고’ 광고하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인터오리진의 김형석 팀장은 “현 방송 제작 여건상 PPL은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이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PPL은…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Product Placement)의 준말로 화면 속에 상품을 배치해 시청자(소비자)들의 무의식 속에 이미지를 심어 자연스럽게 인지시키는 간접광고 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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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PPL에 공들인 기업들

‘트렌디 제품’이 오랜 효자
[Special ReportⅠ] 의상부터 소품까지 ‘다 돈이네’
PPL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들이 노출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상품들은 따로 있다. 주로 트렌디한 제품들로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 제품과 포털 사이트 및 음원 사이트, 화장품, 각종 프랜차이즈 및 의류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회사들도 PPL을 통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동차 PPL은 굳이 로고를 노출시키지 않아도 어떤 브랜드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제품의 특성상 따로 로고 노출을 하지 않는 게 대세였는데 최근에는 브랜드까지 노출하는 간접광고를 진행하는 추세다. 드라마 ‘도망자’의 현대자동차와 ‘싸인’의 쉐보레, ‘위대한 탄생’의 기아자동차 등이 그 예.

카페 프랜차이즈인 ‘카페베네’도 PPL을 사랑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현재 ‘마이더스’, ‘반짝 반짝 빛나는’, ‘신기생뎐’ 등 방송 중인 3편의 드라마에 PPL을 진행 중인 카페베네는 공격적인 PPL 홍보를 통해 ‘폭풍 성장’한 대표적인 브랜드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의 입에서 “재벌 2세, 인기 연예인을 막론하고 드라마 주인공들은 왜 카페베네만 가느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가 하면 광고주들은 상류층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좋아한다. PPL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할 수 있기 때문.

한편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정한 간접광고의 단계는 올해 노출 수준, 난이도 등에 따라 3단계로 통합됐다. 1단계는 단순히 제품의 배치 수준이고, 2단계는 주·조연 관계없이 사용하는 수준이며, 3단계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제품 노출에 해당한다.

취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